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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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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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목요일) 콜롬보 

 
 호기심어린 눈으로도 가까이 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스님은 내게 괴상하게 생긴 부처를 나타내는 목각상을 몇 개 보여준다. 한 개의 길이가 9야드나 된다. 그 불상들은 예외 없이 모두 못생겼다. 이미 세상에 오셨던‘ 주지 부처’라는 불상 역시 보여주었다.


 나는 그런 회의론적인 사고방식에 잠겨 있기가 힘이 들었다.“ 세상에서 아직 오지 않은 신사의 모습을 만져볼 수 있게 형상화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정말 올 것인가?”


절 안이 너무 깜깜해서 더 이상 자세히 구경할 수 없어 유감이다. 부드러운 태도와 억압하는 듯 딱딱한 태도를 가진 콜롬보 사람들을, 장님이라 해도 아시아 나라의 해안가에서 그들을 알아볼 수 있으리라. 어떤 상점 주인이 반지 하나를 30프랑 내라고 한다. 그는 결국 그 반지를 2프랑에팔았다.


 오후 11시에 콜롬보(스리랑카)를 떠나다.

 

12월13일(주일), 비가 오다. 콜롬보

 

음산한 바다-퍼붓는 빗줄기.


우류 대위가 내게 말하기를, 그가 콜롬보에서 본 뉴스 전문지에, 최근 조선의 임금을 러시아 공사관에서 옮기시는 데 실패하자, 80명의 러시아 해병 경호원을 증파했다고 한다.

 

12월16일(수요일), 싱가포르

 

아침 8시에 싱가포르에 도착하다. 아침에 폭우가 쏟아지다. 시내까지 걸어 들어갔다. 주요 간선도로에는 중국 상점, 중국인 쿨리, 중국 상가 관리사무실 등이 늘어서 있다.

 

12월18일(금요일), 더운 날씨. 사이공


우리가 사이공 가까이 이르자, 바닷물이 비취색을 띠고 있다. 지중해 연안에서 본 것 같은 아름다운 숲이 우거진 섬이다. 사이공에 오후 2시경에 도착하다.


사이공은 훌륭한 도로가 펼쳐진 아름다운 도시이다. 어떤 길은 파리의 길보다 더 좋은 데도 있다. 적갈색 도로 가에 초록빛 잎새가 길게 그늘진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이다. 마을은 완전히 중국식 일색이다-주요 상업지구 중 어떤 곳은 완전히 중국인 손에 들어가 있다. 식물원을 방문하다.


저녁식사를 하고 일본인 친구들과 마을을 산책하다. 그러고 나서 일본식으로 지은 쌀밥을 먹으러 일본인 집에 가다.‘ 코코’ 혹은 일본 장아찌를 맛있게 들다. 밥을 먹고 나서 배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홍등가에서 부도덕한 일본 여자들과 놀기 위해 남아 있었다.

 

12월19일(토요일), 덥다. 아주 덥다. 사이공

 

갑판에 머물러 있었다.


아름다운 달빛-나가야마가 대절한 보트를 저으며 10시까지 강을 따라 오르내렸다. 배 위에서도 찌는 듯 덥다.


가와가미 장군을 단장으로 하는 일본 사절단이 지금 사이공에 머물면서, 식민지 정부에서 통치하는 방법을 실습하고 있다고 한다.

 

12월20일(주일), 사이공

 

찌는 듯한 더위와 소음과 연기와 모기들까지 괴롭히는 바람에 온 밤을 갑판에서 지내다.
시드니호가 오전 6시 30분에 사이공을 떠나다.

 

12월23일(수요일)


지금까지의 항해 중 가장 심술궂은 바다였다. 아침까지 계속해서 파도가 쳤다. 나는 파도타기에 심한 멀미를 했다. 배는 24시간 동안에 200마일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선원들 말로는 지중해에서 가장 호된 경우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도 건강이 좋은 상태였나 보다.

 

12월23일(수요일), 추운 날씨. 홍콩

 

밝은 날에, 잔잔한 바다.


오후 6시 30분경에 홍콩에 닿았다.


놀랍고 유쾌한 일이 있었다. 알렌 박사가 12월 6일 발송한 편지를 받다. 위로의 말로 가득 차 있다. 하느님, 어느 때나 보여주시는 주님의 선하심이 다시금 내 잘못을 뉘우치게 합니다. 아울러 알렌 박사와 또 다른 훌륭한 친구들의 선함과 신뢰에 대해서도 나 자신을 깊이 뉘우치는 이 밤이 밝아오게 하소서.
항구에서부터 바라보는 홍콩의 야경은 설명하기 어렵게 아름다웠다.
도시 뒤로 우뚝 서 있는 산들은 가스등과 전등이 눈부시게 폭풍우가 몰려 오는 듯 장엄하다.

 

12월24일(목요일), 봄날 같은 날씨. 홍콩

 

요즘 홍콩은 완벽한 기온을 보여주는 계절이다. 저녁나절은 서늘하고, 아침에는 이른 가을 날씨 같은 즐거움을 주는 온화하고 따뜻한 바람이신선한 아침을 선물한다.


오전 8시에 해안가에 나가다. 바다에서 가까운 거리에는 광동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다. 언덕 위에 있는 도시 꼭대기까지 오르면, 유럽인들의 주택들이 보인다. 공원의 정원들은 아름답고, 여행자로 하여금 어떻게 해서 유럽의 인문과학이 불모지 섬을 쾌적한 주택단지로 변모시켰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가장 실감나게 하는 어휘는 유럽인의 경마 경기 의식이 자연을 정복하는 방법을 터득한 일이다. 그들에게 바위를 주라, 그러면 그들은 이것을 지부랄탈로 바꿔 놓을 것이다. 언덕 위에 사는 어떤 시원찮은 집단이홍콩을 그들 손에 넘겨준 것이다. 삼림의 나무들과 신대륙의 대초원도 잃게 되었고. 그런 다음 곧장 그들은 제국과 공화국을 건설했다. 파도가 덮치며 요동치는 늪지대와 저지대를 개간하여 이윽고 제2의 베네치아, 네덜란드, 그리고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다. 이제 유럽인들은 자랑스러울게다.


시드니호가 오후 3시에 홍콩을 출발하다.

 

12월27일(주일), 상해

 

홍콩에서 상하이로 가는 항해는 우리가 지금까지 항해한 중에 가장 순항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첫날 우리 시드니호는 실제로 345마일을 순항했다. 끝이 좋으면 만사여의라!


우성에 오후 4시에 닿다. 2시간 후에 기선을 예인선으로 상해 부두에 접안시키다. 내 짐들을 점검해 보았다. 동화양행 호텔에서 내가 본 짐은 거의 8짝이었다.

 


저녁을 빨리 먹고, 나의 보배, 내 사랑하는 아내를 보러 트리니티 홈으로 급히 달려가다. 그러나 휴 양의 말이 아내가 부인 병원에 갔다고 해서,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성탄일에 듣는 소식치고는 조금 위로가 되는 것은 사랑하는 내 아내가 사내 아기를 방금 낳았다는 소식이다. 아내와 어린 이방인은 아주 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좀 괜찮다고 할 수있을까? 나도 다른 아버지들과 다르지 않게 아들 낳은 소식을 대수롭지 않게 들어 넘긴 것일까?


아니, 정작 속이 탄 것은 나였다. 왜냐하면 그 꼬마 녀석이 내가 사랑하는 아내를 편안하게 위로해 주는 일을 늦추는 바람에 내 마음이 근심 걱정에 사로잡힌 것이다. 더욱이나 그의 탄생이 부득불 아름다운 꼬마“ 엄마”를 트리니티 홈에서 옮겨가는 바람에 내가 금방 아내를 볼 수 없게 만들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내가 사랑스럽고 믿음직하고 아름다운 소녀를 그가 다니던 행복한 교정에서 변화무쌍한 출세 가도로 달려가는 내게로 폭풍우같이 몰아오지 않았던가. 아내는 조용한 성품에 가사 돌보는 일을 좋아했다. 그런데 자신의 의지로 시골뜨기에게 시집온 것이다. 나라는 운명적인 육의 존재와 하느님의 은총에 크게 의존해온 것이다. 나는 이 두 육신의 존재에 본성의 도구가 된 것이다.


오, 하느님, 당신의 정의로움을 바꾸어 생각할 수 있는 자비를 베푸소서. 저의 죄를 보지 마옵시고 순수한 인간만을, 내 자신이 가치 없는 인도자임을 인정하는 순수한 인간만을 눈여겨보아 주소서.


저들에게 남편으로서, 아비로서 의무를 다할 수 있게 은혜를 베푸소서. 어둠을 뚫고 내 미래의 어두운 너울을 거두어 주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손길만을 느끼게 하소서. 내가 태어난 자리 같은 폭풍이 사라지는 어떤 이적도 구하지 않사옵니다. 다만, 오 그리스도시여, 오직 제가 씩씩하게 제 아내를 공포와 위기의 비바람으로부터 구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맥타이어 여자 기숙사에 갔으나 문이 닫혀 있다. 알렌 박사에게 급히 찾아가다. 알렌 박사와 가족이 지금은 본넬 교수 댁에 살고 있다. 마음씨 좋은 노인은 나를 보자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아내와 딸들과 아더까지 모두 나를 에워싸고 환영의 악수를 했다. 노부인이 내게 그들과 같이 지내자고 요청한다. 나름대로 그녀의 친절을 받아들이면서 정중히거절했다.


알렌 박사와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다. 그는 내게 중국인들 사이에 청일전쟁이 크게 성공한 내력을 이야기해 주었다. 리이드 박사 가족이 조선으로 이주한 이야기, 콜리에르 씨가 조선 선교사로 계약이 된 이야기, 콜리에르 씨가 헨드릭스 감독을 아무도 안 보는 데서 험담한 이야기등이었다.


11시경에 내 방에 돌아오다.

 

12월28일(월요일), 아름다운 날씨. 상해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하면서 밤잠을 설쳤다.


7시 30분에 맥타이어 여자 기숙사로 걸어갔다. 헤이굳 선생을 빼고는 모두 병이 나서 침대에 누워 있다. 내게 환영의 소나기 인사를 퍼붓다. 나는 적어도 한순간, 친구들이 있는‘ 집에’ 온 느낌을 받았다.


리처드슨 선생은-내 고백서를 보낸 몇 사람 중 한 사람이다-그녀는 나를 보고 몹시 기뻐하면서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하는 인사를 곁들여 나를 따뜻하게 껴안아 준다.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새로 부임한 세 명의 숙녀들을 만났다. 한 사람은 내가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에 있을 때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 웨스트 게이트 병원으로 갔다. 아침 9시. 사랑하는 아내를 품에 끌어안다. 하느님, 감사를 받으소서! 어여쁜 아내는 잘 지내고 있다. 아기도 건강하다. 11시 반까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지내다. 오후 내내 아내와 함께 보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기쁨이라니 말로 할 수 없구나!


어떤 별이 내 생일에 빛을 냈을까? 어째서 우리 가족이 함께 모이는 축복된 일이 그렇게 자주 좌절되는 것일까? 내가 양친 부모님과 해를 거듭하며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는 부족한 것인가?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몇 달씩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도 부족한 것일까? 만일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부모님과 아내를 이따금 보러 와야 한단 말인가? 아니, 이 도시 안에 우리 네 식구가 모두 함께 있지 않는가? 내 사랑하는 아내, 병원에 있는 갓난아기와, 두 살짜리 어린딸 로라. 하느님! 로라에게 축복하소서! 트리니티 홈에 머물다가 나는 다시 호텔로!

 

   
윤치호와 부인 마시엔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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