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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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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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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왕비님의 시종무관이에요. 저한테 작별인사 하러 온 거에요.”

“왕비님의 시종이라고?” 경계심 많은 프레데곤다가 숨 넘어가는 희미한 소리로 물었어요. “대체 네가 언제 왕비님의 시종을 알게 되었단 말이냐?”

 “흰 매가 탑으로 날아 들어온 날 아침이에요. 그이가 왕비님의 흰 매를 찾으러 왔거든요.”

 “아, 바보 천치 같은 계집애야! 젊고 짓궂은 시종들에 비하면 흰매 따위는 하나도 위험하지 않단다! 그자들이 노리는 건 바로 너같이 순진한 새들이란 걸 알았어야지.”

숙모는 자존심이 몹시 상했어요. 자신이 그렇게 자부했던 감시망에도 불구하고 바로 자기 눈 앞에서 젊은 연인들이 다정하게 만나고 있었다니 말이에요. 하지만
순진한 조카딸이 이성의 모략에 노출 되었음에도 그 불같은 시련에 화상을 입지 않고 온전했다는 것은, 자기가 정숙하고 신중한 교훈을 조카딸의 입술까지 적셔 놓은 덕분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어요.

숙모가 자존심을 달래며 누워있는 동안, 조카딸은 그 시종기사가 되풀이하며 맹세한 일들을 가슴속에 소중히 품고 지냈어요.

날이 가고 달이 가도 그 기사에게선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어요. 석류가 빨갛게 익어가고,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고, 산에서 가을비가 퍼붓고, 시에라 네바다가 흰 눈으로 외투를 갈아입고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알함브라의 여러 탑들을 훑어 지나가도, 그이는 오질 않는군요. 겨울도 지나고, 꽃송이들이 부드러운 산들바람과 함께 노래해도, 그이에게선 감감 무소식 이었어요.

가엽게도 어린 하신타는 창백해지고 말 수가 적어지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기가 일수였어요. 그녀가 즐겨 수를 놓던 비단 실타래는 발밑에 굴러다니고, 그녀의 기타는 소리를 잃었고, 보살피던 꽃들마저 시들어 가고 새들의 노래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게 되었어요. 하신타의 밝게 빛나던 눈동자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로 어두워져가고요.

고독한 아가씨의 사랑의 정열을 달래주기 딱 좋은 곳이 있다면 바로 알함브라궁 같은 곳이지요. 그곳은 다정하고 낭만적인 망상을 불러일으키려고 작당한 듯한 곳이니까요. 말하자면 연인들의 낙원인 셈이지요. 한데 그런 낙원에 홀로 있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게다가 버림받은 처지라면!

“아이구 이 어리숙한 것아! 내가 너한테 남자들의 농간이나 거짓말이 어떤 건지 몇 번이나 경고하지 않았더냐? 더구나 그 도도하고 야심 찬 가문의 남자에게 무얼 기대 하겠느냐구. 넌 고아인데다 몰락한 집안의 후손임을 잊어선 안 된다. 그 청년이 진실하다 해도, 자부심 강한 귀족 가문인 그의 아버지가 너처럼 하찮은 신분의 며느리를 원하지 않을게다. 그러니 마음 잡고 네 맘속에 어른거리는 헛된 생각들일랑 몰아내버리거라.”

빈 틈없는 프레데곤다의 말은 조카딸의 마음을 더 침울하게 할 뿐이었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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