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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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21)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사람의 몸은 사람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자연의 이를 따른다. 이 속에 치유가 있고, 사랑이 있고, 평화가 있고, 지혜가 있다. 사람의 허망한 생각은 이를 따르고 이와 하나가 되게 되어 있는 몸을 방해한다. 그것이 탐욕이며 분노이며 무지다.


인간의 고통이 거기서 시작된다. 몸이 이를 따르도록 스스로 방해만 하지 않으면 사람의 몸은 새가 스스로 하늘을 날고, 백합화가 스스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과 같이 스스로 자유롭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이웃과 한 몸을 이루며, 스스로 지혜롭게 된다. 


자기의 몸이 본성으로 가진 자연지와 근본지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나타날 수 있게 하는 방법, 그것을 불교에서는 벽관이라 하고, 참선이라 하고, 무념행이라 한다. 


사람의 몸이 곧 창조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사람의 몸이 곧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다. 사람의 몸이 성전이 되고 사람의 몸이 곧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난 이유를 창세기는 그들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열매,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진 탓이라 말하고 있다. 


 한 알의 씨앗 속에 우주가 들어있다. 한 알의 씨앗 속에 온 우주가 들어가 있고, 씨앗은 우주 안에 있다. 씨앗의 지혜가 우주의 지혜이고, 우주의 지혜가 씨앗의 지혜다. 


사람의 몸을 성전이라 부르는 이유도 그것과 같다. 사람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 안에 사람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숨으로 생기를 얻어 생령이 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 씨앗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우주의 지혜를 나타냄으로써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방법은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서 씨앗과 우주 간에 자타나 내외라는 일체의 분별이나 경계가 사라지게 될 때다. 


사람의 몸이 성전으로 기능하게 되는 조건 역시 그것과 같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있는 장사꾼들을 쫓아내시면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성전의 파괴와 재건으로 비유하셨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보이신 모든 행적은 그의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가 자신의 사랑과 지혜로 나타나게 하심을 보이신 것이다. 


사람의 몸이 성전으로 비어 있고, 그 안이 하나님의 성령만으로 채워져 있을 때 사람이 행할 수 있는 능력은 한 없이 크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무조건 사랑과 무조건 용서라 한다. 


즉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처럼 자타나 내외라는 관념이 사라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지 않고 지은바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다. 


사람의 몸이 본래 성전인데도 성전이 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곧 사람의 분별심이다. 예수님이 유대교 지도자들에 대하여 “외식(外飾)하는 자”, “회칠한 무덤” 또는 “양 가죽을 쓴 이리”라 책망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그들 자신과 하나님을 둘로 분별하였으며 그들 자신과 이웃을 둘로 분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눈에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따로 없었고, 로마인과 그리스인이 따로 없었다. 사랑은 기적을 일으킨다. 사랑은 병든 사람도 살리고, 죽은 사람도 살린다. 참 사랑에는 자타라는 분별도 없고 선악이나 귀천이라는 관념도 없다. 


참사랑이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고, 포도나무와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의 관계다. 자신이 무아로 성전이 되고, 자신이 무아로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될 때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실로 크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의 사랑으로 느끼며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느끼게 된다. 그는 이제 이전의 유약하고 비겁하고 무력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어린 사슴처럼 뛰고 독수리처럼 용맹해진다. 무념, 무아의 기적이다. 


사람이 살면서 겪어 온 불행스러웠던 경험들이 그를 우울하게 만들고, 무력하게 만들고, 비겁하게 만들었다면, 공의 체득은 그러한 이전의 경험들을 깨끗이 씻어냄으로써 그를 새롭게 만든다. 


사람은 누구나 불성(佛性), 즉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사람의 몸이 곧 성전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름 아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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