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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사역과 기도(44)
kimjinkyu

 

 

(지난 호에 이어)
백발의 연로한 크리스천들은 백발의 영화로운 면류관을 얻고, 그의 의로운 길, 곧 신앙의 길에서 얻게 되는(잠16:31)것을 일대 관심사로 삼아야 한다. 의로운 길은 곧 신앙의 길이요, 주하나님(Lord) 을 따라 성실하고 경건하게 사는 길이다. 


주하나님이나 사람이나 다 의로운 길에서 노인을 만나려고 찾을 것이다. 주님 안에서 성숙하게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나이가 많은 분은 선한 자이며 많은 연륜은 그들에게 최선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을 것이라고 예상될 것이다. 


그러므로 노인을 그 의로운 길에서 찾아 볼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이 올 것이며 심판하시는 이가 오고 계신다. <주가 가까우시느라>, “주 앞에서 평강 가운데 나타나게” 되려면 (벧후3:14) 나이 많은 분들은 “의로운 길에서” 발견되기 위하여는 발 들여 놓은 지 오래된 그 길에서 끝까지 머물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백발들(노년의 크리스천)이 “의로운 길에서 얻게” 된다면 그들의 나이는 곧 영광이 될 것이다. 고령은 그 자체만 해도 영예롭고 존경을 받을 만하다(“너희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라”(레 19:32). 


그러나 흰 머리라도 악한 길에서 발견되는 경우에는 그것의 존귀가 상실되고 면류관이 욕을 입으며 티끌에 놓이게 된다(사65:20). 그러므로 노인들이 자기의 명예를 보존하고 싶으면 계속하여 자신의 성실성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백발이 진정 자신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그런 자는 “배나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이다. <노년>의 “영화”는 <은혜>인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상에서의 삶이 긴가 짧은 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도>의 생활을 하는가, <죄인>의 삶을 사는가에 있다. 


또한 연륜이 많은 크리스천은 온유한 성질의 유익함을 알고 특히 “백발”이 된 자에게는 더욱 잘 어울릴 것이다. 온유함의 성질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며 쉽사리 화를 내거나 도발에 곧잘 발끈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온유한 자이면 우리 격정을 폭발시키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적 여유를 가짐으로써, 화를 냄으로 인해 정당한 영역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고 노(怒)를 향한 행동을 더디게 하여 빨리 화를 멈추거나 진정시킬 수 있게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 정욕이나 애착심, 우리의 모든 취향을 지배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성품이 분노를 지배하여 신앙과 올바른 이성의 지시와 억제와 엄한 규제 아래 두고, 지키는 자가 <온유한 자>이다. 


우리는 주하나님이 그러하신 것같이(나훔1:3) 분노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 격정을 다스리라>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신의 다루기 힘든 격정(Passion)을 정복하는 데는 적군에 대한 승리를 얻는 것보다 더욱 참한 지혜가 필요하며 보다 꾸준하고 항구적이며 규칙적인 관리가 요구 된다.

 
또한 복음은 내 자신을 아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잠27:19).” 이 말씀 속에서 우리 자신을 알게 되는 길은, 물은 반사에 의해 우리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거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을 사람에게 즉 자신에게 밝혀 주는 거울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늘 자신의 양심과 생각과 애정과 의도를 살피도록 하자! 주 하나님의 “법의 거울에 자기의 생긴 얼굴”을 비춰 보자(약1:23). 그러면 자기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며 자기의 진정한 개성은 어떠한 지를 식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람이 자기의 바른 모습을 아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를 통해 서로를 아는 길은 사람의 얼굴과 물에 비친 형상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듯이, 한 사람의 마음과 딴 사람의 마음에는 유사함이 있다. 


주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같게 만드신 것이다. 다수의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을 통해서 남을 판단할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규칙의 근거가 된다. 


우리 모두는 주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고 기도로써 하나님께 부지런히 고하며 이 기도에 대한 화평의 응답을 고대해야 한다. (잠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복음)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 하니라.” 


바로 주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시켜 주는 것은 <말씀>과 <기도>이다. 영광의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듣거나 경청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도 주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하나님께 가증한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도 그가 부를 때 듣지 아니하시는 것이다(잠1:24,28). 


주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온갖 이해력을 얻는 비결이다. 주하나님의 영광을 자기의 목표로 설정해 두고 그의 은총을 행복으로, 그의 <말씀>을 규칙으로 삼으며, 모든 경우에 <기도>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들이 곧 주하나님(LORD)을 찾는 자이다. 


그러한 자들에게 지혜의 <영>을 주실 것이다. 사람이 주님의 뜻을 행하면 그의 가르침도 알 것이다(요7:17). “한 지체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은 동일한 형제요 그리스도의 종이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음탕과 잔인함의 모체요 보금자리이며 유모(乳母)가 되어 왔고, 되고 있는 바벨론(로마황제, 교회를 핍박하는 세상권세)의 멸망을 위해서 바른 신앙을 사수하며 “아멘 할렐루야”를 외쳐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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