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hail
한국서 LG 근무
1999년 캐나다이민
벤처사업(FillStore.com), 편의점,
현재 반(Vaughan) 지역에서 한국라면 전문점(Mo Ramyun) 운영중
289-597-8810
[email protected]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4 전체: 114,398 )
지옥 체험
kimhail

 

 ‘XX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라는 말을 많이 쓰고 많이 듣는다. 주로 높은 자리에 계시던 분들의 이임사, 기업이나 조직의 창립 기념식, 졸업식의 축사 등에 많이 쓰인다. 


 그냥 늘상 인사치레로 그리 쓰이는 줄 알았는데 지금 이 말이 내게 꼭 와 닿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을 더 빨리 느끼게 된다 한다.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일년은 일생의 오분의 일이지만 오십 먹은 사람에게 일년이란 일생의 오십분의 일에 불과하기 때문에 세월을 체감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논리인데 과학적으로 진짜 그러한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갈수록 세월이 빨리 흐름을 체감하기는 한다.


 어느새 이 자리에서 식당을 시작한 지 이년이 흘렀고 그 이년 전의 기억이 실로 엊그제 같다. 점심시간 무렵이면 엄청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야속하게도 모두 우리집을 피해 간다. 옆집은 자리가 없어 손님들이 되돌아 나오는데 텅 빈 우리집에는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타는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직원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잔소리 할 일이 있어도 혹여 ‘장사 안되니까 공연히 우리한테 화풀이 하네’ 할까봐 조심스러웠다.


 장수가 죽으면 그 싸움은 끝이 난다. 아무리 힘들어도 직원들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의연한 척 헛웃음을 웃고, 원래 개업 초기엔 다 그런 법이니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큰소리 쳤다.


 식당을 개업하면 보통 3개월 가량은 소위 ‘오픈발’이라 해서 호기심에 한번씩 들르는 손님들만으로도 장사가 제법 된다는데 그마저도 없었다. 개업 시점을 잘못 맞추어 오픈을 하자마자 가장 큰 타겟 고객군인 대학이 방학에 들어가고 연이어 휴가철이 되면서 날이 갈수록 손님은 줄어만 갔다. 


 남들 하는 대로 런치 스페셜도 해보고, 일단 돈버는 것보다 가게에 손님 채우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아 맥주를 원가 이하로 팔아 보기도 했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 전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전쟁터라 한다. 그러나 식당을 창업하는 일은 전쟁 정도가 아니라 지옥으로 뛰어드는 것이라고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치 성공이 어렵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이 따른다는 이야기이겠다.


 이승에서 선행을 많이 하고 좋은 업을 쌓아야 죽어 천국에 간다는데 필자는 전생에 그리 좋은 업을 쌓지는 못한 모양인지 스스로 자청해서 그 지옥의 문을 여는 운명을 마주했고, 그 견디기 어렵다는 유황 불가마 속에 푹 잠겨 몇 개월을 보냈다. 실로 그 이년 전의 기억들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지옥이 무서운 건 스스로 죽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불가마 속에 앉아 죽지도 못하고 버텨내야 하는 일, 언제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될지 기약도 없고 그래서 그 지옥을 못 견뎌 뛰쳐나온들 천국으로 가는 다른 길을 알지도 못한다.


 다 포기하고 불가마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눌러 주고 그 지옥을 버티게 해준 것은 우습게도 알량한 자존심 이었다. 


 그 동안 투자한 돈, 가족들의 기대, 직원들, 그럼 이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들 보다 앞서는 마음이 ‘내가 이 정도도 못 해내는 사람이었던가’하는 자책, 어떻게든지 성공시켜 남들 앞에 ‘봐라, 당신들이 우려하고 말렸지만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라고 당당해 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오기, 그런 것들이 그 지옥의 불가마를 버텨내게 했던 것 같다. 


 겪어 보니 식당을 창업하는 일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기는 하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것은 죽어서 가는 지옥은 탈출구가 없으나 이 지옥은 찾아보면 어딘가에 탈출구가 반드시 있으며 그 탈출구가 단지 지옥을 벗어나는 문일 뿐 아니라 때로는 천국으로 바로 올라가는 계단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나고 보니 그 지옥에서 나오는 길은 아주 가까이 있었고 단순했다. 뭔가 특별한 비방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손님의 입장이라면 무엇을 원할까’를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맛있어야 하고, 적당한 가격에 평균 이상의 서비스 그게 다다.


 메뉴들을 다시 점검하면서 맛을 잡고, 확실하게 맛이 있거나 독특해서 손님의 관심을 끌만한 메뉴만 두고 어중간한 메뉴들을 삭제했다. 잡지, 서적, 인터넷을 뒤져 아직 캐나다에는 소개되지 않은 특별한 메뉴들을 찾았다.


 손님들의 불만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많은 재량을 주었다. 특별한 손님, 불만이 있는 손님에게 내게 묻지 말고 직접 조치를 취하라 했다. 음료수나 간단한 에피타이저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음식값을 받지 않는 것조차도 직원들이 직접 판단해서 즉각 조치하도록 했다.


 인터넷에 우리 서비스에 만족한 손님이 올리는 평을 프린트해서 회람시킴으로써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자신감을 갖도록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지옥에서 벗어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지옥은 너무나 매력적인 지옥 이었다. 나를 더 단단하게 해 주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었으며, 많은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어 주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건 두려움과 함께 늘 마음이 설레는 일이다. 언젠가 또 다시 지옥문을 마주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망설임 없이 힘차게 열어 제치고 그 황홀한 유황 불가마를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즐겨 보련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