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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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20)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이입이란 자신이 하늘에 둥둥 떠가는 구름처럼, 물결에 둥둥 떠가는 나무토막처럼 ‘억지로 애씀’ 없이 자연의 순리에 따른, 정상 또는 평상심에 따라 살도록 하는 것이 선(禪)의 목적이고 또한 이입의 목적이다. 


우리는 이 이입을 ”너희 몸이 곧 성전“이라 하거나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발견하게 되고, 또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각 지체”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에서 발견한다. 


그 안에는 무아 또는 공이라는 뜻 역시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지이다“라는 자기의 내려놓음이다. 선(禪)이 안심(安心)법문인 것처럼 기독교도 그리스도 앞에 모든 죄 짐을 내려놓게 하는 안심법문이다.


기독교에서의 이(理)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그대로, 창조주 하나님의 숨으로 생기를 얻게 된” 아담의 본래의 그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이다. 


그 안에는 선과 악이라는 관념도 없고, 또한 선악이란 의식에서 생겨나는 부끄럽다거나 두렵다는 감정도 없다. 그것이 영생하는 방법이다. 사람은 단지 남자와 여자가 동침한 결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이(理)에 의하여 잉태하고 태어나고 살고 또한 죽는다. 사람의 몸은 돌로 만들어진 성전과 같다. 성전에는 하나님이 거하시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성전, 인간의 몸 안에 하나님의 숨, 성령이 거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을 ‘도적의 소굴’로 만들고 있는 인간의 욕심이 들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이입이란 밖으로부터 침입한 이 도적들을 몰아내는 것이다. 그것을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비유하셨다. 탐욕과 분노 그리고 무지가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사람을 병들게 하고 또한 일찍 죽게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진실이다. 


이입은 사람이 이(理)에 의하여 태어났고, 이(理)에 따라 살다가, 이(理)에 의하여 늙고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자신의 본질은 자기가 지금 자기라고 믿고 있는 ‘나’, 이전 행동 경험의 결과, 즉 학습의 결과인 ‘나’가 진실한 ’나‘가 아니라 나를 태어나게 했으며, 나를 살게 했으며 또한 나를 늙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그 이(理)가 ’참 나‘임을 깨닫게 된다. 


이 이(理)는 변하지도 죽지도 않는다. 이 이(理)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고, 내가 죽은 이후에도 그대로 남는다. 이(理)를 자신의 본심으로 보면 태어난다고 하는 것이나 죽는다고 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다. 


나는 이(理)에서 와서 이(理)로 살다가 이(理)로 환원할 뿐이다. 이것을 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수 없다. 이(理)가 시작이며 끝이다. 이(理)가 곧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다. 


벽관은 근심걱정에서 오는 병을 두 가지 측면에서 고친다. 첫째는 벽관에 포함된 심신의 안정이, 심신의 안정을 방해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모든 병을 고치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태어남이나 삶이나 죽음이 마치 폭포에서 튕겨져 나온 물 한 방울과 같은 것이었다가 다시 유유한 강의 주류에 합류하는 것임을 깨닫고 안심하는 것에서 온다. 


기독교에서 이입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주기도문이고 사도신경이다. 그러한 기도문에서 발견되는 것이 무아이며 공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곧 이(理)임을 깨닫게 된다. 


구슬이 실에 꿰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생로병사가 이(理)라는 실로 꿰어져 있다. 그 실이 인간의 본심이다. 그 실은 영원으로 이어져있다. 그 실이 시작이고 곧 끝이다. 


인간의 몸은 죽어 본래의 모습, 흙으로 돌아가나 그간 나를 흙의 몸으로 살게 했던 이(理)로서의 성령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이것이 인간의 죽음과 부활이다.

 

23. 이입과 사랑


이입은 사랑이다. 한 몸에 붙어있는 지체들의 본질이 사랑이다. 그 사랑은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관념이 없고, 서로 희생하면서도 희생한다는 관념이 없다. 


바울 사도가 성도를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로 비유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고, 동일한 성령을 숨쉬고 있다는 것이 곧 이(理)다. 


우주도 유기체고. 인간 사회도 유기체다. 무조건 사랑과 무조건 용서가 유기체를 이루는 지체들의 본질이다. 모든 것은 서로 한 몸으로 의존하고 있다. 모든 분자들의 집합체로 끝 없이 나누어질 수 있고, 한 없이 보태어 질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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