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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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과윤치호 러시아에가다(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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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3

민영환과윤치호 러시아에가다(10 )

 

 

3월7일. 목요일. 구름 낀 날씨. 밤에는 폭우가 쏟아지다. 서울. 


(지난 호에 이어)
오늘 아침에, 동학군을 진압하러 나갔던 일본 관리들이 전투 결과를 적은 보고서를 조정에 제출하다. 군부 대신 조씨는 그 보고서에 별로 관심을 두지않는 것 같다.


알렌 박사가 내게 아직은 상해에 가지말라고 충고해주다. 지금 상황에 조정 관리 규정이 바뀌는 시기에 서울을 떠나면, 새로 임명된 나의 입장에 좋지않은 영향을 주리라는 것이다. 내가 상해로 갈 계획을 다른 날로 미루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상해에 있는 나의 보배, 내 아내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미여지는 듯 하구나.  


 사람들은 주인이 여러해 동안 모질게 부려 온 하인들을 노비해방시킨 법률에 찬성하고 있다. 


어느듯 조선의 계사년(癸巳年)도 저물고, 갑오년(甲午年)을 점치는 화투놀이를 한다. 화투놀이꾼들은 대대층층기치갑오 (대대層層旗幟甲午)라고 서로 불러준다. 해석하면, 갑오년에 전쟁과 방불한 작전을 연속해서 증언하게 된다는 점괘가 나온 것을 말한다.

 

 

 


나는 길 거리에서 술주정뱅이들을 많이 본다. 서울에서 3주 동안에 본 주정뱅이가 상해에서 5년 동안 만난 주정뱅이 수보다 더 많다. 

 

3월9일. 토요일. 따뜻하고 아름다운 날씨. 서울.


길을 걸어다니기 힘들게 질척거린다. 어제 외삼촌 이건혁씨가  청국 산 조랑말을 끌고 오셨다. 말에 얹을 안장을 사러 일본  정착촌에 가다. 신나게 타고 돌아다녔으나, 아버님에게 버선을 더럽혔다고  따끔하게 꾸중만 듣다.


오후에 총리 비서실에서 주관하는 회의에 참석하러 가다. 5명의 젊은여인 들이 나와서 노래하고 기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일들엔 도저히 흥미가 일지않는다.


1. 조선 여성의 한복은 일본 옷 같이 우아한 데가 없다. 그러나 청국 옷에서 보여주는 유치하게 화려한 것과는 다르게 의젓해 보이긴 한다.

2. 아마도 조선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제일 담배를 많이 피우는  백성임에 틀림이 없다. 여인들이 유행과 관계없이, 시도 때도 없이 피워댄다. 잎담배, 줄담배, 곰방대, 큰 파이프 담배 등을 천연스럽게 잘도 피워댄다.

3. 노래하고, 춤 추고, 술을 마시고, 먹기도 하다가, 손님들 앞에서 요강을 사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민족은 세상에 아무 데도 없을 것이다.


4. 노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방안엔 담배연기가 끊임없이 자욱하다.


5. 조선 사람들은 술을 지저분하게 마신다. 아무리 큰 잔이라도 술통이 바닥 날 때까지 일어서지 않는다. 먹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6. 조선 음악은 청국이나 일본 보다 데테르 (Detter)에 가까운 소리를 내어 곤혹스럽게 만든다. 한 소녀가 조선춤을 추면서 아름다운 발을 자랑스럽게 살짝 내미는 모습이 귀엽다.  

 

 

 

3월10일. 일요일. 아름다운 날씨. 서울.


진흙, 진흙, 진흙투성이다. 오전 10시에 스크랜튼 박사와 함께 상동교회에 갔다. 내가 회중 설교를 하다. 스크랜튼 박사는 6명의 어른과 한 여성에게 세례를 주었다.


스크랜튼 박사 댁에서 점심을 들었다. 스크랜튼 박사의 어머니와 부인은 어디를 가나 똑 같이 훌륭한 선교부를 만든다. 스크랜튼 박사에겐 아주 예쁜 딸들이 있다.  조선 사람들이 ‘노마님’이라고 부르는 , 스크랜튼 박사의 어머니는 여학교(이화 학당 역자주)도 세웠다. 박영효는 이들의 교육제도를 신뢰하여 그의 어린 딸을 스크랜튼 학교에 보낸다. 박영효는 참 지각있는 일을 한 셈이다.

 

3월11일. 월요일. 구름이 덮인 날. 이른 아침에눈이오고, 밤은 아름다웠다. 서울,


조선달력으로, 오늘이 어여쁘고 사랑스런 우리 보배와 지난 해에 결혼한 날이다. 아내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오직 아내의 사진을 내 가슴에 꼭 대고 잠드는 수 밖에 없었다. 아내도 나를 생각해 줄까? 하느님께서 아내와 늘 함께 하시고 우리가 곧 만날 수 있게 은총을 내리소서.


정부 고문관 이시스까 (石塚)와 오랫동안 이야기 나누다. 그는 잘 생긴 젊은이다. 그 사람도 나처럼 조선 관리들이 교활한  권모술수를 부리는 것을 불평하다.


이달에 들어와 처음으로 시원하게 목욕하다.


오늘 오후에 어여쁜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리쳐드슨 선생에게, 도쿄에 있는 사촌 동생 치오에게, 그리고 상해의 MN에 편지를 쓰다. 아내에게는 어머님의 사진 한 장을 보내다.
다음 이야기는 청국인들이 아산에서 행패를 부린 이야기이다.


삼촌(윤치소)와 관련된 이야기;


예(葉)장군과 세(攝)장군 휘하의 청국 군인들이 동학당을 진압한다는 구실로 포악한 행위를 저질렀다. 게다가, 약탈과 겁탈을 일삼는  행패마저 저지르고는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시치미 떼고 있었다.


그  청국군 중의 한명이 참외밭에 들어가 잘 익은 참외만 따는 게 아니라 익었건 안익었건 몽땅 서리해갔다. 단지 장난인 것처럼 하면서 들어가 온 벌판의 포도넝쿨과 뿌리까지 뽑아 버린 최악의 해를 끼친 사건이 벌어졌다.


청국 장군들은 가난한 조선 사람들이 청군이 도착하기 전에 어떻게 왜놈들을 몰아냈는지 그 모험담을 들을 기회를 아깝게도 놓쳤다.


어느날 일본군이 가까이에 왔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청국군 장군들이 조선의 한 관리에게 목숨을 구해주는 대가로 황소 백필을 요구했다. 그러나 농민들이 기르던 가축들이 모두 도망쳐 버려서 조선 관아에서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관리들이 내 작은 아버지께 간청해서 가축들을 받아내려고 내 사촌, 윤치소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고맙게도 삼촌이 70마리의 암소와 황소를 주기로 보증을 해주고 나서야 청군들은 성환으로 떠났다. 만일에 청군들이 대가를 다 받지 못하면 삼촌이 대신 주겠다고 약속한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성환에서  소떼를 부리기도 전에 일본군인들이 처들어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소문을 듣자마자 그들은  겁에 질려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 되자, 청주로  소떼를 몰고 갔다. 그곳에서 충주로 들어섰는데 또 다른 소문이 돌았다. 일본군이 그리로 쳐들어온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소떼 임자들은 하나씩 둘씩 청국인 손에 넘기고 도망쳐 버렸다. 내 삼촌은 하는 수없이 50마리 소값을 갚아 주어야만 했다.


조선 조정이 지난 여름에 노비제도를 폐지한다고 공포했을 때 종을 데리고 있던  많은 주인들이 방면 된 종 들에게 참혹하게 모욕을 받았다! 또 어떤 경우엔 자유를 얻은 종들이 전 주인을 모욕하고 두들겨 패거나, 자기 마누라와 딸을 가마에 태우고 옛 주인이 강제로 메고 가게 했다 


3월12일. 화요일 아름다운 날씨. 서울. 


오늘 조정에서 회의하다. 일본정부가 조선에 3백만 엔을 지폐로 차관 할것이라고 선포해서, 일본 공사와 꽤 까다로운 토론을 벌이다. 어윤중 대신이 강력하게 반대하다. 일본이 진심으로 조선을 도울 생각이라면,  그렇게 형편없는 제안을 해선 안된다.

 

3월14일. 목요일. 눈오고, 바람 불고 춥다. 무릎까지 묻히는 진흙창. 서울.


지독하게 불쾌한 오늘의 날씨는 우리 조선의 참혹한 현실과 딱 들어 맞는다.
아침 일찍 어윤중 대신에게 편지쓰다. 일본 정부의 차관 조건에 대한 의견서다.


1. 차관금은 은화로 받을것, 은화를 지폐로 환산하면 백만엔 만큼 더가치가 있으므로 4백만엔을 받는셈이다. 따라서 지폐로 3백만을 받는다면 백만엔을 적게 받는셈이 된다.


2.일본은 그들의 안정된 금융시장에서 은화가 빠져나가면 신용이 타격을 받을거라고 핑계를 댄다. 만일 금융제도에 영향을 받을 거라면 조선사람들에게는 비관적이며 도움이 되지 않을 3백만엔을 아무런 상환 보증도 없이 꿔 준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3.조선은 지폐로 3백만엔을 꾸기 보다는 차라리 은화로 2백만엔 만 받아오던지 아니면 백오십만엔 은화와 태환권(국제 금융시장에서 바꿀수 있는 正貨-옮긴이)으로 오십만엔을 받는것이 더 낫겠다.

 

3월19일. 화요일. 아름다운 날씨. 서울. 


조선 사람들은 거의  벼슬을 좋아한다.  벼슬하기를 바라는  이유는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황당하고 이기적이다. 어떤 사람이 어느날 내게 말하는데, “난 지금 30세가 다 되도록 돈도 없고, 벼슬도 없고, 아들조차 없습니다. 난 맨날 무시당하고 어리숙하기만 한데, 나를 제발, ‘주사’(主事)가 되게 해주십시요.”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관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100살이 되셨기 때문이란다.
10 개 부처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도 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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