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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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28)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사념처를 학습 및 행동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사행과 마찬가지로 인지-행동적 접근법에 속한다. 사념처에는 심신의 이완, 심상, 생각, 행동이 결합된 총체적 자기 통제법이다. 사념처의 적용은 탐진치를 계정혜로 대치하는 심리치료법이 된다. 


예를 들어 사념처는 탐(貪)을 계(戒)로, 진(嗔)을 정(定)으로, 그리고 치(痴)를 혜(慧)로 전환하게 하는 방법으로 유기체로 비유되는 사회 그리고 우주의 일부인 자신을 전체라는 법에 일치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본심으로 가진 사랑과 평화 그리고 지혜를 실현할 수 있게 한다. 


그 이상의 사회적 윤리나 도덕도 없고 병든 몸과 마음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사념처는 결국 “어스름한 밤에 길 앞에 가로놓인 새끼줄을 보고 뱀을 보았다”고 고집하는 것과 같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그러한 무지에서 벗어나 “뱀은 뱀으로, 새끼줄은 새끼줄”로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또한 사념처는 거기서 한 층 더 나아가 새끼줄도 수 많은 짚들이 모인 것이고, 뱀이라고 할지라도 지수화풍, 사대가 모인 결과에 지나지 않은 것이므로 뱀이나 새끼줄이라 할지라도 미리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과 그 모든 것의 본질 역시 공으로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하면서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촉구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린 십계명 역시 탐지치를 계정혜로 바꾸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사념처에 제시된 내용이나 기법들은 십계명을 지키는 자기 통제법으로 역시 적용할 수 있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억지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본래의 그 모습대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28. 벽관/좌선


달마 대사의 사행이나 사념처를 “생각으로 생각을 다스리게 하는” 인지적 방법이라 한다면 달마의 벽관이나 좌선 수행은 생각 자체를 끊게 하는 방법으로 공인 인간의 본심에 바로 들어가게 하는 방법이다. 


생각으로 생각을 다스리게 하는 사행이나 사념처가 착한 생각으로 악한 생각을 다스리게 하는 좋은 방법이 되지만 거기에는 아직도 자기 나름으로 생각, 인간 나름으로의 생각이라는 우주의 법, 자연의 법에 일치하지 않는 망상이 포함되어 있다. 


달마의 벽관이나 좌선은 그러한 위험성까지도 제거하는 방법이다. 혜능 선사는 좌선을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을 좌(坐), ‘앉음’이라 하고,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음을 선(禪)이라 한다”고 정의하셨다(육조단경, 2003). 


본심이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지기 이전의 아담과 이브가 가졌던 초심이다. 아담의 초심이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이 직접 아담의 코 안에 숨을 불어 넣어 생기를 얻고 생령이 되게 한 바로 그 몸이고 그 마음이다. 


아담의 초심은 “너희 몸이 곧 성전!”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나타낸다. 아담의 몸은 흙과 벽돌 그리고 나무로 성전의 기둥과 벽과 지붕이 되고, 하나님의 숨결과 지혜가 성전의 주인이 된다. 


하나님의 뜻과 법이 아담의 뜻과 법이 된다. 그러나 아담의 초심은 그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 지금까지 하나님과 자신이 둘이 아니었던 것이 둘로 나누어져 자타가 되었고, 내외가 되었고, 주종이 되었고, 선악이 되었고, 귀천이 되었다. 


그것이 지금 사람들이 가진 마음이다. 벽관이나 좌선을 불교에서 보면 그것은 자가가 가진 지금의 마음이란 이전 행동 경험이 쌓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이 자신이 통제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본래 자기란 비어있게 되어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본심을 회복하기 위한 불교의 벽관을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아담이 잃어버린 초심을 찾는 방법에 해당된다. 또한 벽관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심신의 깊은 이완으로, 이완을 방해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불필요한 긴장이나 두려움이나 분노와 부적응 행동을 소거하는 방법이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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