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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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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 이야기(19)-무어인의 유산이 묻힌 칠층탑 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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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어빙 지음 / Yunice 윤경남 옮김 & 사진

 

(지난 호에 이어)

▲해질녘 기도시간에 울려오는 Santa Maria Church의 종소리

 

 “자비로운 친구여, 그 상자가 무엇이건 하느님은 당신이 오래 살게 해주실 것이오.” 선량하고 땅딸보인 가예고의 말에 무어인은 고개를 저었어요. 상자 위에 손을 얹고 무엇인가 더 말하려 했으나 다시 경련을 일으키더니 잠시 후에 숨을 거두었어요.

 

물 지게꾼의 아내는 미친 사람처럼 떠들기 시작했어요.

“이게 다 남의 일만 쫓아다니며 봐주는 당신의 바보같이 착한 성질 때문 이라구요. 우리 집에서 이 사람의 시체가 발견 되면 우린 어떻게 되는거죠? 우린 살인죄로 감옥에 갈 거구, 목숨을 부지한들 경찰이나 공증인들에게 얼마나 시달리겠느냐구요?”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불상한 페레힐은 자기가 베푼 선행이 후회될 지경이었어요. 결국 한 묘안이 떠 올랐어요. “아직 날이 새지 않았으니까, 내가 이 시체를 성밖으로 옮겨 헤닐 강가의 모래 속에 묻으면 될거요. 아무도 무어인이 들어오는 걸 못 보았으니 아무도 그가 죽은 걸 모를 거요.”

 

운 사납게도 그의 집 맞은편에 페드리요 라고 하는 한 이발사가 살고 있었네요. 남의 뒷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염탐하기 좋아하고 수다스럽고 말썽 잘 피우는 페드리요는, 족제비 같은 얼굴에 다리는 거미같이 흐물흐물하고 음흉스런 사내였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어서, 그 유명한 세빌리야의 이발사도 그를 흉내내지 못했답니다. 사람들은 심지어 그가 자는 동안에 일어나는 사건까지 알아 내기 위해서, 잠을 잘 때 한 눈은 뜬 채로 한 귀는 열어 놓은 채로 잔다고들 말하네요. 그는 마치 그라나다에서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스캔들 연대기 작가 행세를 했고, 그의 종교단체 동아리들 중 최고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었답니다.


 오지랖이 넓은 그 이발사는 그날 밤, 페레힐이 보통 때보다 늦은 시간에 귀가한 데다 페레힐의 마누라와 아이들이 소리 지르는 것도 들었어요. 그의 머리통은 곧장 그가 늘 망 보려고 내다보는 작은 유리창 밖으로 튀어나왔으며, 그의 이웃이 무어 복장의 긴옷을 입은 사람을 데리고 그의 집에 들어가는 것도 보았어요. 그건 너무도 이상한 사건이어서 페드리요는 그날 밤 한 숨도 못 잤답니다. 5분에 한번씩 작은 창구멍으로 내다보면서 이웃집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지켜보았어요. 날이 밝기 전에 페레힐이 당나귀에 이상한 짐을 싣고 길을 떠나는 것도 보았고요.

 

호기심 많은 그 이발사는 안절부절 못하게 되었어요. 그는 옷을 주워 입고, 소리 없이 빠져나가 멀리서 물지게꾼을 따라가 보니까, 마침내 헤닐강의 모래 언덕에 구멍을 파고 시체같아 보이는 무언가를 묻어버리는 것을 보았거든요. 이발사는 재빨리 집으로 돌아와 이발소 안에서 해가 떠오를 때까지 왔다 갔다 서성댔어요. 그리고는 겨드랑이 밑에 양은 대접 한 개를 끼고 그의 단골인 읍장님 저택에 한달음에 달려갔어요.

 

읍장님은 막 자리에서 일어난 참이었어요. 페드리요는 그를 의자에 앉히고 익숙하게 수건을 목에 두르고 뜨거운 물을 턱 밑에 받치고 두 손가락으로 시장님의 턱수염을 다듬기 시작했어요.

 

“참, 이상한 일두 다 있지요?” 이발사 페드리요는 고자질 쟁이 노릇까지 겸해서 행동을 개시했어요. “정말 별일이라구요! 도둑질에 살인에 매장까지 하룻밤 새 다 해치우다니 말이에요!”

 

“이보게, 그게 무슨 소린가?” 읍장님도 놀란 듯 소리 쳤어요.

“제 말씀은요, 어제 한밤중에 가예고 페레힐이 어떤 무어인을 강도질 하고 그를 죽이고 땅에 묻어버렸단 말씀이에요. 축복을 저주로 바꾼 밤 입니다요!” 이발사는 읍장의 코와 입가에 따뜻한 비눗물을 손으로 펴 바르며 대답했어요.

 

“그걸 자네가 어떻게 모두 알았단 말인가?”

“좀 참으시고 들어보세요, 나리. 궁금증을 다 풀어 드릴테니까요.” 페드리요는 읍장님의 코를 잡고 뺨 위로 면도를 오르내리며 대답했어요. 그리고는 자기가 본 것을 모두 나팔 불었어요. 그런데 이 읍장님으로 말하면, 그라나다 안에서 가장 세도가 높고, 둘째 가라면 서럽게 욕심이 많은 부패한 공무원이었어요. 그래도 늘 정의를 중요하게 앞 세웠어요. 왜냐하면 늘 정의의 무게를 황금의 무게로 달아서 팔았으니까요.

 

그는 즉시 이 문제는 살인과 절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고 판단을 내렸어요. 그리고 틀림없이 풍부한 전리품도 있을 테고…한데 이것을 어떻게 합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문제였어요.

 

범인만 체포해서는 교수대만 좋은 일이고, 그 전리품을 손에 넣는 일만이 읍장이며 재판관인 자신을 풍성하게 해주는 일이므로, 그것은 그가 앞세우는 정의의 가장 위대한 목표가 되는 셈이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가장 신뢰하는 형리를 불렀어요. 옛날 히스파니아 복장에 검은 망토를 어깨위로 펄럭이며 사람들에게 겁주는 가늘고 긴 막대기를 들고 다니는 그 형리는 곧장 운수 사나운 물지게꾼의 뒤를 쫓았어요. 얼마나 확신에 차서 빨리 달려 갔는지, 페레힐이 자기 집에 들어서기도 전에 붙잡아 페레힐과 그의 당나귀까지 정의의 집행자 앞에 끌어 왔어요.

 

읍장은 아주 무시무시하게 찡그린 얼굴을 하고 그를 내려다 보며 고함을 쳤어요.

“너 죄인은 들어라!” 하고요. 땅딸보 가예고는 무릎이 덜덜 떨렸어요.

 

“내가 네 죄를 모두 알고 있으니 네 죄를 부인해도 소용 없을 줄 알아라. 네가 저지른 죄목은 교수대가 가장 합당한 벌이지만, 나는 자비로운 사람이고, 네 사연을 들어보겠다. 네가 네 집안에서 죽인 무어인은 이교도이며 우리 신앙의 적인 건 사실이다. 그를 살해한 것은 틀림없이 네가 순간적으로 종교적인 열성에 빠져서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관용을 베푸노니, 그에게 훔친 물건을 모두 내놓으면 그 문제를 조용히 덮어 주겠다.”

 

불상한 물지게꾼은 자신의 결백을 증언해 주시라고 그가 아는 성인의 이름을 모두 불러 보았어요. 아, 비참하게도, 아무런 응답이 없네요. 응답이 있다 해도 재판관은 믿지 않았을 거지만. 물지게꾼은 죽은 무어 노인의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네요.

 

“그렇다면 네 말은 그 무슬림이 네가 죄를 저지를 만큼 황금이나 보석 나부랭이를 갖고 있지 않았단 얘기냐?”

“그건 제가 살아 남기를 바라는 것 만큼이나 사실입니다요. 그 노인은 제가 보살펴 준 값으로 고맙다고 조그만 백단 향나무 상자 하나를 남겨준 것 밖에는요.”

 

“백단 향나무상자라! 백단 향나무상자란 말이지! 그럼 그게 어디 있단 말이냐? 어디에 그걸 숨겨 놓았느냐?” 읍장님은 그게 보물일거라 여기며 고함을 쳤어요.

“그걸로 나리의 자비를 받게 된다면,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그건 제 당나귀 등에 장바구니 안에 들어 있습죠.”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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