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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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40)
knyoon

 

 

 

(지난 호에 이어)
시기적으로 위험한 때여서 사람들은 감히 나서서 그들을 상대로 증언하지도 못했다. 3년 동안 그 사건은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1948년 선거를 치르던 해에 마을 안에 포스터가 붙었다. 


그 포스터는, 그 당시 살인사건의 전모를 알리고 있었고, 빨갱이들이 어떤 계층의 사람을 권좌에 앉히려고 하는가를 지적하고 있었다. 세 명의 젊은 불량배들은 그들이 백작의 집에 가지도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있었고, 따라서 그 낯선 지도자의 신원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꼬맛시는 다시 한 번 종적을 감추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순간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가 이제 돈 까밀로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프라하에선 뭘 하고 있었나?” 돈 까밀로가 그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내 목소리가 좋다고들 하기에, 이태리뉴스 방송을 맡고 있지요.”


“별로 좋은 직업이 아니군.” 돈 까밀로가 말했다. “가족들이 알고 있소?”


“아닙니다. 가족들은 모르고 있지요. 그러나 식구들이 내 목소리를 듣고,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당신 가족들을 정말 행복하게 해줄까? 식구들은 자네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편이 더 나을 걸세.”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꼬맛시가 고집을 세우며 말했다.


“그게 바로 내가 신부님께 이야기하는 목적의 전부예요. 하느님이 내게 이런 기회를 주신 겁니다.”


“하느님이라!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주님을 기억할 수 있는 좋은 때로군. 자네가 그 불쌍한 노인들을 살해했을 때는 자네 머릿속에 하느님은 안 계셨다네!”


꼬맛시는 뭔가 할 말이 있어서 꼭 말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듯 갑자기 거칠게 몸을 돌렸다. 분명히 그렇게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해는 합니다.”


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신부님이 저를 믿어주시리라 기대할 순 없겠지요. 그러나 신부로서, 저의 고백을 거절할 순 없으실 겁니다.”


호텔 로비는 가지각색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검은색, 갈색, 노랑 피부의 색깔들이 서로 어우러졌고 시끄러운 말소리가 방안에 가득했다. 돈 까밀로는 꼭 지옥의 문턱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거기에도 계셨다. 세상의 그 어느 곳보다도 더 생생하게 살아 계셨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돈 까밀로의 귀에 울려왔다.


“두드려라, 그러면 너에게 그 문이 열릴 것이니.”


돈 까밀로는 성호를 그었다. 꼬맛시도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중하게 따라서 했다. 왜냐하면 프라우다 신문지로 가린 종이 장막 너머에서 그를 감시하는 눈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 여기 당신 발 밑에 당신을 분노케 한 죄인이 엎드렸나이다. 겸손히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나이다    . 주님,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겸손하고 회개하는 이 마음을 멸시하지 마시옵소서.”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꼬맛시는 돈 까밀로가 불러주는 대로 기도문을 반복했다. 그런 다음 그는 자기가 해야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문을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이 들어가서 총으로 그 사람들을 위협했습니다. 처음엔 숨겨둔 곳을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말했지요. 지도자는 내게 자기가 그 집 주인을 지키고 있을 테니, 2층에 있는 응접실로 올라가서 돈을 꺼내오라고 말하더군요. 돌아와 보니 그 지도자는 혼자 있었습니다. 그는 그 돈은 모두 공산주의를 위해 쓰여질 거라 고 말하면서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선거 바로 전에 포스터에 그 이야기가 나오자 그들은 나를 도망치게 해주었지요.”


“어째서 당신의 무죄를 주장하지 않았소?”


“그럴 수 없었지요. 그 지도자는 당에서 서열이 아주 높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하지 그러나?”


“안 됩니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더 사태가 나쁘니까요. 당이 부정과 관련을 갖게 되면 안 됩니다.”


“아직도 당을 존중한다는 뜻인가?”


“아닙니다. 하지만 두렵습니다. 내가 뭔가 얘기한다면, 당은 나를 숙청할 겁니다.” “지도자의 이름은?”


그 이름은 신문에 너무나 여러 번 올랐던 이름이어서, 돈 까밀로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누구든지 제가 신부님께 드린 말씀을 알면 안 됩니다. 다만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제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만 아셨으면 합니다. 그 정도는 신부님이 우리 부모님께 말씀해 주시겠지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이 내가 말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셨으면 합니다만, 그것은 내 말의 내용이 아니고 내 목소리를 들으셨으면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야만 나도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광야에서 울부짖는 죽은 자가 아니니까요.” 


그는 주머니에서 봉함한 편지를 꺼내 돈 까밀로의 주머니 속에 슬쩍 넣었다.


“여기에 모든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저의 서명도 있구요. 이 봉투는 뜯지 말아 주세요. 그러나 우리 식구들에게 그 편지가 그들의 것이라는 것과 내가 집에 가고 싶어한다는 얘기는 해주셔도 됩니다.”


꼬맛시는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음성도 떨렸다. 


“Ego te absolve…” 돈 까밀로가 말했다.


꼬맛시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듯했다. 그는 신문을 접어서 돈 까밀로에게 건네 주었다.


“기념품으로 두십시오.” 그가 말했다.


“신부님은 이보다 더 낯선 땅에서 고백을 들어본 적이 없으시겠지요. 편지에 관해서 신부님께 말씀 드린 건 잊어 주십시오.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이지…돌아오지 못할 지점을 저는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단정하진 말게, 동무.”


돈 까밀로가 말했다.


“하느님은 지금도 프라하의 하늘 아래 전초 기지를 두고 계시다네. 자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조직이 잘 되어 있지. 자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아들의 방송을 들으시도록 해보겠네. 내용 때문이 아니라, 아들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말이오.”


꼬맛시는 일어섰다. “하느님!”


그가 말했다.


“이런 장소에서, 누군가가 내게 하느님에 대해서 얘기해 주리라고 어느 누가 상상인들 했겠습니까?”


“하느님은 어느 곳에나 전초 기지를 가지고 계시다오, 동무.”


돈 까밀로가 말했다.


“여기 모스크바에도 말이오. 하느님의 조직은 아주 오래 된 것이지만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다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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