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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소동(2)(잊지 못할 독일가정 인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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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옛날 가난한 부부가 조기(생선) 한 손 사다 천장에 달아놓고 한번 쳐다보고 밥 넘기고 하다가 부부 싸움이 일어났는데 남편이 조기를 한 번 더 쳐다봤다나. 독일 음식 먹기 싫을 때 한국 양념 생각하고 군침을 넘기면서, 느끼한 독일 음식을 목으로 겨우 넘기며 유난히 힘들어하는 친구의 손을 잡고 질금질금 울기도 했다.


 가까운 가게에서 국수와 캬베추를 빨리 사왔다. 그 삼사십 분 동안 국수를 삶아서 양념간장에 비벼먹고 싶었다. 부엌에 보니 간장은 조금 있었다. 조그마한 병에 든 것인데 몽탕 부어도 거짓말 조금 보태어 병아리 눈물 정도의 양에 가지고 온 양념을 진하게 넣어 삶은 국수에 초스피드로 비벼서 먹으니 얼마나 맛있는지 꿀맛이 따로 없었다. 


두 노인네가 낮잠에서 일어나기 전에 끝내야 하니 그야말로 꿀맛 같은 국수를 즐기지도 못하고 빨리빨리 먹어 치웠다. 흔적 없이 설거지를 말끔히 하고 멀리서 지켜보니, 그들이 일어나다 킹킹 냄새를 맡는 큰 코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가 베로니카, 수산나 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그들 앞에 대령하니 너희들 무엇을 했기에 이상한 냄새가 이렇게 진동하느냐고 물으셨다. 우리는 머무적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국 음식 해먹었다고 말씀했더니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그래 잘 했다고 웃고 넘어갔다.


그 후 며칠이 지나고 저녁을 먹는데 독일 채소 수프가 나왔다. 간장, 마기(Magi)를 찾는 것이다. 할머니가 부엌으로 가서 자기가 놔둔 곳에 아무리 봐도 없으니 이상하다, 간장 병 못 봤느냐? 찾느라 그야말로 여기저기 뒤적이며 간장 소동이 났다. 발도 없는 간장이 어디 갔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 음식 만들 때 사용해 버렸다고 했더니, 특유의 독일말로 Mein Gott (Oh My God)을 연달아 하시면서 그 많은 간장을 한꺼번에 다 먹다니! 우리는 그 간장을 몇 년째 쓰고 있는데 하시며 이해를 못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병아리 눈물만큼인 간장을, 얼마나 우습고 미안하고 황당한지. 그들의 음식문화와 우리 문화가 다르다고 말씀을 해드리니 고개를 끄덕이긴 하셨다.


 미안해서 다음날 한 십 년은 잡숫게 제일 큰 병의 간장을 골라 사다 놓았다. 물론 그들도 간장이 아까워서 하신 말씀은 아니었다. 그분 말씀이 그렇게 많은 간장을 한꺼번에 다 먹었다는 그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들은 간장으로 간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방울 떨어뜨려 간장 맛 즉 맛 (flavor)'으로 사용했다.


 그때 우리의 짧은 독일어로 우리나라의 양념과 간장 사용량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고, 한바탕 웃고 재미있었던 저녁 식탁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후 친구와 나는 진씨 댁 추억에 독일 간장(Magi)을 볼 때마다 진씨 댁 간장 소동이라 이름 지었다.


 그 댁은 무슨 물건이든 다 오래된 것뿐이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우리가 기차 타고 그 댁 가까이 정거장에 내렸더니, 우리 소식을 받으신 진 신부 아버님께서 자전거로 우리를 마중 나오셨는데, 자전거가 하도 낡아서 우리 둘 가방을 싣고는 30분 거리를 할아버지와 함께 천천히 걸어서 집까지 가는데 두 가방이 넘어질까 두려워 뒤에서 진땀을 흘렀다. 


 집에 도착해서 하시는 말씀이 자전거가 30년이 되었는데 학교 선생님으로 그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셨단다. 오래된 것이라 짐을 실으니 바퀴가 잘 안 돌아가서 집까지 오는 데 힘이 좀 드셨다는 말씀을 듣고 우리는 얼마나 죄송하고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리고 독일이 아주 잘 사는 나라인데 그런 물건을 버리지 않고 사용한다는 그 정신에 우리는 또 놀랬다. 그 당시 우리나라가 몹시 가난했지만 그렇게 낡은 자전거는 처음 보았다. 도착하는 날부터 긴장으로 짧은 독일어 실력에 소통도 원만치 못했고 이래저래 그들과 말수가 적어 두 노인은 또 걱정이 되어서 우리들의 기분을 맞추려고, 시골이니 큰 도시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Oberhausen 이란 큰 도시를 보여줬다. 독일 가서 처음으로 큰 도시 구경을 한 것이다. 


부엌물건 음식 만들 때 저어주는 나무 주걱이 반달 모양이라 원래 모양이 그런 줄 알았더니 주걱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초승달도 반달도 상현달도 있어 물어보았더니 초승달 모양의 주걱은 30년 넘은 골동품으로 닳아서 반들반들했다. 독일 사람들은 버리지 않고 알뜰하고 부지런하고 검소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처럼 알뜰한 나라와 가정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앉아서 쉬면서도 아프리카에 보낼 뜨개질을 열심히 하시는데 상처에 감아줄 붕대를 목화 실로 뜨시는데 적당한 길이의 붕대가 바구니에 수북이 담겨 있는데 수십 개가 모이면 보낸다고 하셨다. 알뜰하게 살림을 하시고 절약한 돈으로 가난한 나라 즉 후진국으로 미션(mission)으로 보내시는데 그 당시 아프리카 우리나라 등 여러 나라를 꼽으셨다.


 얼마나 감격했고 감사했는지, 입던 옷도 쓸 만한 것 골라 깨끗이 빨아서 보냈다고 하시는데, 구제품 받아 입었던 옷 생각을 하니 이런 가정에서 보내준 것임을 다시 알게 되었고 두고두고 본보기가 되는 거룩한 성 가정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었다.


두 노인은 오래 전에 천당 가셨는데 잊지 못할 은인, 그 가정에 고마운 마음과 착하고 희생정신과 참사랑으로 남을 도우며 사셨던 그들의 깊은 신앙을 본받고 싶다.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평화의 안식을 주소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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