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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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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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술(譯述) 윤경남(국제펜클럽회원)
윤치호 영문일기 제4권 1895년~1896년

 

 


(지난 호에 이어)
 아니, 내가   상해에 머무는 동안 대학이나 선교부에서 일했어도 봉급이고 뭐고 받은것이 없었다.
 외국 선교사와  중국  보조인 사이의 끊임없는 마찰을 생각한다면, 봉급에 대해 오직 해결 방법은 중국보조 목회자들이 자급자족하는 것 뿐이다. 왜? 본토  교역자들이 품는 불만은 그의 빈약한 보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받는 생계비가 외국 선교사들의 생활방식과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로호르씨가 언젠가 내게 말한적이 있는데, 그는 자기 하인들에게 매달 35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매달 8불 씩 주고 4명의  중국인 보조목회자를  채용할 수가 있는 돈이다. 자, 생각해 보라!  중국인  목회자는 자기자신 뿐만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의  생계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만일에 중국 목회자인 선교사가 친구와 즐겁게 지내야 하는데,  그들과 차 한 잔을 마실 돈도 없어야 하나?

 그건 그렇다 치고, 선교사가 적어도 합리적으로 편안 하게 생활 할수있도록 보장받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중국의 목회자만이 생활비나 용돈을 자급자족해야 한단 말인가? 


  어떤 선교 사역도 시장에서 흥정하듯이 성스럽지 못하게 대가를 치를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렇다면 추구해야할 임무란 무엇인가?  가능하면 빠른 시일안에 본토 교회들이 각기 그들의 중국인 목회자를  부양 해야하는 일이다. 성실한 목표를 가지고 선교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누구나 외국 선교부로부터 16불을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급자족으로 교회에서 8불을 받고 만족하는 것이  더 떳떳하지 않겠는가.


‘국내에서 교육을 받은’ 동양인 선교사에 대한  비난은 이런 일들때문이다 ; 


1.그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일본, 중국, 인도 기타 선교지에서도 볼 수있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교육을 받고는 오히려 은인들에게 대드는 비열한 젊은이들에 대하여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  


이렇게 배은망덕한 유형은 비교적 아주 적다. 한 명의 선한 니이시마(新島 동지사 대학 설립자 -옮긴이)는 열 명의 배신자들이 저지르는  못된 짓을 막아낼만한 영향력이 있다.


2.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동양인은 높은 봉급을 요구한다. 내 생각에, 한 젊은이가 고등교육을 바라면서 선교단체에 자원 하여 참여  했거나 관심을 가졌다면,  아무리 적은 봉급일지라도 아예, 보수에 대하여는 절대로   불평하지 말아야한다. 그렇다고 선교부가  외국에서 교육받은  교역자에게 교육을 받지않은 사람과 같이 적은 봉급을 지불 한다면 그것은 공평한 처사일까? 그것은 어쩌면 그가 교육받기 이전만 못한 건 사실이다. 그는 선교부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그 교육 혜택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선교부가 그들의 예산을 무엇에 쓰는가를 가장 잘 판단할 것이 틀림없다. 이것이 사실인 한편, 그것은 아주 평범한 상식문제 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교육받은 한 젊은이가 그들 때문에 왔다고 해도, 그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보상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칼은 현재 가지고 있는  성능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지 ‘비교육’상태인 보통 쇠조각이었을 때의 무게로 판단하는 건 아니다.


3. 국민성의 상실
외국 교육을 받고와서 우쭐대는 동양인은 썩은 계란보다 더 나쁜 경우이다. 왜냐하면 그는 미국이나 유럽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마치 미국이나 유럽의 모든 영예가 자기 것 인양 알기 때문이다.  그는 뽑내거나 분위기를 꾸며내고 구미식 음성으로 나불댄다.  자기를 제외한 다른 의식을 가진 모든 사람을 싫어하고 그가 런던, 보스턴,베르린 등에서 얻은 견문이나 승리감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그는 자기나라 물건이 특별히 나쁘지도 않은데 외국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모두 경멸한다. 일본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나마이끼(주제넘다)’ 혹은 ‘풋내기’라고 부른다. 남자건 여자이건 이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경멸감이 앞선다. 하지만 때로는 국제화에 대한 비난은 외국에서 교육받은 동양인에게도 던져지는 수가 있다. 그런 사람은 본토박이에 대한 호감으로 어떤 물건이나 방법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본토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국제화한 것이다. 왜 당신은 가난한 봉급에 만족하지 않는가? 당신은 국제화해버렸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렇게 국제화해서 어떤 집에서 건 살고 싶지 않아진다면 참으로 비참한 일이다.  


 이 모든 일에 대한 결론은 이렇다: 이 모든 일들은그 사람이 봉급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선교부 안에서 주님께 봉사하고자 하는 결심이 서 있지 않는한,  선교부 혹은 동양인의  국내교육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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