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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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제22회)
knyoon

 

(지난 호에 이어)
멜라니가 그의 생각을 들여다 본 것 같았다.


 “난 오늘밤에 당신을 떠나려고 했어요.” 그녀는 너무 작은 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겨우 들렸다.


 “난 한 번 나가면 결코 돌아오지 않아요.”


 그녀는 슬픔에 싸여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소용 없는 짓이었어요.”


 “멜라니!”


 그는 성큼 그녀에게 다가가 팔을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 그녀는 떨리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랑해요. 당신만을 사랑해요.” 그녀는 목이 메었다.


 “나를 용서할 수 있겠소?”


 그녀는 그의 뺨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당신은 왜 행복하지가 않지요?”하고 그녀가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내가 옳았나요, 옳지 않았나요? 난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고 싶어 당신에게 왔어요. 그런데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했어요.”


 “난 당신을 믿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비참하게도 실패였어.”


 “우린 둘 다 실패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내 자신이 부끄러워. 당신은 남자가 바랄 수 있는 전부야. 그리고 멜라니...” 그는 멜라니를 가슴에 꼭 껴안았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


 그들은 다시 키스했다. 극도로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접촉은 강렬한 열망에 타올랐다. 어거스틴은 다정하게 그녀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


 어찌하여 뜻하지 않은 때 어머니가 읽어준 성경 구절이 떠오르는 것일까?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신랑이 결혼 첫날 밤 신부를 안고 가듯, 그가 멜라니를 안고 문턱을 넘어설 때 바울의 말이 생각났다. 


 “...두 몸이 하나가 될지니.”


 이것은 분명히 하느님이 그의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찬양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아니면 왜 지금 그 구절이 생각났겠는가? 어거스틴이 알지 못했다거나 잊었다면 그것은 그 구절이 어거스틴 자신의 간통을 용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난받기 위해 쓰여졌다는 점이다. 


  어거스틴의 팔에 안겨 멜라니는 그의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여보, 한 가지 비밀을 알고 싶지 않으세요?”


 “알고 있어.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것.”


 “그래요, 하지만 그게 아니어요.”


 “수상쩍게 굴지 말고 어서 말해 봐.”


 “놀라면 안돼요.”


 “당신이 내 곁에 있는 한, 난 뭐든지 준비 태세 완료.”


 그녀는 그의 귓불에 키스를 했다.


 “당신은 곧 아버지가 될 거예요.”

 

 

∽ 15 ∽

 


어찌 불태우리까, 나의 하느님, 어찌하면 이 지상에서 당신께로 다시금 높이 불태우리까. –고백록

 

 멜라니가 이런 선언을 하고 나서 충분히 시간이 지나도록 어거스틴은 어리둥절한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뻐하질 않으시는군요.” 그녀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내가 기뻐해야 되나?”


 “어떤 이들은 기뻐하던데.”


 밖에선 마도요 새가 아침 햇살을 향해 이상스런 탄식의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아주 노란 햇빛이 침실로 흘러 들어왔다. 4인조의 로마 병정들이 큰 소리로 상소리를 주고 받으며 덜거덕거리고 하숙집 앞을 지나갔다.
 “당신은 걱정하시는군요. 먹을 입이 또 하나 생길 테니까.” 멜라니가 말했다.


 “그런 게 아니고.”


 “어린아이가 당신에게 우리 관계를 자꾸만 생각나도록 할 테니까.”


 “틀렸어.”


 “당신은 조만간에 당신의 어머니가 우리를 찾아오실 걸 걱정하고 있지요?”


 잠시 후에 어거스틴이 말했다.


 “지난 번 편지에 어머닌 우리를 방문하려고 카르타고로 오실지도 모른다고 암시하셨어.”


 “왜 어머니 오시기 전에 사실을 말씀 드리지 않는 거예요?”


 “감히 말이 안 나와.”


 그는 천장에 눈을 둔 채 말했다.


 “여보, 언제까지 우리 일을 비밀로 해두실 거예요?”


 “난 말할 수가 없는 걸.” 그는 말했다.


 “가엾은 어거스틴. 내가 당신에게 고통만 주었군요.”


 어거스틴은 그 말을 완강히 부인했다.


 “하기야,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르죠. 음식을 잘못 먹어서 속이 메스꺼운지도 모르니까요.”


 어거스틴은 그녀가 겁먹은 소리로 둘러대는 것을 알았지만, 그 말로 위안을 얻지는 못했다.


 그 후 며칠 동안 어거스틴은 그녀가 잘못 안 것이고, 아기가 아니기를 기도했다. 한 달이 지난 후 그는 그의 기도가 성취되지 않은 걸 알았다. 멜라니는 분명히 임신한 것이다.


 그 무서운 말은 어거스틴을 몹시 불안하게 했다. 멜라니는 그가 전과 같지 않을까봐 걱정했다. 


 그 후로 몇 주간을 그들은 구름에 싸여 지냈다. 멜라니는 오랫동안 병이 났다. 그들의 성격이 잘 부딪쳐 툭하면 싸웠다. 어거스틴의 이마엔 근심 때문에 주름살이 생길 지경이었다. 얼굴이 환할 날이 없었다.


 그의 성질은 점점 난폭해져서 친구들은 대개 그를 버림받은 사람처럼 피했다. 그가 깊은 골짜기를 걷고 있는 동안 키케로의 문구가 떠올라 그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어느 날 밤 멜라니가 잠든 후 그는 숙제인 호르텐시우스의 논문을 읽고 있었다. 뜻밖에도 결론에 나오는 말들이 쏜살같이 책에서 벌떡 이어나 그의 머릿속에 콱 박힌 듯이 느꼈다.


 가장 위대하고 가장 유명한 옛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만약에 우리에게 불멸의 신성한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이 이성과 사랑과 진리의 추구를 인내하면 할수록, 그 영혼이 인간의 실수와 정열 속에 서로 엉켜 더럽혀지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 영혼이 자신을 들어 하늘로 다시 날아 오르기는 그만큼 더 쉬워질 것이다. 


 어거스틴은 기쁨으로 몸을 떨었다. 그는 이 글귀를 두 번이나 읽었다. 책상 위에 책을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키케로의 말을 음미해 보았다. 두 번 읽고 나니 그 글귀가 마음속에 새겨졌다. 그는 굉장히 귀중한 보석을 감정하는 보석상의 바닥 모를 기쁨을 안고 그 글귀를 다시 음미해 보았다. 읽을 때마다 그 글귀는 새로운 힘과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듯했다.


 기름등잔 밑, 그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따뜻한 불꽃 아래에서, 그 논문을 앞에 펴놓고 어거스틴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런데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쳐준다고 키케로는 말했겠다. 우리가 그것을 활용한다면 하늘과도 접촉할 수 있는 그 지혜를 말이다. 참으로 굉장하구나! 그들을 연구하는 일에 깊이 몰두한 내가 왜 아직도 세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철학자들은 말한다. 우리가 이성과 사랑과 진리의 추구를 인내해야 한다고.

나는 이성을 추구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사랑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고 있다. 누구도 나 이상 진리 탐구에 몰두할 수는 없으리. 그들은 나를 당당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나 자신을 높여 위로 솟지 못함은 그들의 말대로 내가 인간의 잘못과 정열로 더럽혀졌기 때문일까? 분명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렇다면 그 약속과 약속의 이행 거리엔 왜 틈이 생길까? 뭔가 중요한 것을 빠트리고 있다. 그게 무얼까?”


 무의식 중에 그의 생각은 어머니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모니카는 자녀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그리스도만이 네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지혜를 주신단다.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온갖 보물이 있음을 너희들은 결코 잊어선 안 되리라. 아주 기쁜 마음으로 그분의 그늘 밑에 앉아 있기만 해도 그의 열매가 너의 입에 달콤함을 알게 될 것이다.”


 어거스틴은 그의 무릎을 탁 쳤다.


 “바로 그것이었어.”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스도가 바로 중요한 핵심이다. 키케로의 이론은 틀렸어. 그의 사상 속에는 그리스도가 없다. 철학자들은 다 마찬가지야.”


 그는 자기가 내린 결론의 모순을 찾아낼 수 없었다. 자유사상가이며 자만심이 강한 이 젊은 합리주의자는 자신의 노선에서는 그리스도를 제외시켰으면서도 철학자들이 그와 똑같은 태만의 죄를 저지름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모순을 안고 있었다. 


 키케로의 글을 분석하다가 그는 벌떡 일어났다. 기름등잔을 뒤엎을 뻔했다. 그는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그는 아카시아 나무 궤짝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뚜껑을 젖혔다. 불안정한 손길로 그는 모니카가 수년 전에 건네준 책이 나올 때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것은 신약성경이었다.


 그는 그 책을 책상으로 들고 가서 펼쳐놓고 읽기 시작했다. 굶주린 사람이 게걸스럽게 먹듯이 탐독하기 시작했다. 눈이 쑤시고 머리가 아파올 때까지 읽었다. 읽다가 그는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에 멜라니가 싱싱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침실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어거스틴이 책상에 엎드려 잠에 곯아떨어진 것을 보았다. 팔꿈치께에 놓인 기름등잔이 아직도 타고 있었다.


 “어거스틴!” 하고 그녀가 불렀다.


 그는 꼼짝도 안했다. 그녀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학교 갈 준비를 해야지요.”


 “아...내가 잠이 들었었군.”


 그는 눈을 부비며 하품을 했다.


 “훌륭한 말씀이었어.”


 그녀가 두루마리 책을 힐끗 바라보았다.


 “성경을 읽고 계셨군요.”


 “죄가 되나?”


 “좋다고 생각해요. 도움이 되세요?”(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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