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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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4)-마드리드의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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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수도이며 예술의 도시인 마드리드!

유럽 도시들 중 해발고도가 가장 높아 이곳저곳 찾아다니는 나그네에겐 숨이 차다. 1561년에 스페인 왕 필립2세가 역사박물관 같이 진귀한 도시 톨레도에서 이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겼다. 예술뿐만 아니라 음식문화, 밤의 세계, 수많은 호텔과 교통(지하철, 기차, 비행편 등) 인프라가 세계적인 수준이다. 

 

 

마드리드의 봄은 겨울의 찬바람보다는 덜 하지만, 과다마라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모자를 날려버릴 만큼 불어대므로 모자끈을 꼭 조이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햇빛만큼은 우리나라의 따스한 오후를 생각나게 한다.

 마드리드에서의 제일 중요한 스케줄은 세계에서 제일임을 자랑하는 미술관을 순례하는 일. 고야의 동상 발치에 고야의 ‘The Naked Maja’ 조각상이 누워있는 프라도 미술관은 중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작품을 수천 점 이상 전시하고 있다. 특히 고야의 작품이 제일 많은데, 사람들은 정치성향의 그림 ‘1808년 5월3일’이나 어두운 시대의 그림들보다는 궁정화가 당시 그린 선정적인 두 ‘마야’(‘옷입은 마야’와 ‘벗은 마야’) 그림 앞에 더 몰려 있었다. 그의 ‘검은 그림들’은 외면하고 싶은 내 그림자 같아서 발길이 가지 않는 듯했다.

 소피아 미술관에서는 피카소의 충격적인 유명한 ‘게르니카’와 혼을 분리시키는 듯한 여인화들, 그리고 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들을 보았다.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보슈 등의 궁정화가들을 포함해서 이들이 모두 스페인의 화가라는 것에 새삼 머리가 숙여진다.

 

 

이 ‘잠자지 않는 도시’에선 플라멩고를 비롯한 음악회와 연극 프로그램 때문에 저녁식사는 어디가나 밤 여덟시가 지나야 제대로 먹을 수 있다. 그 시간을 기다리며 우리는 이스파뇨라 광장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곳에 바로 스페인의 한 걸작품이 서 있었다.

 바로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동상과, 그 밑에 그의 대표작이며 온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돈키호테’와 그의 충실한 종자 ‘산초’가 심통난 얼굴로 말을 타고 있는 조각상, 그 옆엔 돈키호테가 짝사랑을 바친 연약한 여인 둘시네아 델 토보소의 아름다운 조각상이 광장 분수 앞에 서 있었다. 노란 튤립꽃들이 분수의 둘레를 따라 피어 있었고.

 올해 내내 마드리드나 세르반테스의 고향 알칼라와 다른 여러 도시에선 그의 대표적인 소설, ‘돈키호테’ 출간 400주년 기념행사 준비로 떠들썩하다. 마드리드시는 세르반테스(1547~1616)가 마드리드의 ‘예술인지구’인 전형적인 보헤미안거리에서, 그리고 마드리드의 3대 미술관(프라도, 소피아, 티센) 근방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지냈고, 마드리드에서 ‘돈키호테’가 처음 출간됐으며, 그곳에서 힘겹던 생애를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한날에 마친 것을 내세우며 홍보가 대단하다.

‘재치있는 시골귀족 돈키호테 데 라만챠’라는 제목의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돈키호테를 생각하면 그 시대의 어두운 사회상이 먼저 떠오른다. 그 당시 작가들은 성직자의 횡포와 종교개혁, 반종교개혁파운동과 탄압을 피하기 위해 종교경찰과 교회법연구원의 눈을 피해 작품을 썼다.

 이 작품은 겉으로는 전통적인 산문과 설화형식으로 재미있는 모험소설같이 보이지만, 그 이면엔 17세기 초의 유럽의 향락주의를 비꼬아서 쓴 저의를 엿보게 한다.

 

 

‘돈키호테’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라만차 들판의 풍차를 향해 돌진한 돈키호테와 삐쩍 말라 불쌍해 보이는 그의 말 로시난테의 이야기다. 불의를 바로잡고, 불행한 이웃사람을 구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집념으로 두 번째 모험을 떠난 그는, 라만차 들판에서 30여 개의 풍차를 발견하고 악한 거인들로 착각한다.

“악의 씨를 뽑아 버리는 것이 하느님을 극진히 섬기는 일”이라면서, 산초가 말리는데도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아에게 자신을 맡기고 위기에서 도와달라며 하느님께 기도하고” 전속력으로 공격한다. 그때 바람이 세차게 불며 풍차가 돌기 시작하자 창은 산산조각 부러지고, 우리의 용감한 기사도 휩쓸려 공중에 떠올랐다가 들판에 내동댕이쳐진다.

 온갖 기절초풍할 이야기를 남기며 돌아다닌 떠돌이 기사 돈키호테는 결국 그의 죽음만이 해결책이 되었고(죽은 자는 말썽이 없으므로) 현실적인 산초는 오히려 영웅으로 귀향하여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안긴다. 이 두 사람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꿈과 현실, 미치광이에 가까운 이상과 그 그림자를 상징한다. 

 이스파뇨라 광장의 튤립꽃들이 지는 햇빛에 오렌지색으로 물들 무렵 우리는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동상들을 올려다보았다. 돈키호테만큼이나 곡절이 많은 생애를 보낸 작가, 세르반테스의 얼굴은 놀랍게도 ‘비극의 주인공, 돈키호테’와 꼭 닮아 있었다.

 

 

우리는 다음날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궁의 영혼의 산책’을 한 다음, 다시 마드리드로 오는 기차를 탔다. 기차가 라만차를 지날 때, 혹시나 그 평야를 달려가는 돈키호테의 말발굽소리가 들릴까 하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헌데 뜻밖에도 언덕 위에 세 개의 풍차가 서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던진 창 대신에 내 카메라를 휘둘러 재빨리 언덕 위의 풍차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때 하늘엔 돈키호테가 백마를 타고 창을 휘두르며 달리는 듯한 흰 구름마저 떠 있었고. 

 아마디스 데 다울라가 돈키호테 데 라만차에게 보내는 시구의 한 구절로, “금발의 아폴로가 하늘 높이/ 말을 재촉하여 달려가는 동안에/ 필경 영생을 얻으리라”고 찬양한 것처럼 의로운 기사 돈키호테는 지금쯤 저 구름 속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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