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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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17)-“우리가 지금 에덴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면...”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아담이 경작할 땅은 황폐되어 있어서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그 소출이 빈약하고, 이브에게 있어서는 말할 수 없는 산고가 있고, 뱀은 여인의 발꿈치를 물려고 하고, 여인을 뱀의 머리를 돌로 치려는 해함과 죽음이 있는 세상이다. 이러한 처지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곧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역사다.  


 둘째 방법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아담의 본심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의 행적이 여기에 속한다.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에덴으로부터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동참하여 낳은 카인과 그의 자손들이 가졌던 간교한 마음과는 다르게, 어린 양과 같았던 예수님의 마음은 선악이나 자타라는 어떤 분별심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영(靈)이신 하나님을 영으로 섬기며 이웃을 자기의 몸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우주의 일부로 속한 인간이 자기 나름으로의 어떤 생각도 일으키지 않음으로 우주의 법칙에 따라 가장 지혜롭게 살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라의 진실한 모습이 과연 사람의 몸과 같은 유기체로 되어있는 것이라면 후자의 방법이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법에 일치하게 하는 방법이며 하나님과 인간을 다시 화목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8.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의 몸이 하나님의 숨으로 생기를 얻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임을 뜻한다. 예수님도 그러므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 부르라고 말씀하셨다. 아들은 육체적으로 아버지를 닮아 있고 또한 아버지에 의하여 생명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마음’이라고 믿고 있는 것을 따로 만들어 넣어주신 바는 없다. 이 ‘마음’은 인간이 나름으로 만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현명한 아버지처럼 어린 아들이 성장하면서 선과 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고 또한 그 결과로 수치심과 두려움을 알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하신 것이다.


 에덴동산에는 ‘생명’의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죽음’의 나무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나무에서 열리는 과실을 따먹을 수도 있었고,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있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에서도 생명의 나무가 있고, 죽음의 나무가 있다. 우리가 죽음의 나무를 선택하게 되면 자연히 생명의 나무는 사라지게 된다. 


 인간의 몸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숨으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게 그리고 가장 지혜롭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본래부터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은 성장하면서 아담과 이브가 만나게 된 뱀과 같은 유혹에 의하여 따먹지 않아야 할 것을 따먹고 또한 그것에 중독되어 죽음을 자초하게 된다. 


 인간의 마음은 육체적 욕심에서 생기게 된다. 이브가 뱀의 말을 듣고 보니, 선악과가 ‘탐스럽게’도 보였고, 또한 먹으면 ‘지혜롭게 할 것’ 같이도 보이게 된 것이다. 아담과 이브의 마음은 그렇게 선악과에 집착되어 버린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백지처럼 비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개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어느 한 쪽으로 엉길 수 있게 된다. 


 선악을 분별하게 되는 마음은 인간의 몸과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육체는 먹고, 마시고, 숨 쉬고, 또한 자고 쉬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어떤 자극이나 상황이 인간이 가진 이러한 생물학적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추구하게 되는 선(善)이 되고, 어떤 자극이나 상황이 그러한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거나 또는 고통을 주는 것이 되면 그것은 악(惡)이 된다. 


 사람에게는 이러한 ‘득락이고(得樂離苦)’, 즉 즐거움은 취하고, 고통은 피하려고 하는 기본적 요구가 있기 때문에 경험을 통하여 어떤 것이 기쁨을 주는 것인지를 알게 되면 오직 그것만을 얻으려는 기대가 발달하게 된다.


 인간의 성격이란 바로 개인이 환경과의 관계에서 발달시킨 기대에 불과하다. 만일 그러한 기대가 보통의 수준을 넘어 마약이나 놀음에 중독되거나 욕정에 중독되는 것과 같이 개인 자신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그것에 엉기어버리거나 굳어져 버리게 되면 그 사람은 결국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브에게 탐스럽게 보였고 또한 따서 먹으면 지혜롭게 할 것만 같았던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열매’는 지금 우리에게도 탐스럽게 보이고 따먹으면 지혜롭게 할 것만 같이 보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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