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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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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니콜라이 황제와 고종 황제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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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 최종고 서울대학 교수님이 민 씨 집안에 혹시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 때 받은 선물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흥미를 느끼면서, 시댁 어른들에게 수소문했더니 둘째 시숙 민수홍 교수(전 한라대 총장)가 소장하고 계셨다. 

1896년 러시아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에 다녀온 민영환 공이 친척인 侍南 민병석 대신에게 준 것인데, 민수홍 교수를 양자로 삼으려했던 그분이 선물로 준 것이다. 황금빛 나는 스위스제 회중시계였다. 러시아 황실 문장이 새겨진 뚜껑은 낡아서 떨어져 있었지만, 시계는 작은 초침 원반까지 들어있고 숫자도 선명했다. 사진으로 잘 남겨두었다. 

니콜라이 황제가 대관식 기념으로 만든 시계는 천 개도 넘게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니까, 윤치호 선생도 틀림없이 받았으리라 여기지만 그의 손자인 윤승구 사장이 그 시계는 찾지 못하고 고종이 하사한 회중 시계만 보여주었다.

이 시계 외에 민영환 특사에게는 성 안나 일등 훈장을, 수행원 윤치호에게는 성 안나 2등 훈장을 수여했다는 이야기는 ‘해천추범’에 나온다. 아마도 윤치호는 황제의 선물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 같고, 심지어는 조선왕이 니콜라이 황제에게 바친 대관식 축하예물도 너무 초라해서 마뜩치 않았던 듯, 그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5월29일. 금요일. 아름다운 날씨. 모스크바. 

오전 10시에, 조선왕이 니콜라이 2세 황제의 대관을 축하하며 보내는 선물을 전하기 위해 파스콤 장군과 함께 크레믈린 궁전에 가다. 선물의 내용은, 자수를 놓은 병풍 2개, 큰 대나무로 만든 창 가리개 발 4개, 수놓은 돗자리 4개, 진주조개로 장식한 자개장 1벌, 백동 향로(白銅 香爐) 2개이다. 

이 선물은 조선 사람이 사적으로 러시아 사람에게 건네는 선물로는 알맞다. 그러나 조선 왕이 러시아 황제에게 주는 선물 치고는 너무 빈약하게 느껴진다. 선물을 보관하려고 받아 든 관리들의 옆얼굴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아, 가난한 우리 조선 나라여!“

그런데 실은 조선 군주가 보낸 선물 중에 두 개의 백동향로는 굉장한 예물이었다. 우연히 ‘궁중차의 맥을 이은 석조다로(石彫茶爐) 문화재’(2011. ‘차의세계’ 오병훈) 에서 현재 러시아 크레믈린 박물관에 대한제국 때 만든 두 점의 백동 향로가 소장된 사실을 읽게 되었다.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 때 명성왕비가 일본 낭인들에게 살해 당하자 위협을 느낀 고종 임금이 러시아 공사 웨베르를 궁으로 부른다. 그와 상의한 끝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아관파천(俄館播遷) 하여 지내면서 양국 간에 돈독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려고, 마침 러시아 황제 대관식 초청에 사절단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곁들어있다. 

그 백동향로(白銅香爐)는 원통형과 장방형의 두 점이다. 원통형 향로는 높이 22㎝, 지름 13㎝. 당초무늬를 조각한 투각 뚜껑 위에 둥근 손잡이 꼭지가 달려있다. 향로에는 진복(眞福)을 의미하는 네 글자를 새겨 넣었다.

장방형 향로는 길이 21.7㎝, 폭 16.5㎝, 높이 18㎝. 4개의 다리가 달린 기단 위에 올려놓았다. 이 향로 뚜껑도 당초무늬가 들어 있고 정서(呈瑞)라는 글자를 새겼다. 뚜껑에는 당초 무늬를 조각했고, 동그란 손잡이 꼭지가 솟아있다. 화로 혹은 향로 이다.

정서呈瑞란 위아래로 솥이 붙어있는 상서로운 향로란 뜻이다. 이 장방형의 향로와 원형의 향로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맞붙어 있었더라면, 정서呈瑞가 상징하는 향로진상의 목적을 이루지 않았을까? 즉, 땅을 상징하는 장방형의 향로 위에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 향로를 얹은 것이었다면, 조선 사절단의 애절한 밀명이 이루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솟는다. 

 

 

조선 임금이 러시아 정부에 요청한 다섯 가지 친서가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원을, 땅은 네모를 의미한다. 옛날 중국인들의 우주관)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겨우 한 가지만 얻어왔기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 참여의 주목적인 고종 임금의 친서는 5종목인데(윤치호 영문일기 1896.6.5),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대목- 5. 일본에서 빌린 국채를 갚기 위해 300만엔을 차관해줄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이 대목은 민영환의 ‘해천추범’에도 올라있지 않다.

값 비싼 예물이 아니었어도, 천지의 조화를 이루는 선물이었으면 더 효험을 보았을지도 모르는 일. 윤치호 선생도 그 뜻을 알기에 가난한 게 아니라 불쌍한 조국을 생각하고 슬퍼한 것이 아니었을까?

 


2013년 영국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영국 여왕에게 한국 전통음식을 담는 구절함과 최고급 인삼인 천삼을 선물했다. 영국 왕실에서는 박대통령에게 은쟁반을, 엘리자베스 여왕은 '바스 대십자 훈장'(Grand Cross of the Order of Bath)을 수여했다고 한다. 120년 전에 러시아 황제와 조선 사절단이 주고받은 선물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데, 나라의 후광으로 인한 자격지심에서 오는 슬픔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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