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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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24)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예를 들어 어떤 경험을 통하여 개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러한 공포증에 의하여 무해한 개에 대하여서까지도 적의를 나타내거나 싫어하게 되는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본심이 어디에 엉기거나 집착되어 있음으로써 자신이 본심으로 가진 사랑이라든가 평화스러움이라든가 슬기로움을 발휘하지 못하게 됨을 방지하는 것이 무념이라든가 무아라든가 공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무념은 이전의 불행스러웠던 경험의 상처로 남아 개인을 계속 괴롭히고 있는 기억을 제거해줌으로써 마치 거듭난 사람처럼 밝고 청순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 


어린아이의 마음과 같이 순박하고 청순한 마음을 비워져 있는 마음이라고 한다면 온갖 잡다한 경험이나 자신이 기억하기조차 싫은 경험으로 마치 쓰레기통과 같이 되어버린 성인의 마음을 비워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한다. 


마음을 비운다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습의 뿌리가 깊으면 그 만큼 지워지기 어렵다. 심리치료가 어려운 것도 그것 때문이며 불교 수행이 어려운 것도 그것 때문이며 “거듭 난” 기독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달마 대사가 도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행입과 이입, 두 가지를 소개하는 것이나 선 불교에서 경전을 읽거나 법문을 들으면서 천천히 깨닫고 천천히 닦도록 하는 초기불교의 교학 중심의 수행법을 인정하되, 화두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게 하는 참선으로 단번에 깨닫고 단번에 수행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 역시 마음을 비움으로써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이 어디에 엉기거나 집착됨이 없이 “뱀은 뱀으로, 새끼줄은 새끼줄”로 볼 수 있게 하도록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무념을 기독교에서 보면 사람의 몸이 곧 성전이 됨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법에 일치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됨을 뜻하는 것이고, 무념을 과학적 관념에서 보면 우주에 속한 인간이 우주자연의 법칙에 따라 사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그가 불교 수행을 통하여 무아가 되거나, 기독교 신행을 통하여 무아가 되거나, 심리치료를 통하여 무아가 되거나 간에, 진정 무아가 된다면 그에게는 그 이상 “불교”니 “기독교”니 “심리치료”니 하는 명칭조차 사라지게 된다. 


또한 그가 무아가 됨으로써 나타내게 되는 행동은 마치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거기에는 유대인이니 사마리아인이니 하는 분별도 없으므로, 하나님이니 예수님이니 부처니 부처 아니니 하는 관념조차 없어진다. 


사마리아인도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보면 인간의 본질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절실한 과제다. 더군다나 인간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 마음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에서 보면 무아에 대한 깨달음이란 누구에게나 화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다. 


자기의 몸이 성전이 되게 하는 방법은 우선 자기라는 것을 비우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비움으로 성취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과 법에 일치하여 살게 됨으로써 고통이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 두 가기 모두가 선악이라는 지식, 분별심이 일으키는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된다. 첫째는 마음이 비워짐으로 이전 행동경험 결과로 형성된 탐욕이나 성냄이나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과 법에 일치되는 행동을 하게 됨으로써 이웃을 자기의 몸처럼 사랑하게 되고 또한 항상 그렇게 원만한 삶을 살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견성을 수행의 궁극적 목적으로 하고 있는 불교와도 일치하고, 과학자들이 보는 인간관과도 일치한다. 우주자연의 법과 이에 일치되는 삶이란 곧 자신의 본질에 일치되는 삶으로써 그것 이상 건강하고 완전한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이 장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라는 지식의 열매를 따먹기 이전에 소유하고 있었던 초심과 같은, 인간 본심을 회복하는 구체적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불교의 두 가지 방법으로, 달마 대사가 설한 행입/사행과 이입/벽관에 각각 비교되는 사념처와 좌선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동시에 본심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것이 기독교의 관점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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