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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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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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의 신비

 

구스타브 융이 쓴 ‘연금술에서 본 구원의 개념’을 며칠째 읽다가 꿈을 꾸었다.
…동치미 담는 하얗고 투명한 유리병이 두 개 상 위에 놓여있다. 크고 둥근 유리병 속엔 빨간 꽃이 한 송이, 가늘고 긴 다른 유리병 속엔 같은 빨간 꽃이 가득 들어 있다. 자세히 보니 그 꽃들은 바다에 피는 산호였다. 누군가 내게 그 산호를 좀 달라고 한다. 긴 병에 가득한 산호는 아까워서 못 주고 큰 병에 한 송이뿐인 산호를 내주었다. 그런데 그 붉은 산호를 꺼내어 그 사람의 손에 건네주는 순간 그 산호는 하얀 산호로 변해버렸다…
 분명히 하얀 산호가 붉은 산호보다 값진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나누는 행위가 승화되는 현상일까? 아까워서 못 준 빈약한 긴 병의 산호는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질료와 접촉하지 않는 한 그대로 초라하게 시들어 버린다는 것일까? 빈약한 긴 병 속의 산호에도 어떤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보자.
 꿈을 꾸고 반나절이 지나자 그 바다의 산호는 ‘어둔 밤을 항해한 요나’와 큰 야고보 성인 산티아고(성 야고보의 스페인어)를 연상케 했다. 그리스도인이라면서 맡은 일이 힘들어, 요나처럼 하느님의 눈을 피해 고래 뱃속에 틀어박혀 지옥같은 어둠 속이라도 그 속에 죽치고 있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결국 요나처럼 은총의 해안에 기어나오게 되었지만.
 요나가 그를 삼킨 바다의 고래 뱃속에서 어두운 밤 사흘을 지낸 후 다시 뭍으로 살아나오는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땅 속에서 삼 주야를 보내고(마태복음 12:40)’ 부활하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 부부가 몇 해 전에 제3의 성지로 삼고 떠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주인공인 큰 야고보 성인도 갈릴리 바다에서 스페인의 갈리시아 근방 해안으로 어두운 밤의 항해를 했다. 야고보는 제베대와 살로메 사이에서 태어난 큰 아들로, 동생 요한과 함께 아버지를 도와 갈릴리 호숫가에서 어부로 일하고 있다가 베드로와 안드레와 같은 무렵에 예수의 부름을 받는다.
 요한과 야고보 두 형제는 정열적인 기질이라 매사에 행동파다. 예수님에게, 하늘 나라에 가면 그들이 예수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그들을 대접하지 않는 불친절한 사마리아인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며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저들을 불살라 버릴까요?”하고 말한다. 예수님은 그들을 크게 야단치시고, 두 형제를 ‘천둥의 아들 보아네르게스’라고 별명을 붙여주신다.
 예수의 산 증인들인 사도들 가운데 묵시록을 기록한 요한과 야고보는 베드로와 더불어 특별한 영성의 은총을 입은 제자들로 키우신 것 같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신 장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신 모습, 특히 다볼 산에서 그리스도가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이야기하며 성령으로 변화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신 걸 보면.
 큰 야고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증인으로 성령 강림 이후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다한다. 그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전도여행을 하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을 탄압하던 헤로데스 아그리파 1세에게 체포되어 주후44년 파스카 축일 전날 참수형을 받아 사도 중 첫 순교자가 된다(사도행전12:1).
 야고보의 제자들이 에스파냐에서 전교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사도 야고보의 한을 풀어주려 했음인지, 그의 시신을 돌널에 담아 에스파냐로 운구하려고 해안에 이르자, 천사들이 옹위한 배 한 척이 나타나 그곳에 싣자 배는 지중해를 빠져나가 대서양을 북상하여 그 당시 갈리시아 지방의 수도였던 이리아 프라비아에 닿았다고 한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일화는, 밤에서 밤으로의 어두운 밤의 항해 중 요나가 탔던 배처럼 풍랑에 배가 뒤집혔는데, 그 후 다시 떠오른 사도 야고보의 시신은 해돋이 조가비 속에 잠들어 있었다는 것. 산티아고에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야고보 성인의 상징의 하나인 해돋이 조가비의 내력이다. 이 조가비는 순례자들의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로 ‘순례자의 길’마다 걸려있다. 큰 해돋이조개 그림이 걸려있는 순례자의 사무실에선 순례를 마친 사람들에게 안전하게 순례한 일을 감사하며 인증서에 큰 도장을 찍어준다.
 9세기에 들어와 수도사 페라요가 사도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무렵 844년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세력에 대항하는 기독교 재정복의 클라비로 전투에서, 흰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나타난 사도 야고보가 이슬람군을 무찔러버린 기적이 일어났다는 말이 온 유럽에 전해진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그에 대한 신심이 에스파냐를 중심으로 유럽에 퍼지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루살렘·로마에 이어 제3의 성지 순례지가 되었다.
 이때 사도 야고보고는 또 하나의 별명을 얻는다. 예수님이 지어주신 천둥이란 별명에 어울리는 ‘마타모로스(무어인을 정복한 자)’. 클라비로 전투에서 국민들을 단합시킨 영적인 원동력이 된 그는 성인의 칭호를 받고 스페인·과테말라·니카라과의 수호성인이 된다. 중세기 때만은 못 해도, 여전히 야고보 성인에 대한 사랑과 신뢰에서 우러난 순례의 행렬이 지금도 산티아고를 향해 이어지고 있다.
 사도 야고보의 상징으로는 순례자의 이정표이며 순례 중에 모자로 쓰는 해돋이 조가비, 십자가를 새긴 나무 지팡이,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때를 알려주던 수도원의 종, 몽 주아(나의 기쁨)라는 이정표 돌무더기,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상징은 별이다.
 이베리아 반도 북서쪽의 한 지명이 ‘야고보 성인의 별이 머문 벌판’이라는 스페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부르는 것은, 사도 야고보에게서 나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100년경 당시 스페인 국왕 알폰소는 그 영묘 위에 150년에 걸쳐 웅대한 대성당을 지었다. 요나가 고래의 입에서 나오고, 밤의 항해의 끝은 ‘네모난 영혼의 방(교회 의미)’의 ‘모퉁이 돌’이 됨을 보여준다는 15세기의 그림은(융 기본 저작집6), 사도 야고보가 밤의 항해 끝에 산티아고 대성당의 모퉁이돌이 되는 것과 부합이 된다.
 광야같던 험한 들판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아름다운 마을이 생겨나고, 황량한 벌판은 활기찬 도시로 탈바꿈한다. 이 도시의 한복판 언덕배기에 우뚝 솟아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회색빛 화강암 대리석이 햇빛에 잠깐 눈이 부시다가도, 빗줄기에 씻겨 연보라색이 된다. 대성당과 마을은 안개와 비에 젖어 밤에도 신비스럽게 빛난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비롯해서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사도의 흔적으로 인해 이 마을은 ‘사도의 도시’라고 부르며, 때도 없이 오는 비로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하는 ‘우산의 도시’, 그리고 이 도시인구(약 10만 명)의 반가량이 산티아고종합대학(USC) 학생이어서 어딜 가나 대학생들을 만난다고 ‘대학의 도시’ 라고도 부른다. 여기에, 갈리시아 지방 특유의 ‘붉은 소나무 마을’, 어딜 가나 마실 수 있는 ‘붉은 와인의 나라’도 덧붙일 수 있겠다. 이 ‘사도 야고보의 도시’는 1985년에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대성당은 예배당과 성소, 순례자를 위한 건물, 미술관, 호스피스 건물 등을 정교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복합건축물이다. 성당을 짓기 전 10세기부터 순례자의 행렬이 이어졌다고 한다.
 


사도 야고보가 두루마리를 펼쳐 보이며 앉아있는 ‘영광의문’을 지나 지하경당에 내려가면, 야고보 성인의 유해를 모신 금은 조각함과 사도 야고보의 시신이 묻힌 곳을 찾아준 금빛 별 조각을 볼 수 있는데, 대성당에서 언덕으로 빠지는 쪽문 사이로 종각 위에 조각해놓은 콤포스텔라가 더 실감나게 반짝이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