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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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톨스토이의 그림자, 리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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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영국 해안의 기후 속에 태어난 셰익스피어와 긴 겨울에 눈보라 치는 대륙성 기후를 타고 난 톨스토이는 기후와 풍광에서 오는 차이가 작품에도 드러난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마다 아름답고 슬프고 여린 꽃들과 나무들을 등장시킨다. ‘햄릿’의 오필리아가 갈잎을 꺾어 들고 혼자 걷다가 삼색 비올라와 팬지꽃을 드려다보며 중얼거린다. “아, 여기에 팬지가 있네. 나의 생각이 모두 모여 있는 곳.” 

요정들이 좋아한다는 요정의 풀꽃, 레몬 자임들이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온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영원한 사랑을 기억해주세요, 간청하는 분홍빛 여인의 뺨 같은 로즈마리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곳은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 강의 생가, 외가, 아내의 옛집 뜰 뿐만 아니라, 뉴욕의 센트럴 파크 안에 있는 셰익스피어 동산에서도 향기가 진동한다. 

반면에 톨스토이의 작품에는 나무들이 많이 등장한다. ‘부활’에서, 네푸류토푸가 하녀 카추샤를 사랑하며 그를 유혹하려고 라일락을 들고 간다. 보다 더 상징적인 것은 동화 ‘세 그루의 사과나무’ 이야기이다. 죄를 지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새사람이 되려고 대부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의 대부는, 사과나무의 묘목을 세 개로 잘라서 태워 묻은 다음, 그 세 그루에서 싹이 날 때쯤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여러 가지 역경을 겪으며 세 가지를 깨닫게 되고 마침내 세 그루의 묘목에서 세 그루의 사과나무 새 싹이 자란다는 기독교적인 교훈이다. 

톨스토이의 생가인 넓은 장원의 오솔길에, 그리고 흰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의 북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꼿꼿하게 빛을 내며 서 있는 흰 자작나무들의 모습은 톨스토이의 내면 세계를 보여주는 듯하고 러시아의 자존심이며 러시아 국민의 나무답다. 

박애정신과 종교심이 강한 톨스토이에게도 그 나름의 검은 그림자가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음을 보았다. 1903년, 75세의 인생 정돈기에 격렬하게 셰익스피어를 헐뜯는 ‘셰익스피어 예술 론’을 쓴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자신에게 평생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반감과 따분함"을 불러일으켰다면서.

 

 

“셰익스피어는 천재가 아니고, ‘평균적인 작가’도 못되며, 그 대표적인 예가 ‘리어 왕’”이라고 했다. ‘리어 왕’의 주제는 바보스럽고 수다스러우며, 부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어렵고, 과장되고, 조악하고, 지루하다는 것. 

그리고 터무니없는 사건에, 광적인 헛소리, 억지 농담, 시대착오, 부적절함, 외설, 진부한 무대 습속과 비덕적이고 미적인 결함으로 꽉 차 있다는 것. ‘리어 왕’은 어떤 무명작가가 이전에 쓴 훨씬 더 나은 희곡 ‘레어왕’을 표절한 것으로, 셰익스피어가 훔쳐다가 망쳐놓은 작품이라는 것. 

"셰익스피어는 독자가 바라는 어떤 존재였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예술가는 아니었다"면서, “위대한 예술 작품은 인류의 삶에 중요한 주제를 다루어야 하고, 저자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바를 표현해야 하며, 바라는 효과를 낼만한 기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세계관은 저급하고, 솜씨가 깔끔하지 못하며, 한 순간도 진지할 줄을 모르니,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그의 ‘예술론’을 편 것이다.

그 ‘셰익스피어 예술론’에 맞서 반론을 편 조지 오웰의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를 읽고 나서야 독자들은 충격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비극 ‘리어왕’에 이렇게 깊이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하는 이유는, 톨스토이의 말년이 ‘리어왕’의 처지와 너무도 닮아서 괴로워 미칠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호기 있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딸들에게 내어준 리어왕이 그 딸들에게 배신을 당하고(위선의 댓가), 결국은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던 코델리아가 리어왕의 인격을 완성시켜주는(참회과정) 구세주이며 희생양이 된 것이다.

톨스토이의 ‘예술론’은 문학의 바이블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폭풍 속에 갈갈이 찢어 날려버리는 백발의 미치광이 톨스토이를 떠올린다. 그 모습은 폭우 속에서 어릿광대와 바보 같고 슬픈 대화를 나누는 리어왕의 모습이다. 그리고 괴테가, 악마인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 -자신의 그림자상에 자신을 내맡긴 파우스트의 행동은 “악을 바라면서도 선을 발견하려는 힘의 일부”라고 설명하고 있듯이. 

톨스토이도 말년의 가족관계의 갈등과 고통 때문에, 될 대로 되라는 자포지심으로 그런 광적인 예술론을 쓰게 된것이 아니었을까? 

리어왕이 고대의 신비스런 제단인 스톤헨지에서 딸들에게 모든 재산을 나누어준 바로 그 자리에서, 희생양이 된 코델리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순간 그의 몸이 차가운 시체가 된 것처럼, 톨스토이는 그가 사랑하던 아스타보 기차역의 차가운 역장 집에서 급성 폐렴으로 폭풍 같은 그의 삶을 마감한다.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있다…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남기면서.

셰익스피어가 톨스토이와 같은 시대에 살았더라면, 문학의 세계대전이 일어날 뻔했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이겼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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