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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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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36)-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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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알함브라 궁은 울퉁불퉁한 언덕 위에 서 있는데, 바위를 뚫고 낸 비밀통로가 있었답니다. 그 통로는 알함브라에서 그라나다 여러 지역으로 그리고 멀리 다로강과 헤닐강 강둑 위의 출구까지 연결되어 있었지요.

그 지하비밀 통로들은 무어 왕들이 반란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서 그리고 개인적인 재미를 위해 만든 것이랍니다. 그 통로는 지금은 거의 폐쇄되고, 벽만 기념비적으로 조금 남아 있지요. 후세인 바바는 바로 이 지하비밀통로를 이용해 공주님들을 도시의 성벽 밖 출구로 모실 계획이었고, 그곳에서 기사들이 국경을 넘을 채비를 하고 기다리기로 했답니다.

 약속한 날 밤이 다가왔어요. 공주들의 탑은 언제나처럼 꽉 잠겨 있었고, 알함브라 성은 깊은 잠에 빠져있네요. 자정이 가까워지자 똑 소리 나는 카디가는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의 한 창문 앞에 귀를 세우고 서 있고요.

후세인 바바가 이미 탑 아래에 와서 신호를 보내네요. 똑 소리 나는 카디가는 줄 사다리 한쪽 끝을 발코니에 단단히 묶고, 한쪽은 정원 아래로 내려뜨린 다음에 내려갔어요. 큰 공주와 둘째 공주가 가슴을 두근대며 따라 내려갔고요.

아, 그런데 막내 공주 조라하이다 차례가 되자 멈칫거리며 떨기 시작하는 거 에요. 몇 번이나 그 작고 예쁜 발을 사다리 위에 걸쳤다가는 다시 뒤로 끌어당기는군요. 시간을 끌수록 공주의 작은 가슴이 점점 더 방망이질 치는 거에요.

조라하이다 공주는 비단장막에 쌓인 자기 방을 둘러보았어요. 새장에 갇힌 새처럼 살아온 건 틀림없지만, 그 안에선 안전했어요. 저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간다고 해서 누가 그 안전을 보장해주랴! 이젠 그 용감한 기독교인 연인만 생각하자, 하면서 작은 발을 사다리 위에 올려놓았어요.

그런데 아버지를 생각하며 다시 뒤로 움츠러드는 거에요. 부드럽고 사랑스럽고, 소심하고 세상 모르는 젊은 여인의 가슴에 일고 있는 이 갈등을 어찌 다 설명하겠어요?

 발코니 아래에서, 언니 공주님들이 애원하고, 늙은 카디가가 꾸짖어 대고, 후세인 바바가 볼멘 소리를 지껄여 대도 아무 소용이 없군요. 점잖은 무어 아가씨는 달콤한 죄악의 유혹에 빠졌다가, 그 위험에 질겁해서 탈출의 문턱에 서서 주저하며 서있는 거에요.

탄로날 위험이 순간순간 커지네요. 멀리서 발자국 울리는 소리가 들려 왔어요. “순찰병이 돌고 있어요. 더 머뭇거리다간 우리 모두 잡혀요. 공주님, 어서 내려 오세요, 아니면 우린 공주님만 두고 떠나겠어요.” 후세인 바바가 소리쳤어요.

조라하이다는 한 순간 공포에 질려 어쩔 줄 모르더니, 사다리 줄을 풀어버리는 거에요. 자포자기하는 운명적인 결단을 내리고 사다리 끝을 발코니 아래로 집어 던졌어요.

“결심 했어요. 내겐 달아날 힘이 없어요! 알라께서 사랑하는 언니들을 인도하고 복을 내려주시기 바래요.” 하고 소리쳤어요.

 

두 언니 공주는 동생을 두고 떠난다는 생각에 충격이 컸어요. 잠시 머뭇거리는데, 순찰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오는군요. 화가 난 바바가 지하통로로 그들을 서둘러 이끌고 갔어요. 그들은 더듬더듬 산 중턱을 뚫어 만든 무시무시한 미로를 헤쳐나가, 성벽 밖으로 열리는 철문을 무사히 통과했어요.  

그곳엔 히스파냐 기사들이 바바의 지시를 따라 무어인 감시병으로 변장하고 기다리고 있군요.

조라하이다의 연인은 공주가 그 탑을 떠나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미친 듯이 울며 날뛰었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어요. 두 공주는 각자의 연인 뒤에 올라 타고, 카디가는 바바의 등에 올라타자, 모두 함께 로페 가도를 돌아서 코르도바를 향해 산길을 달렸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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