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287 전체: 559,243 )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P.E.N.의 여행(상)?
knyoon



스위스 루가노 펜대회 참관기 
 

 높은 언덕과 나무들의 그림자가 항상 수면에 떠 있는 스위스의 루가노Lugauno 호반에서, 1987년 제50차 세계 PEN 대회가 무사히 끝났다. 다음 날 아침까지 남아있던 약 70명 가량의 회원들이 예정대로 단자스 여행사의 안내를 받으며 32시간 관광여정에 올랐다. 
우리를 태운 두 대의 대형버스가 엔가디네 계곡을 왼편에 끼고 아름다운 간드리아 마을을 지나, 그리운 은혼의 추억이 깃든 코모 호수의 메나지오 별장에 한 눈을 던져볼 사이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스위스 루가노에서 이탈리아의 코모로, 다시 스위스로 국경선을 넘을 때마다 검문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와 내 옆에 앉은 헝가리 대표만이 재빨리 여권을 꺼내들곤 했다. 검문은 버스 안내를 맡은 피우자양의 미소와 몇마디 말로 통과되곤 했다.
 서울에서는 의례적인 형식이나 제도에 진저리를 내며 도망치던 나였건만, 약소국가의 뿌리깊은 의식이 이렇게 행동으로 나타날 줄은 미쳐 몰랐다. 그러나 이 무의식 중의 신경에너지 소모는 다행이도 내 개인의 콤플렉스만은 아닌것 같다. 그많은 세계대표들 가운데 이른바 <문제가 많은 약소국가> 대우를 받고 있는 헝가리나 한국의 대표만이 같은 마음으로 증명서를 꺼냈다 넣었다 했으므로, 이것은 국경을 초월하는 사회 콤플렉스이며 집단 콤플렉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오히려 내게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었는지, 나로 하여금 이번대회의 주제가 된 경계선 문제의 일부나마 극복해 보고 싶은 용기마저 일게 했다. 그 첫번째 작업으로, 가장 인상이 험해 보이는 한 스위스 작가와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나는 사진촬영을 핑계대고 제일 앞자리에 앉은 그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내년에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 PEN 대회에 오느냐는 말부터 시작했다. 대개는 꼭 가고 싶다든가, 사교적으로 가능성만 보이든가 하는데, 이 대표만은 완강하게 못간다고 말한다. 
이유는 한국이 너무 멀고, 자기에겐 그럴 여유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없다고 한다. 당신네보다 더 경제적 여유가 없는 우리 대표들이 이번 대회에 24명이나 이 먼 땅에 온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말엔 대답을 않고, 나라마다 문제는 다 있는 것이라고 비켜 말한다.
 나는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내딛으며 말했다. 세계 PEN 대회 개회식 때 당신네 회장이 말한것처럼, 울타리는 상처의 표시이며, 경계선은 인류의 적이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언어, 시가 담긴 언어는, 죽음의 경계선과 울타리를 없앨 수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좀 더 민주국가로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세계 P.E.N. 친구들이 외면하지말고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우리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그러면 우리도 당신네 회장님 말씀대로 “편견의 사슬에서 자유로, 고정관념의 속박속에서 자유로 당당하게 초대를 받게된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는 내 콤플렉스가 작용해서 유창하지도 않은 영어로 떠드는 나의 정체를 판가름해 보려는 듯 묵묵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는 니체가 “은색으로 빛나는 나라”라고 찬양한 흰 눈덮인 삼각형 Silver Prana를 지나, Canton of Grison이라는 좁고 가파른 길에 들어섰다. 좁은 산길이지만 행진곡을 휘파람 불며 멋지게 급커브를 돌리는 명랑한 운전기사 덕분에 별로 위태한 것을 모르겠다.
 길가에 늘어선 소나무는 키가 몽땅하게 낮고 솔잎도 동그렇게 가꾼 것이, 우리나라 해안의 숲속에 자연스럽게 늘어진 소나무보다 운치가 덜하다. 나는 대관령이 생각나서 옆자리의 심각한 친구에게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을 들려주었다. 
대관령도 이정도 높이 800미터 넘는 해발인데, 더 가파른 골짜기를 99번 돌아야 영을 넘을 수있으며, 님이 서울로 이 길을 떠날때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른지도 모를 님에게 아낙네들은 사모곡을 불러주며 눈물짓는다. 그 산 골짜기는 상록수뿐만 아니라 님에게 바치는 마음같이 붉은 단풍이 가을엔 설악산을 비롯해 동해안 일대를 붉게 물들인다고 이야깃꾼처럼 떠들었더니, 그제서야 험한 얼굴이 약간 펴지며 우리나라에 대해 이것 저것 묻기 시작했다.
 <좁은 길>이 끝나고 수담파 마을에 들어가, 교회 성인 조각 작품을 장식한 것으로 유명한 Alberto Jacomati와 그의 아버지 형제 조각가의 작품이 진열된 미술관을 구경했다. 현대인의 고뇌와 눌린자의 모습을 그린듯, 뼈만 앙상한 인간이 걸어가는 모습을 조각한 알베르토의 작품이 인상깊었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한곳은 Maloya Cumb의 한 식당이었다. 185미터 높이의 고지엔 하얀 꽃가루 같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5월의 푸른 하늘과 Maloya 의 눈덮인 산 밑에서 나는 소매없는 빨간 블라우스에 밀짚 모자를 쓰고 태극선太極扇을 들고 내 친구Luisa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여름나라에서 갑자기 바람부는 겨울나라로 들어선 나는 마치 백일몽을 꿈꾸는듯했다.

 


루이스와 함께한 필자

 

 환상의 나라에서 다시 이성이 존재하는 니이체의 집, Sils maria에 도착하자 이미 햇살이 산골짜기를 빠져나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연상시키는 니체가 예술가였다는 게 실감이 나지않을 정도로, 그의 집은 품위와 질서가 엿보였다. 눈덮인 계곡이 보이는 창문을 향해 밧듯하게 자리잡은 그의 책상 위에 그의 책들과 파이프 등이 놓여 있었다. 
나는 판화로 만든 그의 초상화를 한장 샀는데, 방안에는 그 초상화와 똑같이 콧수염을 기른 니체의 석고흉상도 아주 돋보였다. 핀란드 대표가 그 조각작품을 부러운듯이 쳐다보고 있기에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손으로 자기 콧수염을 만든 포우즈를 취해보이며 웃었다. 그는 Finland P.E.N. 회장이며 부부동반으로 왔다 여행 중의 대표들이 부부동반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랍고 부러웠다.
 나는 니체가 쓰던 낡은 책상을 다시 한번 만져보았다. 바로 이 책상에서 그는 그의 걸작 <짜라스트라는 말했다>를 쓴 것이다. Also Wrote Nietzsche here! 그러나 초인론과 <신은 죽었다>는 이론만 내세우지 않았더라면 그를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리라.
“나는 지금 마치 약속의 땅에 와있는 것 같다. 처음으로 구원을 느낀다”고 그의 누이에게 편지를 쓴 자리! 
 그가 ‘신의 어릿광대’인양 ‘초인론’을 쓰며‘신은 죽었다’고 광기어린 울부짖음으로 마지막까지 괴로워했지만, 그의 사유의 흐름은 산산이 부서져 가는 죽음과도 같은 마력을 검은 먹물로 찍어낸 그림같이 선명하게 방안에 넘쳐흘렀다.
 창조와 스러짐도 하느님이 창조하신 역사의 한 수레바퀴에 불과할 뿐인 것을. 자기가 붙들어 매어 놓은 단단한 사슬 속에서 그렇게 몸부림치기보다는 진정으로 ‘위대한 해방’은 예수를 나의 메시야로 받아들이고 나의 삶을 다시 그분에게 의탁할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에 순종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 니체만도 못한 주제에, 하느님의 종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어떤 성직자가 ‘신은 없다’고 감히 떠드는 것을 보면 더욱 안타깝고 두려운 생각이 든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