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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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아들 어거스틴(제38회)
knyoon

 

(지난 호에 이어)

 

▲Young Augustin 

 


 ∽ 26 ∽

 


 밀라노에서 로마로 장관을 보내어 그 도시의 수사학 선생을 찾아냈습니다. -고백록

 

 알리피우스가 어거스틴을 방문하고 며칠 후에 간단한 쪽지를 하나 보내왔다. “카라칼라의 목욕탕에서 오늘 저녁 일곱시에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카라칼라 목욕탕은 인기있는 목욕탕 중의 하나였다. 알리피우스와 어거스틴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그 건물의 방들은 어떤 것은 단단한 은으로 만들었고, 또 어떤 것은 누미디아에서 날라 온 초록빛 대리석 장식 판자가 늘어서 있었으며, 이집트에서 수입해 온 화강암 기둥이 줄지어 있었다. 더 마음에 드는 것은 그 곳이 비교적 한적하기 때문이었다. 1,600개가 넘는 대리석 의자가 풀장 둘레에 놓여 있었다.


 알리피우스는 약속 시간이 되어도 오지않고 있었다. 어거스틴은 홀 입구에서 기다렸다. 그 홀은 영묘같이 크고 둥근 천장과 형태가 판테온과 비슷했다. 내부는 돔 형의 회벽 천장이고, 기둥은 홈이 패였고, 바닥엔 타일을 깔았다. 전면 계단으로 올라가는 현관이 본관 건물의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다.


 마침 알리피우스가 달려왔다.


 “여보게, 늦어서 미안하이.” 그는 노점상에서 산 과자를 먹으며 말했다.


 “앉지. 자네에게 중요한 소식이 있네.”


 그들은 목욕탕 입구에 있는 대리석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많은 시민들이 저녁 시간의 여흥을 찾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리피우스가 과자를 나눠 먹고는 말했다.


 “원로원에서 내달에 웅변대회를 열고 대중에게도 공개하는 모양일세. 내가 자네 이름을 써 낼까?”


 “좀 더 자세히 말해봐.”


 “상으로, 공무원 교육기관 산하에 있는 밀라노의 수사학 전문가 자격을 준다고 하네.”


 어거스틴의 눈빛이 옛날처럼 잠깐 반짝 하더니 곧 꺼졌다.


 “내 경쟁자가 장관과 접촉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면 내가 잠자코 있는 편이 낫다는 건 로마에서 누구나 아는 사실일세.”


 “자넨 점쟁이처럼 말하는군. 이봐, 우리 마니교도들이 무대에 오른단 말일세.”


 “시마쿠스는 마니교인이 아닐 걸.”


 “물론이지, 우리가 존경하는 장관은 이단 중의 이단이고 영리한 자야. 그는 기독교를 경멸하고 있어. 그와 동시에 마니교가 기독교를 대항하는 방패막이가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정치가라고. 그러니 상을 마니교도에게 줄게 틀림없거든. 그리되면 자네가 유력하지. 자넨 마니교와 노골적으로 결별한 건 아니니까.”


 어거스틴도 그런 생각을 이미 하고 마음속에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모으고 있었다.


 알리피우스는 어거스틴이 웅변하는 흉내를 냈다. 연극을 하듯 왼팔을 앞으로 뻗치며 말했다.


 “나는 웅변대회가 끝나면 시마쿠스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노라. ‘나는 오늘밤의 명예를 우리의 웅변자에게 주는 최상의 기쁨을 가졌습니다. 모든 신들이 그에게 미소를 보내주기 바랍니다. 어거스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젊은이여, 앞으로 나와서 우리의 위대한 발렌티니안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이 증서를 받으시오.’ 어떤가, 그럴듯하지?”


 어거스틴은 거의 다 헤진 가죽 샌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불안한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 마니교도들이 시마쿠스한테 압력을 가하고 있거든. 그러니 그 사람 손바닥에다 금표 몇 푼만 쥐어주면 자네가 그의 표를 얻어 상을 타게 되는 걸세.” 알리피우스가 말했다. 


 그는 곁눈으로 친구의 동정을 살폈다. 카르타고에서 시 대회가 있을 때 어거스틴이 뇌물이란 말에 기겁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넨 내가 뇌물을 들고 갈 것인가 의아해 하고 있겠지.”


 “누구하고 협력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니교도들이 위에서 조종하고 있는 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겠는가가 문제일세.”


 “알리피우스, 이 친구, 어떻게 자네가 그런 말을 하나?”


 어거스틴의 팔이 그를 격렬하게 감으며 말했다.


 “난 자네가 가장 권력있는 어떤 원로원의 뇌물을 거절하고, 타협을 하느니 자네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게 낫다고 한 얘기도 들었네만. 그런 자네가 나를 위해 기꺼이 이런 일을 해주겠다니, 웬일인가?”


 알리피우스의 큰 눈이 그를 쏘아보았다.


 “곤경에 빠진 친구에게 혜택이 되는 일인데 누가 마다하겠나?”


 “플라우투스가 자기 작품의 인물 한 사람을 마음에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네. ‘친구에게 향한 신의와 충정이 자네와 똑같을 수 있는 이는 이 세상에 결코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없다고 생각하오.’”


 알리피우스의 얼굴이 화사한 미소로 피어나는 듯했다.


 “그럼, 이 계획에 동의하는 건가?”


 “만약 자네가 십년 전에 이 계획을 내 놓았다면, 난 자네를 때려눕혔을 걸세.”


 어거스틴의 한숨 소리가 타일 바닥을 끄는 가죽신발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난 얼마나 타락하고 있는 걸까? 물론 그 계획대로 하겠네. 별도리 없잖나.” 


 알리피우스는 어거스틴의 팔꿈치를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 이젠 목욕이나 할까?”


 “그러세.” 어거스틴이 억양 없는 어조로 말했다. 그들은 풀장으로 가서 사람들 틈에 끼었다.


 “돈을 준비할 텐가? 만일 없으면 내가 빌려주겠네만.”


 “고마워. 그렇게 해주게. 나중에 갚겠네.”


 “멜라니에게 보낼 건?”


 “멜라니에게 보낼 것도.”


 “대회에서 이겨 밀라노로 가게 되면 자넨 멜라니와 아들도 부르러 보낼 수 있을 게 아닌가.”


 어거스틴은 가슴이 뛰었다. 


 “그러니까 난 꼭 이겨야 해. 무조건 이겨야 돼.” 그는 무서운 결심을 한 사람처럼 말했다. 

 

 

                             ∽ 27 ∽

 


 거지는 즐거워했으나 나는 근심에 싸였습니다. 그는 걱정이 없으나 나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고백록

 

 어거스틴이 밀라노에 왔을 때, 발렌티니안 2세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밀라노에서 황제로 2년간 통치하고 있었다. 밀라노의 주교인 암브로시우스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그는 이교를 전복시키는 데 그의 권력을 힘껏 행사했다. 로마 원로원이 평화의 여신 빅토리아 제단을 원로원 건물 안에 세우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마니교도와 이교도들의 공공집회도 금지했다. 황제가 이교도들의 제사와 축제 행위를 묵인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런 활동을 없앤다는 건 가망 없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때가 되면 이러한 활동도 자연히 없어질 것임을 확신했다.


 이것이 바로 어거스틴이 로마의 웅변대회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밀라노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이었다. 성공은 그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주었다. 그는 국가의 수사학자로, 그리고 도시의 웅변가로 귀족들과 지식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대학에선 강의를 하고, 황제의 궁전에선 웅변을 했다. 그는 현인들과 지혜를 겨룰만한 위치에 있었다. 틀림없이 모니카의 야망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어거스틴은 자기가 이 제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혼자 말을 했다. 꿈에도 자기가 그렇게 되리라곤 기대하지도 않았다. 단조롭고 고된 세월은 지나갔고, 아름다운 풍경화가 담긴 미래상이 그의 앞에 펼쳐졌으며, 명성과 영광이 약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실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다. 위궤양이 심하게 그를 계속 괴롭혀 비참한 지경에 놓여 있었다. 그는 자기의 환경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잘 합리화했다. 그는 영혼이 없는 사람 같았다. 영혼과 육체를 동일시한 루크레티우스처럼 다른 관념은 모두 환상에 불과했다.


 밀라노에 도착해서 그가 처음 한 일은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방문한 일이었다. 어떤 사람이, 주교는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낯선 이나 친구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귀족이나 평민이나, 누구건 아무 때건 그의 서재로 걸어 들어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허락했다.


 성직자의 사택은 암브로시우스가 설교하는 예배당에 붙어있었다. 어거스틴이 갈색 비단으로 지은 새 토우가를 입고 찾아갔을 때, 사택건물 앞에 개미의 행렬같이 남녀가 두 줄로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들어가는 줄에 가서 섰다. 반시간쯤 지나서야 서재 문턱에 들어섰다.


 암브로시우스는 책과 족자와 액자가 쌓여 있는 넓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유대인 사제가 입는 법의 같이 어깨가 꼭 끼는 양털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 옷에는 네 개의 검은 십자가를 수 놓았다. 목자의 지팡이 같이 생긴 주교의 홀이 상 옆에 서 있었다.


 어거스틴은 거기서 마르고 창백한 모습을 보았다. 암브로시우스는 밤 시간을 거의 기도로 보낸다는 말이 있었다. 눈 같이 흰 머리칼이 어깨까지 내려와 섬세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주교는 자애 깊은 어버이의 눈매를 하고 있었다. 초승달 그림자가 덮인 두 눈이 수은 원반처럼 빙글 돌며, 빠르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모든 걸 흡수해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 눈은 어거스틴이 들고 있는 책을 훑어보았다. 그 눈은 주교 옆에 서서 자기 영혼의 짐을 내려놓고 근심에 주름잡힌 어떤 과부의 얼굴에 동정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 눈은 어거스틴 쪽으로 건너와 그의 발끝에 머물렀다. 그 눈은 다시 책으로 갔다. 그가 말할 때 말씨는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암브로시우스가 집정관으로 있을 때 밀라노의 주교는 아리안이었는데, 암브로시우스가 도착하자 세상을 떠났다. 정통파 계열과 아리안 계열이 후계자를 놓고 싸울 때, 갑자기 한 어린이의 음성이 예배당을 울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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