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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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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김동길 교수댁의 냉면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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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김동길 교수님께 한국 방문 중이란 것을 알리지 않았는데도 이미 알고 계신다기에, 이왕이면 그 유명한 냉면 잔칫날에 초대해 주십사고 전화를 드렸다. 교수님은 반가워하시고, 교수님의 누님인 김옥길 총장 제자인 내 친구 세 명의 합석도 쾌히 들어주셨다.
 우리 일행은 이화여대 후문 건너편에 새로 난 연대동문길을 고불고불 돌아 큰 마로니에 나무가 보이는 허름한 이층집에 들어섰다. 우리를 반긴 교수님은 “민동연이도 잘 있느냐?”고 물었다. 그 기억력이라니, 이십 여 년 전에 우리 딸 동연이가 미국 보스톤에 유학할 때 추천서를 써주신 이야기이다. 김옥길 전 이화대학총장님이 1학년 교양과목인 기독교문학을 가르쳤을 때, 그 많은 제자이름을 다 외웠던 누님 못지않은 기억력이다.
 김동길 교수는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보스톤대학에서 영문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휘트만, 브라우닝, 테니슨의 시를 지금도 외울 정도이다.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에서 교수와 부총장 직을 지냈다. 링컨 숭배자이며 많은 책을 쓴 가운데 ‘링컨의 일생’, ‘대통령의 웃음’, ‘하늘을 우러러’ 등의 인기 저서에서 나온 인세로 그의 고향인 평안북도 맹산과 지형이 비슷한 고사리마을에 금란정과 행랑채를 짓고 두 남매가 향수를 달래곤 했다. 
김교수가 유신체제 반대로 옥고를 치를 때, 그리고 ‘링컨대통령’이 될 뻔한 기회를 잃고 상심했을 때, 무직자의 신세로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와서 고사리마을 집으로 걸어 올라오는 동생을 맞아, 정자에 나란히 앉아 바라보던 석양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시는 것 같다. 김옥길 총장이 그의 회갑연 때 ‘고사리 마을 집’을 몽땅 이화대학 수련원으로 기증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우리는 교수님이 좋아할 친구 시인 서동희의 시집과 내 책도 드리고, 서울에서 예쁜 한지에 복사한 윤치호 친필 ‘애국가’ 사본을 보여드렸다. 그는 감개무량한 듯 글씨를 드려다 보면서, 이화여자대학교의 김활란 총장이 해주었던 말을 전해주었다. 해방이 되고 사회가 매우 어지러운 때, 개성에 은신 중이던 좌옹 윤치호 선생을 찾아가 문안을 드렸다는 것. 그날 헤어질 때 윤치호 선생이 김활란 박사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제발 애국가를 윤치호가 지었다고 말하지 마시오. 내가 지은 줄 알면 나를 친일파로 몰아대는 저 사람들이 부르지 않겠다고 할지 모르니까.”
 솔로몬이 한 아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아이를 둘로 갈라서 나눠주라는 명령이 내리자, 한 여인이 자기는 안 가져도 좋으니 제발 아기에게 칼을 대지 말아 달라고 울면서 간청한 여인의 심정이었으리라.
 


윤치호 선생은 세계에 둘도 없는 이 귀한 애국가는 작사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라 사랑과 하늘 사랑으로 역사의 수난기마다 우리 민족에게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애국가 자체의 안위를 더 걱정한 것. 세월에 묻혀도 빛나는 그 보석은 언젠가는 그분이 작사자임이 공인화될 날도 멀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김교수는 이보다 더 확실한 애국가 작사자의 증언은 없지만, 세상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때 우리가 기다리던 그 유명한 평양냉면이 식탁에 올랐다. 수요일마다 열리는 정기 강연회에 온 손님들 덕분에 우리도 함께 들었다. 계란이나 다대기 같은 고명이 없이 소박하게 육수와 동치미 국물에 말아 내온 메밀냉면 맛은 평양냉면의 진짜 맛을 알게 했고, 빈대떡은 더욱 별미였다. 쇠고기 육수에 담긴 이 메밀국수는, 교수님의 어머님 생존 시엔 메밀을 반죽하고 뽑는 사람이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냉면 틀로 주방에서 쉽게 뽑아낸다고 한다. 


 
 

더 부러운 것은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이것이 내 고향 별미라면서 평양냉면과 빈대떡과 김치만 내놓을 수 있는 자신감이다. 부럽지만 흉내 내려면 아직 멀었다. 
 김 교수에 대한 평가는 이념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다른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더 많이 알고 있다. 그 중에 두 가지, 첫째 역사학자다운 철학과 기독교적인 신념이 몸에 밴 의연함과 자유로움이다. 
둘째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그의 말 펀치! “이게 뭡니까?” 우리는 토론토에 살면서도 그가 매일 쏘아 올리는 칼럼 ‘Freedom Watch’와 지난 번 토론토의 ‘주간한국’에 올린 칼럼 ‘결혼식은 왜 합니까?’ 등의 사회정의를 위한 외침에 감탄하곤 한다.
 이제 짧아진 가을 해가 방안을 붉게 물들일 무렵이 되어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장까지 쌓아올린 책꽂이엔 링컨 이야기, 성경, KOREA, 데이빗 헤이만이 쓴 할리웃 최고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전기 등이 눈에 띈다. 서가 앞에 사랑하는 어머님과 누님과 찍은 가족사진이 우리에게 더 놀다 가라는 듯 웃고 계셨다. 우리는 링컨을 닮은 김교수님의 해탈한 경지의 웃음 위에 친구 같은 사랑을 보여주는 스토르게의 미소를 다정하게 나누고, 해 저문 신촌길을 벗어났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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