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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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온통 열이 난 이 구혼자는 벌떡 일어나 질투심이 타오르고 화가 치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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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윤경남 칼럼

(제19회)

(지난 호에 이어)

온통 열이 난 이 구혼자는 벌떡 일어나 질투심이 타오르고 화가 치밀어 골목길을 쏜살같이 달려 내려갔다.

 

 군인은 그의 앞에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멜라니가 고개를 쳐들고 공격해 오고 있는 어거스틴을 보았다.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어거스틴은 군인의 어깨를 움켜쥐고 한 바퀴 휙 돌렸다. 그는 턱을 한 대 먹였다. 한 대 얻어맞자 군인의 투구는 이마와 눈 밑으로 굴러 내렸다.

 

 “너, 저 여자한테 가까이 가지마!” 어거스틴이 울부짖었다. “저 여자한테 가까이 가지 말라고. 알았어?”

 “어거스틴, 그만 해!” 멜라니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깜짝 놀란 그 군인은 투구를 다시 반듯하게 쓰고, 두 번째 날아오는 주먹을 피했다.

 “이 쬐끄만 녀석이!” 군인은 이를 악 물고 말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어거스틴의 턱을 한 대 먹였다. 그 주먹은 탁 소리를 내며 내리쳤다.

 

 “너...!”

 어거스틴은 두 번째의 욕설을 듣지 못했다. 두 팔을 내두르며 뒤로 비틀비틀 물러나 제물이 되려고 망치에 얻어맞은 양처럼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차라리 양의 울음소리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한쪽 눈이 떠지고, 다른 한쪽 눈도 마저 떠졌다. 삥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축 늘어진 손을 내밀어 보았다. 풀밭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잔디 위에 누워 있는 것이다. 어떻게 여기에 와 있을까?

 

 “어거스틴. 괜찮아?” 이건 멜라니의 목소리에 틀림없다. 그 음성은 음악적인 울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단박 알 수있다.

 

 그는 손을 쳐들어 자기의 뺨을 만져보았다. 얼굴은 상처 투성 이었다.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들 위에 안도의 빛이 보였다.

 

 “제발 저리들 가세요. 이 사람은 이제 괜찮을 거예요.” 하고 멜라니가 말했다.

 얼굴들이 멀어져 갔다.

 나뭇잎 사이로 늦은 아침 햇살이 비쳐 드는 무궁화 나무 아래 그는 누워 있었다. 그는 로마 군인과 한바탕 벌였던 싸움을 생각해냈다.

 

 “그 녀석 어디 있지?” 어거스틴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멜라니는 땅바닥에 앉아서 그의 시야 가득히 그에게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누구 말야?”

 “군인 녀석 말야.”

 “내가 쫓아버렸어.”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길 왔지?”

 “동네 사람들보고 이리 데려다 달랬지.”

 “아이고 턱이야!”

 “당신도, 마음은 어른 같은데 감정은 어린애거든.” 멜라니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고개를 들었으나 현기증이 나서 다시 잔디 위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 군인은 누구지?”

 “사촌오빠. 방금 카르타고로 전속명령이 났어.”

 “난 사실을 알고 싶어. 그게 누구야?”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아파왔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일어서려고 했다.

 그는 손을 뻗쳐 말렸다.

 “제발, 나랑 있어줘.”

 그녀는 머뭇거렸다.

 

 “난 널 믿어. 그자가 너의 사촌오빠라고 말한다면 난 그대로 믿는다고.” 하고 그는 말했다.

 그녀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다시 앉았다.

 “난 질투나 하는 천치 바보야.” 어거스틴이 말했다.

 “근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 질투는 사랑의 결과라는 걸. 우리 어머닌 늘 말씀하셨어, 질투는 무덤처럼 잔혹하며 그리곤 석탄불처럼 탄다고.”

 

 “그래서 넌 결혼을 할 수 없단 얘기?”

 “무슨 소리야?” 그가 물었다.

 “그게 어머니가 너의 사랑을 모두 차지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아니, 그게 아냐. 어머닌 내가 공부를 마칠 때까지는 결혼을 생각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계셔.”

 근심 띤 눈으로 멜라니는 그들 머리 위에 펼쳐져 있는 무궁화동산을 바라보았다.

 어거스틴은 고개를 다시 쳐들었다. 이제 현기증은 나지 않았으므로 일어나 앉았다.

 “네가 어떤 질투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잘못된 걸까?” 하고 그는 날카롭게 물었다.

 그녀의 올리브색 얼굴빛이 붉게 물들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 그 때 나타났다.

 “젊은인 좀 어때요? 괜찮은가요?” 하고 그는 물었다.

 “고맙습니다. 날 골목길에서 끌어오느라고 애쓰셨지요?” 어거스틴이 명랑하게 말했다.

 “당신을 이리 데려오는 데 좀 거들었지요.”

 “착한 분이시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 사람은 인사를 하고 가버렸다.

 어거스틴은 멜라니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말해다오, 귀여운 사람아. 날 사랑하는지?”

 “사랑은 무엇일까?”

 잠시 동안 어거스틴은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당신은 사랑에 대해 일가견을 갖고 있어요.”

 “난 무슨 일에나 일가견을 갖고 있지.”

 “사랑은 무엇일까?” 그녀가 되풀이 말했다.

 “사랑은 빛, 모든 색깔의 왕자. 그 빛은 네가 보는 온갖 것을 채워주네. 비록 네가 다른 일에 몰두해 있다 해도 사랑은 그의 온갖 연기를 다해 너를 사로잡으리라.”

 

 “자기가 지은 거야?”

 “그럼.”

 “난 또 그대가 시인임을 미처 몰랐네.” 그녀가 말했다.

 “정의 내릴 수 없는 일을 누가 단언 할 수 있으랴?” 그는 옆으로 돌아누웠다.

 

“다만 애를 쓸 뿐이지. 아침에 눈을 뜨면 햇빛이 내 눈 속에 흘러 들어 오고, 그 빛은 나의 온 하루를 즐겁게 하네. 빛은 달콤하기 때문에. 너에 대한 사랑이 내 마음속에 비치고 있네. 사랑은 달콤하기 때문에. 그대의 아름다운 얼굴 내 앞에 다가오네. 이윽고 나의 하루는 즐거워라.”

 

 그녀는 입술을 다물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기울여 온 사랑에 보답이 없을 때 거기엔 사랑에 대한 독침이 있을 뿐, 달콤한 것이 쓴 잔이 되리.” 하고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내가 너의 사랑에 보답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불꽃 속에 타 오르리.”

 그녀는 어거스틴의 입술 위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잠깐 동안 그는 멜라니가 사랑을 고백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당신은 참 이상한 분.” 하고 중얼거렸다.

 

 그는 멜라니의 손을 꼭 붙잡았다.

 

 “멜라니, 날 사랑할 수 없겠소?”

 따뜻한 날씨인데도 그녀는 몸을 떨었다.

 “내 사랑 멜라니, 왜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왜?”

 멜라니는 고개를 한 옆으로 갸우뚱했다.

 

 “왜 그래, 멜라니?”

 

 “난 두려워, 왜냐하면...만약에 내가 한 번 사랑에 빠진다면 다시는 사랑을 못하게 될 테니까.”

 “내 맘 속엔 너에 대한 사랑 외엔 다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구.” 하고 그는 필사적으로 말을 했다.

 “때가 와서 그대가 날 버릴 때 당신은 유명해 지고, 그 때에 당신은 내 마음을 천 갈래로 찢어놓을 걸.” 하고 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약속해.”

 “아니, 그렇게 될 걸.”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내 종달새, 이것만은 얘길 해 두지. 넌 아주 외롭고 외로운 사람, 네가 나를 탐색해 왔듯이 난 너를 탐색해 왔어. 넌 의심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음을 알기나 하는지?”

 

 그녀는 웃니로 도톰한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내가 확신하는 걸 믿을 수 없어?”

 그녀는 눈물이 글썽했다.

 

 “멜라니, 내 말을 믿어. 난 할 수 있어. 그리고 해볼 테야.”

 그녀는 어거스틴에게서 손을 풀고 일어서려고 했다.

 “멜라니, 나하고 같이 가. 너에 대한 확신과 행복과 그리고 내가 보호하고 있는 사랑 사이에 가로막힌 건 아무것도 없어. 오직 너의 의지만 방해를 하고 있어.”

 

 “그리고 나의 양심이.” 그녀는 시선을 멀리 던지며 말했다.

 

 “어거스틴, 틀렸어. 우리 사이에 아무런 확실성이 없는데 행복이 있을 게 뭐야.”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난 네가 필요해.” 그가 말했다.

 

 그녀는 떨면서 일어나 오두막집을 향해 급히 달려갔다.

 

 “멜라니, 기다려!”

그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일. 그녀는 빨간 대문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이틀 밤이 지난 날 어거스틴은 식탁에 앉아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는데 네브리디우스가 불쑥 나타나 기름 묻은 종이를 흔들고 있었다.

 

 “밖에 웬 사람이 왔는데, 네게 오는 편지를 가지고 있더군. 그래서 내가 그걸 전해 주겠다고 했지.” 하고 그는 말했다.

 

 어거스틴은 펜을 떨어뜨리고 그 편지를 받았다.

 

 멜라니가 어거스틴에게 : 나의 아버지는 집을 팔고 시라큐스로 배를 타고 가버리셨어요. 이것이 편지의 전부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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