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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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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요한의 묵시록 속의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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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의 사도 요한 교회 앞에는 로마의 박해시대를 기억하려고 6세기 비잔틴 제국 시대에 만든 ‘박해의 문’이 서있다. 두 개의 큰 기둥 가운데 반달문을 세웠는데 이 대리석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야수와 전투로 피 흘린 에베소의 경기장에서 날라다 쌓은 순교의 문이다. 
박해의 문을 지나 성모 마리아 교회에 이르기까지 온통 성스런 올리브 나무와 대추나무, 소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줄지어 서있었고, 성모 마리아의 집 뜰에는 성스러운 마리아에게 바치려는 듯 십 미터가 넘는 감람나무가 녹황색 꽃을 가득히 이고 지붕 위에 얹혀 있었다.
 드미티아누스 황제의 핍박으로 바트모스섬에 갇혔던 요한은 이마에 굳은살이 박히고 머리는 백발이 되어 풀려난 다음 에베소로 돌아와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모시고 말년을 보낸다. 
이 전승이 역사적 사실로 입증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에 독일의 카타리나 수녀가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데도, 예수님의 일들과 마리아의 생애를 꿈속에 환시로 여러 번 본 이야기를 크레앙 브랑따노가 구전으로 받아 적은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책으로 펴낸 다음부터이다. 
그 책을 읽은 이즈미르 대학 학장, 유진 폴리 신부가 오랜 세월 그곳을 찾아다닌 끝에 지금의 나이팅게일산 기슭에 있는 마리아의 집을 찾아냈다. 1892년 이즈미르 대주교가 이곳을 성소로 선포하고, 1961년 교황 요한 21세가 이곳을 성지로 공식선포했다. 
 해마다 8월15일 성모승천 축일에는 세계 각처에서 순례객들이 줄을 이어 성모 마리아의 집(성모 마리아의 교회)에 들어와 참배한다. 그곳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으며, 누군가 나를 지켜 주는 듯한 영적인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이 교회의 마티마 신부는 "세계 각처에서 호기심에 오지만, 갈 때는 마음의 평안을 얻고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슬람과 그리스도 교인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곳, 즉 평화의 집입니다"라고 말한다. 
 


스페인 엘 에스코리알 궁의 미술관에서 16세기 화가 한스 부록마이어가 그린 ‘사도요한이 환상속에 묵시를 받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요한이 바트모스섬의 큰 감람나무 밑에서 기도하는데 하늘에서 나팔소리 같은 음성과 빛으로 묵시를 주시는 하느님의 상(image)을 향해 뒤돌아보는 모습이다. 
예수님이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장면과 아주 비슷하다. 예수님께서 이 사도를 가장 사랑하셨기에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맡겼으며, 바로 그때 예수 자신의 일부를 전수하신 것은 아닐까? 
 사도 요한은 다니엘 예언자와 비슷한 성령의 체험을 한다. 다니엘은 티그리스 강가에서 3주간의 고행을 마쳤을 때 모시옷에 금띠를 두른 빛나는 한 사람의 큰 음성에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진다. 그분이 흔들어 깨웠을 때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말씀을 받고 환상을 본다(다니엘서 10장).
사도 요한도 바트모스 섬에 갇혔을 때 '주님의 날'에 성령의 감동을 받고 빛 속에 울려오는 나팔소리와 긴 옷에 금띠를 두른 분을 보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그분의 발 앞에 쓰러진다. 그분으로부터 '일곱 별과 일곱 황금등경'의 비밀을 듣고 '이미 본 것과, 지금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 일곱교회(보편성을 띤 모든 교회를 의미)에 보낼 소명을 받는다.
 


묵시록12장에 “태양을 입고 달을 밟고 별이 열두 개 달린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나타난 여자와 용”의 이야기는 새삼스레 충격을 준다. 이 표징에 대해 대부분의 성경 주석가들은 요한이 헬라 신화의 아폴로 탄생, 이집트 신화의 호라스 탄생 이야기, 유다민족의 12족장 등을 연상한 것이며, 신구약 시대에 구원받은 사람의 무리의 표징으로 본다. 
또 다른 주석은 ‘하느님 아들의 어머니’란 제시에서 성모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실은 그리스도 교회를 탄생시킨 하느님의 백성, 곧 교회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성 베르나도는 이 표징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중간에 위치하신 성모 마리아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최근에 쿰란 사해사본에서 나온 ‘감사의 시편’이란 책에 묵시문학의 용어를 인용하는 학파가 나오고 있어서 연구 과제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다만 “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릴 하느님 아들의 어머니”는 모든 어머니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둥근 태양을 입고 있는 그 어머니는 인격의 대극이 일치하는 만달라의 원형을 안고 재현하는 성모의 모습이 아닐까?
 


모든 신화는 상징성과 역사성이 구체화되고 병행하게 마련이다. 사도 요한이 모시고 있던 메시야의 어머니에 대한 그의 무의식적 사념이 환상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성모에 대한 원형적인 가치를 인식시키는 표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지를 여행하는 동안 자주 만나는 십자가상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구스타브 융이 말한 ‘완벽한 성 사위론(聖 四位論)’을 생각해보았다. 그리스도교의 성 삼위 교리에다 물질의 세계인 ‘악의 요소’를 덧붙인 이론이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라도, 성 삼위의 요소에 여성적인 요소가 없으므로 여성인 마리아가 제4위(第四位)의 하느님 역할을 한다면 ‘악의 제4위 요소’보다는 마리아의 부드러움과 여성적인 사랑이 사방위(四方位)의 십자가를 완성시키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다시 한 번 시원한 감람나무 그늘에 서 계신 성모님께 평화와 기쁨이 깃든 은총과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성모님도 내 뜻을 이해한다는 듯 빙그레 웃으시며 내가 쥔 그분의 손을 통해 따스함마저 느끼게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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