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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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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Pompe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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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남

 

 

 

인류의 문명을 과시했던 큰 도시가 이 지상에서 완전무결하게 사라졌다가, 한 농부의 삽 끝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세계최초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석회도시 폼페이! 멀리 베수비우스산을 등진 그 시가지 한 복판에 장엄하고 화려했던 고대 로마의 광장이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유명한 건축양식으로 지은 2층 주랑의 양옆으로, 장식 없는 희고 둥근 대리석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눈 부시게 높다란 흰 대리석 기둥과 기둥사이로, 서기 79년의 그날을 상상하며 드려다보았다. 드넓은 이 광장에선 시민들이 모여들어 토론도하고 법정역할도 했을 것이며, 해마다 중요한 축제가 벌어져 신에게 올리는 축제의 행렬이 그치지 않았으리라.

흰 대리석 기둥 사이마다 놓인 대리석 긴 의자 위엔, 수금을 켜는 소년을 빙 둘러싸고 앉아 수금에 맞추어 큰 목소리로 노래하는 젊은이들의 노래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그 옆의 내리막 길에 있는 우물 가에선 물 긷는 여인들이 수다 떠는 소리…광장에서 북편으로 한길 건너 마주 보이는 교회당 앞엔, 노점상들이 해 떨어지기 전에 물건들을 팔아 치우려고 큰 소리로 외쳐대고…발목에 쇠사슬이 묶인 채 끌려 온 노예들은 좀 더 좋은 주인에게 팔려 가기를 바라는 듯, 큰 눈망울을 굴리며 하늘을 향해 깊은 탄식을 뿜어내고 있고…매 사냥꾼은 잡아 온 매를 팔려고, 교회당 층계를 내려오는 수도승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으리라.

이 모든 풍경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된 서력 79년 8월 24일, 불길한 예감을 주며 뜨겁게 타오르던 태양이 베스비우스 산 너머로 꼴깍 넘어갔는가 생각한 바로 그 순간, 마치 태양이 폭발하듯, 사진 찍을 때 터뜨리는 마그네숨에 불이 붙은 듯 ‘퍽!’하는 소리가 났다고 느껴진 그 짧은 순간에 온 천지의 생물이 일순 숨을 멈춰버렸다.

이때 베스비우스 화산에서 터진 그 불길은 2만 명이 넘는 시민들과 번창일로에 있는 화려한 폼페이 시가지를 덮여 버렸다. 용광로의 불꽃이 마치 뱀의 혀처럼 넘실대듯 분노의 화염을 터뜨린 그때부터 2천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자, 폼페이는 그 긴 악몽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용암천이 식어 강회로 덮이면서 묻혀버렸던 도시의 옛모습을 찾는 작업이 최근까지도 계속되었다. 웅장했던 건물의 일부, 신전, 미술관, 크고 작은 원형극장, 광장의 지하 목욕탕들이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게 하면서도 한편 재생의 섭리를 일깨워주는 듯했다.

정오의 햇살아래 말없이 누워있는 잿빛 광장 옆, 폴로 거리와 놀라 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큰 공중목욕탕이 나온다. 이곳에 남탕과 여탕이 따로 있고, 더운 물과 찬 물을 담는 욕조가 각기 놓여있는데 찬물을 담아두는 둥근 욕조가 인상적이다.

그 당시 이미 중앙 공급식 난방에 수증기를 공급하는 양쪽벽면으로, 천장에 달린 개폐식 창문을 통해 태양열을 끌어들이는 태양열 solar 목욕탕을 사용했다니 놀라지않을 수없다. 둥근 욕조에 들어앉아 하늘이 빤히 바라보이는 천장의 원형창문을 바라보며, 그 원의 의미를 터득하게 된 시민들도 있었겠지.

그 시민들의 일부가 이제는 하얀 화석이 되어 옆으로 혹은 반듯이 누워있다. 옆으로 누운채 화석이 된 한 여인의 발치엔 그리이스 풍의 포도넝쿨 그림이 든 물항아리가 놓여있는데, 베스비우스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라 할만했다. 그 와중에도 여성들은 엎드리거나 보석상자를 끌어 모으고 있었고, 남성들은 대개 저항적인 자세로 위를 바라보고 있어서 남녀의 심리 차이를 연구할만 했다.

지하에 누워 있는 비너스의 모습들과 프레스코 벽화마저 뒤로하고, 지상으로 올라가 내 자신이 숨쉬는 한 인간임을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바다의 신 ‘넾튠의 문’이 부서져 내린 폐허의 돌담 사이로, 우리나라의 협죽도화(夾竹桃花) 혹은 석죽화 같은 연분홍 꽃들이 군데군데 피어있었다. 그것은 다행히도 영원히 익지않는 과일, 만지면 횟가루가 되어 부서지는 소돔(Sodom)의 포도열매는 아니었고, 생명이 있는 부드러운 꽃잎이었다. 마치 하느님이 소돔성 같았던 폼페이의 죄악을 용서해주시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화해의 선물을 주신 사랑의 꽃 같아보였다.

아직도 안개같은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베스비우스 화산을 뒤로하고, (우리 일행을) 나폴리로 가는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 줄 마차가 기다리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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