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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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3)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바울 사도는 다시 성도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모두가 성령으로 한 몸이 되었고, 동일한 성령으로 숨을 쉬게 된 것”이라 하셨다. 성령의 역사란 인간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그간 자타와 내외, 선악이나 귀천,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분리되었던 것이 다시 한 몸이 되어 사사무애법계를 이루게 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는 그들을 둘로 나눌 말도, 문자도, 관습도, 사회적 계급도, 인종도, 종교도 사라진다. 그들은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각 지체가 된다. 이것이 십계명의 완성으로, “하나님을 신령과 진리로 섬기고, 이웃을 자기의 몸처럼 사랑”하게 된다.


소동파(蘇東坡)는 “자연이 설법을 한다”고 한 스승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계속 의심하며 계곡 깊은 산길을 가고 있는 중에 자기가 타고 가던 말이 산모퉁이를 돌면서 웅장하게 떨어지는 폭포 소리에 갑자기 부닥치면서 그는 “앗!”하고 깨달음을 얻어 아래와 같은 게송을 지었다고 한다. 

 

 

골짜기의 소리가 모두 부처님의 장광설(長廣舌)인데
산의 빛깔은 어찌 청정한 몸이 아니겠는가?
여래의 팔만사천 가지 이 소리를 
다른 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일꼬

 

 

찬송가에도 소동파의 게송에 비교될만한 아래와 같은 노래가 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나 알듯 하도다 

 

 

깨달음이란 항상 사람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번뇌망상이나 근심걱정으로부터 순간적으로라도 해방되는 순간 대상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어떤 경계도 없어져 마치 한 몸에 붙은 손발처럼 소통할 수 있었을 때 체험하게 되는 놀라운 경험이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남”이라 표현한다. 물이란 세례(洗禮)로 씻음을 뜻하는 것이고, 성령이란 불로 태워버리는 것으로 정화(淨化)를 뜻한다. 지금까지 자신과 대상을 자타나 내외나 선악으로 분리시키던 마음, 즉 욕심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을 물과 불로 없애버린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 주종의 관계에 있었던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는 부자의 관계로 바뀌고, 지금까지 나와 상관없던 이웃이 자신의 부분이 된다. 지금까지 자기의 어리석은 마음, 망상이 자기를 통제하고 있었던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래 모습인 창조주의 법과 뜻, 우주자연의 법과 뜻에 자신을 합류하게 된다. 


깨달음이란 지금까지 자신을 전체와는 분리된 모습으로 가두어 두었던 자신을 활짝 열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자신의 부분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깨달음에서 보면 자신이란 시공간적으로 생로병사에 제한되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부분으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자기가 된다. 깨달음이란 그런 대아(大我)를 뜻하며 안심(安心)을 뜻한다. 그의 가슴 안에 모든 것이 안겨진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몰아내심으로 성전이 다시 “기도하는 집”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을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비유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사람 개개인마다 그대로 따라야 할 본이다. 사람마다 욕심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엉기고 집착된 마음을 물로 씻거나 불로 태워 없앰으로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또한 하나님의 숨으로 생명을 얻게 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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