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mail protected]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66 전체: 110,739 )
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24)-“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5)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십자가를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祭物)로 보는 것은 아담의 망심에 의거하여 보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양이나 소를 잡아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를 사하여 줄 것을 믿고 제사를 올렸던 것과 다르지 않다. 


인간이 선악을 분별하게 됨으로써 본래 모든 것이 하나인 세계를 산산조각으로 갈라놓게 만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그 죄, 그 무지 자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화해할 길은 없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된 것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의 모습 역시 십자가를 지고 가야할 인간 각자의 자화상(自畵像)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가르쳐 준, 주기도문을 자신들의 신조(信條) 고백하며 외운다. 그러나 주기도문의 내용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와 같은, 이웃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용서가 곧 하나님의 자신에 대한 사랑과 용서임을 동일시하고 있다. 


사도신경 역시 다르지 않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며. ”는 단지 그렇게 “믿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믿음이라는 인지(認知)의 영역을 넘어서 자신으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할 만큼 자기라는 것을 부인하는, 십자가의 도(道)에 들어가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모든 것이 가식(假飾)이며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에 다름이 없다.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으로는 자신과 하나님이 하나가 될 수도 없고, 자신과 예수님이 하나가 될 수도 없다. 그러나 인간의 본심이 성령이라 믿으면 성부와 성자가 하나인 것처럼 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예수님이 하나가 된다. 인간은 예수님의 몸에 붙은 가지며 하나님은 농부다.


인간의 본심은 본래 완전한 것이다. 본심 그대로만 더럽히지 않고 산다면 그것이 아담의 본심으로 어떤 부끄러움이나 두려움도 없이 산다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다시 임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며 동일한 성령을 숨 쉬며 이 순간도 살고 있다. 누구나 그것을 깨달아 자신이 성전이 되면 그것이 곧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과 화해하는 방법이다. 누구도 미리 선택된 사람은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을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선택된 민족이라 자랑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은 흔해빠진 돌로도 이스라엘 사람을 만들 수 있다고 하셨다. 인간이면 그가 지상 어디에 흩어져 있으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아담의 자손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서 살며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다스리게 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을 수 없다. 


12. 보살(菩薩)의 자격 


예수님이 그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 또는 “회칠한 무덤!”이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셨던 것과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를 꾸짖으며 그들을 에덴동산으로부터 쫓아낸 사건 사이에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고 있을까? 


그 이유로 우린 유대교 지도자들이나 아담과 이브가 모두 선악이라는 분별적 관념으로 그들의 마음이 고착되어 있었다는 것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선악이라는 관념은 인간이 자의로 만든 판단이지 몸과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로 비유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통용될 생각이나 행동이 아니다. 


만일 한 몸에 속한 손과 발 사이에 그러한 선악이란 관념이 존재한다면 그 몸은 온전한 형태로 유지될 수 없다. 예수님은 그들 이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은 없다고 자처하고 있었던 그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의 행동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너희가 그것을 따먹는 날에는 반듯이 죽으리라!”고 경고한 그 열매의 씨앗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본 것이다. 


신약 성서에는 예수님을 빛이라 하고, 세상을 어둠이라 묘사하면서 빛이 왔으나 세상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빛의 속성은 은혜와 진리다. 빛이 있음으로 모든 것이 생명을 얻게 되고. 빛이 있음으로 모든 것의 진실한 모습이 그대로 들어나게 된다. 빛에는 차별이 없다. 


빛은 어느 곳이나 환하게 비춘다. 빛은 지혜다. 빛의 속성과는 반대로, 어둠은 눈을 가진 사람도 장님으로 만든다. 어둠 속에서는 마치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이 그들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이상 코끼리를 전체로 보지 못하게 된다. 그들의 코끼리에 대한 지각과 판단은 ‘기둥’이나 ‘벽’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경험할 수 있었던 것만을 진리라고 고집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