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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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33)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바울 사도가 지적하신 것처럼 모두가 눈이어서도 안 되고, 모두가 귀이어서도 안 되고, 모두가 손이어서도 안 된다. 한 몸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지체들은 서로 다르고, 서로 다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온전한 전체를 이룬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만물 역시 그렇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서 자타나 내외나 선악이나 미추나 귀천이라는 관념을 가진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성령의 은혜로 사람마다 각각 다른 재능과 역할을 맡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유기체로 비유되는 인간 사회이고 우주자연의 모습이기도 하다. 


모두가 성령으로 하나가 되고 동일한 성령으로 숨 쉰다. 성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과 천지만물이 성령으로 하나가 되고 동일한 성령으로 숨을 쉰다. 어리석은 중생은 그것을 모르고 있지만 성도는 그것을 안다.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이란 이사무애법계에 들어간 사람이고 사사무애법계에 들어 간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사람이고,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된 사람이다. 


그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숨으로 생리를 얻어 생령이 된 그 때 그대로의 모습을 되찾게 된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특권을 되찾게 되었다.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 온 탕자처럼 이제 안심이다. 그는 옛 일을 잊게 되고, 자신 마저 잊는다. 화엄사법계가 기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실로 크다. 사법계와 이법계는 각각 인간 나름으로 만들어 낸 가상적 세계와 실제로서의 하나님의 세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이사무애법계는 사람의 몸이 곧 성전으로 하나님이 사람 안에 거하시고, 사람이 하나님 안에 거함으로 사람이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됨을 뜻하고, 사사무애법계는 하나님이 사랑인 것처럼 사람이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있음을 뜻한다.

 

화엄사법계에서 우린 자신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화엄사법계는 우주를 꽃과 같은 유기체로 보게 될 때 나타나는 진리다. 사(事) 이면에는 반드시 이(理)가 있다. 사에 있어서 이는 사양의 여지가 없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의 명령이 그런 것이고, 십계명이 그런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위한 것이다. 화엄사법계는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불교의 핵심 사상인 연기법에 따른 것이다.


이 연기 사상은 연합설이란 측면에서 자연과학과도 일치하고,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경로를 통하여 형성되는지를 설명하는 학습이론과도 일치한다. 화엄사법계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인간이 현실적으로 당하고 있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식이 된다. 


어떤 현상도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이 일어날만한 조건과 상황 아래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하게 하는 화엄사법계나 연기법은 인간을 무력감에서 구하는 구체적 전략을 제공한다. 


불교가 기독교와 다른 것은, 불교는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신으로 섬기는 것과 같은, 형이상학적 신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과 사람이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가, 등 사람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믿는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있게 하시고 천지만물을 관리하는 법과 이로 보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신이나 우상이 될 수 없다.

이(理)가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그 이(理)가 되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행적이 바로 사람이 따라야 할 길이다. 


불교나 기독교는 동일하게 사람이 살 길을 자비라 하고 사랑이라 한다. 하나님이나 예수님은 사랑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랑 안에 거하면 그것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고, 하나님도 사람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에 있어서의 하나님은 사람 밖에 별개로 존재하는 신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신이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태어나게 하고, 숨 쉬게 하고, 걷고 뛰게 하는 인간의 본질로서의 이(理)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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