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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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13)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불교에 비하여 기독교는 여호와 하나님을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절대적 신으로 믿기 때문에 타력종교라고 볼 수 있지만, 신약에 와서는 집을 떠났던 탕자가 집으로 돌아가는가, 돌아가지 않는가 하는 탕자 사신의 결정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게 하는 조건임을 암시하는 것이고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내린 계명의 본의를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에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이기 때문에 사람 자신이 하늘 문을 여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것은 기독교가 단지 무력하게 하늘만 쳐다보게 하는 종교가 아님을 지적한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과학자들이 인간은 누구나 우주의 법칙에 따르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리고 불교에서 인간은 누구나 무아로 인연의 힘에 의하여 움직이게 되어 있다고 하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과 같다. 


기독교에서 보면 하나임의 말씀은 사람이 물을 마시고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게 되는 것과 동일하게, 사람이 살아가는데 요구되는 절대적 조건이며 진리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무조건 사랑이라 말하고, 불교에서는 자비라 말한다. 


절대적 진리에 따라 산다는 것을 타력이라 하거나 자력이라 하는 것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자기라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불교에서 보나, 기독교에서 보나, 심지어 과학에서 보나 매 한 가지다. 


사념처는 사람의 일반적 생각과 판단이 얼마나 허상에 속하는가를 발견하게 하는 동시 자신의 본성에 일치되는 건강하고 슬기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하는 방법이다. 


사념처의 이면에는 연기의 이법, 학습의 원리가 좋은 현상을 일으키게 하거나 좋지 못한 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법칙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이는 우리가 사념처를 개인 자신이나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학적 방법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념처에 포함된 연기 또는 학습의 법칙은 동일한 학습 원리에 따라 형성된 부적응 행동을 재학습, 탈학습 또는 소거시키는 방법으로 적응 행동으로 전환하게 하는 과학적 방법으로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달마 대사가 설한 이입사행과 사념처 그리고 참선(參禪)을 바탕으로 이전의 바람직하지 못했던 경험, 즉 학습에 의하여 형성된 개인적 성격이나 개인이 속한 사회 자체의 변화를 가져 오게 하는 방법에 대하여 이후 다시 논의하게 될 것이다.


18. 벽관의 심리적 기능


 벽관은 사람이 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옹벽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이 옹벽이 된다는 것은 어떤 생각도 일으키지 않음을 뜻한다. 불교에서 사람의 본심을 거울에 비교하거나 허공에 비교하거나 태양에 비교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벽관은 심신의 절대적 안정을 뜻하기도 하며, 절대적 소극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벽관에서 경험하게 되는 이러한 심리적 태도를 심리학자들은 ‘소극적 주시’(passive attention), ‘무판단적 수용’(non-judgemental acceptance)이라 부른다.


사실 숨을 헤아리게 하는 방법이나 근육이완 훈련을 통하여 심신을 깊은 이완상태에 들어가게 하는 것도 무념을 위한 벽관에 비교된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벽관에서 체득하게 되는 무념은 어떤 자극이나 상황에 조건화된, 두려움이나 혐오감과 같은 부적 감정이 몸과 마음에 일으키는 반응과는 반대되는 것으로, 상호제지의 관계에 있다.


벽관에서와 같은 이완이 유지되면 불안과 같은 감정이 일어날 수 없고, 불안감이 일어나면 이완을 유지할 수 없다. 이러한 상호제지의 원리에 따르면 이완이나 무념의 강도만 증가시킬 수 있게 되면 심신의 안정을 방해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감정적 문제, 심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사실 불교가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마음 하나에 따라 천국이 되고 지옥이 된다. 벽관은 사물에 조건화된 감정이나 행동을 소거하는 방법이다. 


그 예로서, 이완반응으로, 이완과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각종 공포증을 치료하는 방법이다(Wolpe, 1958). 사실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어떤 작은 사건이라 할지라도 심신의 안정을 방해하지 않고 일어나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이완은 심리치료에 있어서 만병통치약과 같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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