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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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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궁의 옛날 옛적 이야기(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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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순례자, 아하메드 알 카멜왕자(끝)

(워싱턴 어빙 지음/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그 자리에 있던 궁전의사들은 모두 놀라 서로 처다만 보았지요. 왕은 아랍인 음유시인을 존경과 경외심으로 바라보았어요.

“놀라운 젊은이로군!” 왕이 소리쳤어요. “이제부터 우리궁전의 주치의가 되어주지 않겠소? 당신의 선율 하나로 훌륭한 처방전이 될 것이오. 일단 보상을 받게나. 내 보물 창고에서 제일 귀중한 보석을 주겠소.”

 

“폐하, 저는 은이나 금이나 값진 돌 따위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폐하의 보물 가운데서 단 한가지 유물을 원합니다. 그것은 톨레도를 지배했던 무슬림 왕족으로부터 전수해 온 유물인데, 비단 카펱이 들어 있는 백향나무 상자입니다. 그 상자를 저에게 주십시오. 저는 그것으로 족하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아랍인의 겸손한 태도에 모두 놀랬어요. 왕이 백향나무 상자를 가져오게 해서 비단 양탄자를 꺼내 펼쳤을 때는 더욱 놀랐고요. 히브리어와 칼대어로 수놓은 상자 뚜껑을 열고, 훌륭한 초록빛 비단 양탄자를 끌어냈어요. 전의 들은 서로 마주 눈짓하며 어깨를 추석거리고, 하찮은 물건을 치료비로 만족하는 이 신참의사의 소박한 태도에 미소를 지었어요.

 

“이 비단 양탄자는. 지혜의왕 솔로몬의 옥좌 위에 덮었던 것입니다. 이제 아름다운 여인의 발치에 깔아둘 가치가 있는 물건이지요.” 왕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공주를 모셔다 앉혀놓은 낮은 안락의자 밑에 펼쳐놓고는, 왕자 자신도 공주의 발치에 가서 앉는 거였어요.

“감히 누가 운명의 책에 적힌 것이 실현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점성술사들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아, 임금님이시여, 폐하의 따님과 저는 오랫동안 남모르게 서로 사랑해 왔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그 사랑의 순례자입니다!”

 

왕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양탄자는 하늘로 치솟아 오르며 왕자와 공주를 싣고 떠나버렸어요. 왕과 전의들과 신하들은 입을 딱 벌리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들이 하얀 뭉게구름 속으로 작은 반점으로, 푸른 하늘로 곡선을 그리며 사라질 때까지 넋을 잃고 바라보았어요.

왕은 분해서 치를 떨며 창고지기를 대령시켰어요.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그런 신물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이교도가 집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단 말이냐?”

 

“송구스럽습니다, 폐하. 저희도 그 상자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으며, 그 상자에 새겨 놓은 글자도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었지요. 진정 현자인 솔로몬왕이 옥좌에 깔았던 양탄자가 틀림없다면, 마법의 힘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얼마든지 양탄자 주인 마음대로 공중으로 날아다닐 수 있습지요.”

왕은 막강한 군대를 소집했어요. 그리고는 그 도망자들을 쫓아 그라나다를 향해 진군했어요. 왕이 이끄는 군대의 행진은 고되고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바가에 있는 평원에 야영을 하면서 공주의 귀환을 요청하는 전령을 보냈어요. 그라나다왕이 몸소 신하를 거느리고 나타났어요.

 

그 왕의 모습은 옛날 음유시인의 모습을 닮아있고요. 아하메드 왕자는 부왕이 돌아가시고 왕좌를 물려받은 것이에요. 아름다운 알데곤다 공주는 그의 왕비가 되어 있고요. 그리스도인 왕은 공주가 그대로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챘어요. 왕이 특별 나게 경건한 신자라서가 아니라 종교는 언제나 왕가의 자존심이며 예절에 속하니까요.

이제 피비린내 나는 싸움 대신에 즐거운 축제와 잔치가 연일 이어진 다음, 왕은 흡족한 마음으로 톨레도로 돌아갔어요. 젊은 그라나다왕 부부는 알함브라궁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현명하게 나라를 다스렸답니다.

 

올빼미와 앵무새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쉽게 그라나다로 날아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요. 아하메드왕은 자신이 사랑의 순례를 할 때 그 새들이 도와준 일에 감사하며 보답했어요. 올빼미는 총리로, 앵무새는 의례 집전자로 임명했거든요. 한 왕국을 이보다 더 슬기롭게 그리고 궁중예법도 이보다 더 꼼꼼하게 다스린 나라가 없다나 봐요. 아마도!

 

 
▲사랑의 순례자 알함브라의 왕자와 톨레도의 공주가 톨레도 궁성을 탈출하다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 1783~1859)은 미국의 수필가, 소설가이다. 뉴욕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변호사를 지망했으나 문학으로 전향, 네덜란드령 시대 때 쓴 〈뉴욕사〉(1809년)가 출세작이 되었다. 그러나 영국 풍물사적(風物史跡)을 우아한 문체로 수필식으로 엮은 〈신사 제프리 크레용의 스케치북〉(1819~1820)이 대표작이며, 이 작품으로 미국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밖에 단편집, 전기, 여행기 등이 많다. 영국 역사소설가인 월터 스콧, 바이런, 나다니엘 호든 등과 깊은 교우관계를 가졌다.

 

1842년~1846년 사이에 스페인 주재 미국대사로 있는 동안 알함브라의 전설 등을 수집하고 쓴 “알함브라 여행기”와 그의 전 작품을 Charles Neider가 편집한 “The Complete Tales of Washington Irving: Legend of Prince Ahmed Al Kamel”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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