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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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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톨스토이가 처음 만난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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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뭉게구름이 살같이 흘러간 가을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니콜라이 공작이 아우스테를리츠 벌판의 싸움터에서 러시아 깃발을 안고 쓰러졌다가 다시 살아나 쳐다본 ‘그 높고 영원한 하늘’이 저렇게 푸르렀을까!

 영화, <전쟁과 평화>는 니콜라이를 통해 삶과 죽음과 사랑의 본디 빛깔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죽음 직전에 다시 만난 나타샤에의 사랑의 빛, 꿈속에 죽음을 넘나들면서 본 죽음의 문턱이 그렇게 간단한 경계였음을, 그리고 죽음은 곧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며 얼마나 간단명료한 일인가를 보여준다.

 톨스토이의 분신 같은 니콜라이의 친구 피에르는 그의 꿈을 통해서, 참 사랑은 생명 그 자체임을 깨닫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敬天愛人)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게 된다. 그리고 프리메이슨 종파로 그에게 영혼의 눈을 뜨게 해준 이오시프 알렉셰비치의 환한 얼굴이 또 다른 꿈에 나타나, ‘생명은 사람의 빛이라. 빛은 어둠 속에 비치고 어둠은 이것을 덮지 못하도다’라는 성경구절을 일러줄 때,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가장 힘들게 얻는 행복은 죄 없이 받는 고통 가운데서도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작품과 인생관의 흐름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희망을 주는 빛과 사랑의 화신 같이 아름다운 여주인공 나타샤는 생명력 그 자체이다. 니콜라이와 피에르라는 두 남성의 교차로에 서서 강열한 욕망에서 일어난 부정적인 아니무스가 아닌, 긍정적이고 선한 아니무스 상을 맘껏 발휘하고 있다.

 영국의 셰익스피어나 제임스 조이스, 제인 오스틴이나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만 좋아하던 내가 올 여름에 러시아 문학의 진수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에 빠진 것은 “러시아의 문호인 톨스토이가 처음 만난 한국사람은 윤치호”라고 박진영 교수(번역문학)가 쓴 글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1896년,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황제 대관식에 민영환 공이 전권공사로, 학부협판이던 윤치호가 수행원으로 갔을 때의 이야기를, 필자가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라는 제목으로 번역해서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더욱 반가웠다.

 

 

민영환, 윤치호, 김득련, 김도일 손희영 등의 조선 사절단이 모스크바의 파바르스카야 42번지에 숙소를 정하고 발코니에 태극기를 올림으로써 러시아 초대공사관의 면모를 갖춘다. 그들이 황제 대관식에 참석할 당시에 윤치호는 틈틈이 톨스토이의 1873년 영문판 ‘전쟁과 평화’를 읽음으로써 톨스토이가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 된 셈이다. 

 ‘솔잎상투’(개화파인 윤치호는 단발이었는데, 러시아 사절단에 동행하기 위해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사모를 쓴다. 이때 머리 모양이 솔잎으로 상투 짠 것 같아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다: 필자 주) 쓰고 도포를 입은 윤치호가 모스크바의 도심에 앉아 1896년 7월11일 밤과 8월3일 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북국의 백야를 밝히며 ‘전쟁과 평화’를 읽는 장면이 나온다(윤치호는 미국 유학 중에 문학, 역사, 철학에 관한 책 200여권을 읽었다: 필자 주).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온갖 에피소드를 남기며 러시아 사절단 임무를 마친 후, 윤치호는 일행과 헤어져 혼자 파리를 거쳐 귀국 길에 오른다. 파리에 머물며 불어공부를 하는 동안, 9월17일에 쿠크 관광단에 끼어 인발리드 호텔(Invalid Hotel)에서 나폴레옹의 유해가 안치된 석관을 관람하고 그의 영문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인발리데 호텔 안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한때 유럽에서 아주 심한 좌절감에 빠진 적이 있는-그의 유골함을 담은 석관을 보관하고 있다. 나폴레옹의 묘역 앞에 서있자니 그에 대한 존경심과 울적한 느낌이 일어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는, 나폴레옹 시대에 비해 그가 그리 위대한 인물이 아니고 단지 운 좋은 사나이로만 그려져 있어서 나폴레옹의 천재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는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유럽을 정복한 역사상 최고의 황제로 자신을 개척할 수 있었던 인간이며, 그의 죄악과 서투른 짓들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계몽할 만한 상상력과 애국심이 아주 풍부한 사람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황제에 오르게 한 그런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천재적인 인자를 소유한 사람이다.” 

 사절단이 러시아에 머문 동안 조선의 ‘독립신문’ 외국통신에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참석한 이야기가 나온다(1896.6.18.).

 “아라사 신문에 황제 즉위례 할 때 황제와 황후께서 네 나라 사신들을 불러 보시는데 크렘린 궁에서 불란서, 서반아, 일본, 조선 대사들이 폐현(陛見: 황제나 황후를 만나 뵘)을 하였더라. 이 네 나라 사신들이 황제와 황후를 뵐 양으로 대궐에 들어올 때에 궁내부에 있는, 금으로 채색한 마차를 타고 말 여섯씩 끌고 오른편으로는 궁내부 관원들이 따르고 뒤에도 다른 관원들이 많이 따르는데 마차를 어거하는 사람들이 대례복을 입고 말들을 이끌더라… 일본대사 후작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現) 씨는 백작 톨스토이씨가 맞고, 조선대사 민영환 씨는 친왕 배실칙코프 씨가 맞더라…” 

 일본 사절단을 영접한 사람이 백작 톨스토이라니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 톨스토이 백작이란 말인가? 놀라서 그의 전기를 뒤져 봤더니, 그 시간에 그는 고향 농장에서 번뇌의 세월을 보내면서 새로운 작품 <하지 무라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드디어 구글 웹사이트에서 우리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야마가타 일본대표를 영접한 다른 톨스토이를 찾았다. 그는 이반 이바노비치 톨스토이 백작(Ivan Ivanovich Tolstoy: 1858~1916) 이었다.

 정치가이자 고고학자이며 과학아카데미 명예회원인 그는 1893~1905년 비데(Witte) 내각의 교육부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이 기간에 니콜라이 2세 대관식 행사가 열렸고, 그는 일본 전권공사 야마가타를 영접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레오 톨스토이 백작이 쓴 ‘전쟁과 평화’에 나폴레옹과 싸운 러시아의 야전사령관, 그 유명한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의 증손자란 것. 

 ‘전쟁과 평화’로 인해 톨스토이가 처음 만나게 되는 한국인 윤치호와 그 작품에 나오는 제2의 성격배우인 쿠투조프 장군의 후손 톨스토이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것은 운명의 아이러니같이 흥미롭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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