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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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14)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불교 수행의 궁극적 목적이 견성, 즉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무념행으로, 자신이 우주에 통합된 존재로서의 자연지, 근본지를 잃지 않도록 하는데 있음을 보게 되면 불교의 수행법이 “긁어 부스럼”과 같은 허망한 생각을 제거함과 동시에 무아로 자신의 행동이 자연의 법칙에 일치하도록 조율하게 하는 방법으로 우주와 공유하고 있는 본심으로서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누구나 배워야 할 기술에 속한다. 


사실 무아가 되지 않으면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자동차 고치는 기술자도 될 수 없고, 차를 끓이거나 밥을 지을 수도 없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될 수 없고, 의사도 될 수 없고, 과학기술자도 될 수 없다.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이 우주자연의 물리학적 화학적 법칙의 통제 하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정신적 또는 신체적 장애자가 되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화엄경에는 선재동자가 지혜를 얻기 위하여 53인의 스승을 찾아간다. 그들 중에는 이교도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뱃사공도 있었고, 심지어 창녀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그들이 하는 일에 있어서는 최고의 전문가들이었다. 선재동자가 그들을 만나면서 배운 것은 어떤 영역에 있어서나 자기가 맡은 일에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공무아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이라 할지라도 몸이 그렇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온전한 상태에 있지 않고서는 통제할 수 없다. 


사람의 몸은 이미 우주의 물리적 화학적 법칙에 따러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정신적 또는 신체적 장애자가 존재하게 된다. 농부가 되거나 비행기 조종사가 되거나 뱃사공이 되거나 외과의사가 되거나 자동차를 고치는 기계공이 되거나 무슨 일이든 간에 그 일에 달인이 되게 하는 방법은 그 일이 요구하는 정신적, 신체적 조건에 무아로 조율하는 기술을 몸으로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벽관과 같은 선 수행의 목적도 거기에 있다. 


자신이 “인연(因緣)의 힘”에 따라 무아로 움직일 수 있도록 자신을 “놓아 버림”에 있다. 이를 불교에서 보면 거대한 ‘그물 망’으로 비유되는 법계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는 인간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고, 기독교에서 보면,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로 사는 방법이며, 심리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마음과 행동이 이전 경험에 의하여 고착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상한 환경에 적응해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유기체 본래의 능력을 뜻하는 것이고, 뱃사공의 관점에서 보면 배를 목적지에 안전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닿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일이 요구하는 다양한 조건에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정확하게 일치되도록 조율하는 기술을 취득하여야 한다는 것에 해당된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우주자연의 법칙에 따라 산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우주자연의 법칙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지 않고 지은 바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육신을 이룬 것이다. 하늘도 그렇고 땅도 그렇다. 사람의 몸이 곧 성전이다. 성전의 지붕이나 벽은 흙이나 돌이나 나무와 같은 물질로 되어있다. 


성전인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떡을 먹고 물을 마셔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실 수 있도록 깨끗이 비워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전으로서의 사람의 몸이 움직일 수 있다. 


만약 사람의 몸이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채워져 있다면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성전의 기능은 사라진다. “사람의 몸이 곧 성전”이란 예수님의 말씀은 화엄사법계에서 이사무애법계를 지적함과 동시에 사사무애법계를 말함과도 같다. 즉 하나님과 사람이 아무 장애 없이 소통하게 되고, 사람과 사람이 아무 장애 없이 소통하게 된다. “나는 포도나무, 너희는 가지, 하나님은 농부”라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다. 


벽관은 학습된 탐진치를 씻어내는 방법이다. 벽관에서 체험하게 되는 심신의 고요함은 탐진치가 일으키는 신체적 동요나 감정과는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대치 또는 대법의 관계에 있다. 


벽관의 효과가 강력해질수록 탐진치가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든다. 그 예가 이완훈련으로 개나 뱀과 같은 동물이나 높거나 좁은 곳과 같은 어떤 장소나 각종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이후의 사고 후유증 등을 치료하는 심리학적 방법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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