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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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아들 어거스틴(제28회)
knyoon

 

(지난 호에 이어)
 그 때 어거스틴은 이상한 체험을 했다. 눈물 속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도에서도, 환락이나 주연에서도, 고전이나 시에서도, 수사학을 가르치는 데서도 그는 구원을 얻지 못했지만, 눈물짓는 행위에서 그는 위로를 얻은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해 가을, 거의 매일 저녁, 모니카의 아들은 카우치 위에 얼굴을 파묻고, 실성한 아이처럼 어둠 속에서 흐느껴 울곤 했다. 흐느낌 속에서도 그는 이따금 모니카의 성경에서 따온 애가 중의 한 귀절을 웅얼거렸다.


 “내게 준 그대의 사랑은, 여인이 주는 사랑 이상으로 경이롭도다.”


 묵은 해가 저물어 가고 있을 무렵 어느 날, 로마니아누스가 그에게 가까이 찾아와 말했다.


 “어거스틴, 난 자네가 여기선 행복하지 못하다는 걸 알겠네. 카르타고로 돌아가고 싶겠지?”


 멜라니에 대한 갈망이 순간 어거스틴을 휩쓸었다. 지난 며칠 동안 멜라니는 그의 마음에서 떠나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 진 빚을 갚을 때까진 있으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잘해주셨어요.”


 “빚은 다 갚았다고 생각하게.”


 “하지만 선생님…”


 “그렇게 하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사 선생님은 어떻게 하구요?”


 “카르타고에서 한 분 모셔오지. 내일 모레, 카르타고로 나도 떠나겠소. 내 마차를 타고 같이 가세.”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넓은 아량에 어찌 다 감사해야 할런지요.”


 “카르타고에 와서 내 집을 찾으면 되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날 어거스틴은 작별인사를 하러 모니카를 방문했다. 그들은 농가 바깥뜰에서 헤어졌다. 작별은 짧고 어색했다.


 “봄이 오면 카르타고에 오시겠어요?” 올리브 나무 위로 스쳐 지나가는 제비를 힐끗 쳐다보며 어거스틴이 물었다.


 “글쎄, 그래주길 바라느냐?” 모니카는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럼요.”


 “별로 원하지 않는 줄 알았구나.”


 어거스틴은 턱을 부비며 땅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로마니아누스님이 제가 진 빛을 없애준다고 하셨어요.”


 “참, 좋은 분이시구나.”


 “오늘 그의 마차로 저를 카르타고에 데려다 줍니다.”


 “하느님이 갚아 주시길 빈다.” 


 “어머니께 편지하겠어요.”


 “소식 기다리겠다.”


 “그럼 가봐야겠어요. 안녕히 계셔요.” 어거스틴은 어머니를 바라보고 억지로 한 번 웃었다. 


 그는 몸을 굽혀 어머니의 뺨에 그의 입술을 갖다 댔다. 그녀는 밀려오는 감정을 억제하고, 아들을 가슴에 껴안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잘 가거라.” 모니카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시내로 구부러지는 골목까지 한달음에 달려 내려갔다. 어머니는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가 사라진 후에도 모니카의 입술은 기도를 외우고 있었다.

 

 

 


 어거스틴이 타가스테에 돌아왔을 때 멜라니는 그에게서 깊은 변화를 느꼈다. 전보다 더 우울해지고 말이 적어졌으나, 타가스테로 떠나기 전보다 더 사색이 깊어진 듯했다. 그는 별로 웃지도 않고 농담하는 일도 없었다.

 

그의 큰 자부심마저 없어지고, 신념에 찬 태도마저 사라졌다. 그러나 멜라니에겐 상냥하게 대해 주었다.


 “여보, 난 당신 생각만 해왔어. 타가스테에 피어난 어떤 예쁜 장미도 내 사랑 옆에선 한낱 사막의 갈대 같구료.” 어거스틴이 말했다.


 “그럴리가 있나요? 난 말콰의 생선통처럼 뚱뚱해져서 보기 싫은 걸.”


 “당신은 별보다 아름다워. 그리고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해.” 그는 그녀를 따뜻하게 껴안으며 말했다.


 “어머니께 내 이야기 하셨어요?”


 “했지.”


 “뭐라고 하셨나요?”


 “물론 난 어머니의 축복의 말씀은 기대하질 않았어. 그런데 어머니는 정말 놀라운 분이야. 내가 말씀 드렸을 때 어머니는 바람 없는 날의 카르타고 호수처럼 침착 하셨어. 당신이 옆에 있었다면 어머니께서 이미 다 알고 계셨구나 생각했을 거야.”


 “알고 계셨을 거예요.” 


 어거스틴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것 같진 않아. 그런데 여보, 내 종달새, 내가 보고 싶진 않았소?”


 “굉장히 보고 싶었어요.”


 “당신 뭔가 걱정이 있는 것 같애.”


 그것은 사실이었다. 멜라니의 눈은 방안의 이것저것을 둘러보다가 다시 어거스틴에게로 불안스럽게 왔다 갔다 했다. 그녀의 우아한 입술은 로마의 활 끝처럼 양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가 있었다.


 “아기 때문에? 당신 몸이 어떻게 될까봐 그러우?”


 “아니요, 그런 건 아니어요.”


 “그럼 뭐지?”


 “아, 어거스틴!” 그녀가 머리를 갸우뚱 하며 말했다.


 “아, 여보! 내가 당신에게 온 건 잘못이었어요. 요 몇 해 동안 우리가 같이 산건 큰 잘못이었어요. 결혼을 안하고 아기를 갖는 건 죄악이어요.”


 “바보 같은 소리. 양심의 무질서는 모두 한낱 허구일 뿐이라고 우리 종교가 가르친 걸 잊었소?” 


 “잊지 않았지요. 하지만 이곳에서 겪는 쓰라림과 아픔이 변명이 되나요? 마니는 어떻게 하라고 말하나요?” 그녀는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물었다.


 어거스틴은 그녀를 홱 끌어당겨 안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어거스틴은 그녀를 꼭 안고 그녀의 눈물 위에 입을 맞추었다.


 “내 사랑, 내 말을 들어봐요. 난 변화가 많은 내 사춘기 시절에 한 일, 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을 후회해왔소.

 

하지만 지금은 마니의 성스러운 말씀을 따라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만은 후회하지 않소. 한 가지 후회되는 게 있다면, 당신이 갈망하는 것을 줄 수 없다는 것뿐이오. 멜라니, 내가 당신의 영원한 존재가 되게 해주오.” 


 멜라니는 그의 입술에 소리나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어거스틴의 몸에서 그녀가 요구하는 불변의 자세로 이끌어 내릴 듯이 정열적으로 매달렸다. 어거스틴의 몸에서 간신히 떨어져 나오며 그녀는 말했다.


 “당신 안 계신 동안 난 또다시 당신을 떠나버리려고 했어요.”


 “그랬다면 난 죽었을 거야.”


 “내 사랑이 당신께 사슬이 되어 묶여버렸어요.”


 “영광스런 황금빛 사슬이여! 내 얼마나 그대를 사모하는지!” 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더듬었다.


 “그런데 당신 딸에게 줄 이름은 지으셨나요?” 그녀는 다시 명랑해지면서 말했다.


 “딸이라니? 난 아들을 낳을 건데.”


 “신전에 다녀왔나요?”


 “아니, 그렇지만 난 아들을 낳을 거야. 이름을 지었어.”


 “말 해봐요.”


 “지금은 안돼.”


 “그래도 말 해봐요.” 그녀가 졸랐다.


 “나중에.”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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