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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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7)
kimbokyung


“우리가 지금 에덴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면...”

 

 

(지난 호에 이어)
 우리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방식은 유기체로 비유되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통용되지 않는다. 흑과 백, 선과 악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곧 탐욕과 분노와 무지다. 이 세 가지 독소들이 만드는 사회가 바로 우리들이 오늘날 보고 경험하는 인간 사회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라가 우리의 몸과 같은 유기체로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지금 우리가 가진 마음이란 마치 “긁어 부스럼”과 같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  


 3. “너희의 몸이 곧 성전이다!”


 아담의 본심과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얻게 된 망심 간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너희 몸이 곧 성전”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아담과 제2의 아담이라고 하는 예수님 사이에는 아담의 경우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눈이 밝아졌다”는 것 이외에는 서로 다른 것은 없다. 


 아담의 몸과 예수님의 몸은 각각 아담의 경우에는 흙이고, 예수님의 경우에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이라고 하는 점에 다르다고 할 수 있으나 양자 모두 물질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하다. 그리고 양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며 또한 성령으로 잉태 또는 생명을 얻었다고 하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우린 예수님이 세상에서 직접 보여주신 행적이 아담의 본심 곧 인간의 본심이 무엇인가를 그대로 보여 주신 것이라고 보면 된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 전까지는 선악이라는 관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는 부끄러움도 없었고 두려움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 선악이라는 관념이 생기게 되면서부터 모든 것은 변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자신과 하나님이 둘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둘이 되어 수치심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수치심으로 그들은 이제 자신들을 감추게 되었고, 두려움으로 그들은 숨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 반면 예수님은 아담의 본심을 그대로 보이신 것으로, 하나님의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자기 안에 거하시는 동체였다.


 즉 예수님의 몸이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었다. 아담의 본래 모습이 그런 것이었다. 그들은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고,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두려움을 몰랐다. 그것이 에덴동산이었다. 


 자신이 곧 창조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는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법에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과 우주의 일부로써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를 공유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숨으로 생기를 얻게 되었다는 것 그 자체가 그것을 역시 뜻한다. 


 인간이 밖으로부터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인간의 본질로서의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은 곧 예수님이 세상에서 보여주신 모든 기적과 이적을 인간 역시 실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며 죽은 사람까지도 다시 살리시는 사랑의 기적이다. 


 둘째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어린양으로서의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님 자신의 죽음과 부활은 이미 아담의 망심으로 ‘도적의 소굴’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어린양과 같은 아담의 본심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뜻하는 것으로, 그러한 어둠에 속한 세상에서 희생되었다가 그것을 이기고 다시 부활한다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서 다시 이룰 수 있다는 소망을 보여준다. 우리의 몸도 ‘도적의 소굴’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과 다름없다. 예수님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내 자신이 성전이 된다고 하는 것은 정혜(定慧)를 뜻한다. 정혜란 자신의 어린아이의 마음과 같은 깨끗하고 빈 마음이 성령의 지혜로 채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라에서 자유자재(自由自在)하게 된다.


 그것을 우린 무념(無念)의 지혜, 공(空)의 지혜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망상에 속하는 인간 자신의 간교한 생각에 의하여 어떤 방해도 받지 않게 될 때 발휘할 수 있는 인간 본연의 지혜를 뜻한다. 


 우리가 속한 사회나 자연을 유기체로 보고 우리가 유기체에 속한 지체로서의 기능을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발휘할 수 있게 될 때 어떤 기적을 우리가 낳을 수 있을까를 깨닫게 되면 예수님이 세상에서 보여주신 모든 기적이나 이적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신화(神話)로 미루어 둘 수만은 없다. 


 21세기 과학기술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자연의 모방이며 자연의 지혜에 의존하는 것이다. 과학이란 사람의 생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사람의 생각을 떠날 때 바로 볼 수 있는 진실한 모습의 세계, 그것을 과학의 세계라 한다. 


 인간의 몸이 무진장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고 세포마다 개인 전체를 대표하는 유전인자들로 채워져 있는 것과 같이 우주도 우주를 구성하는 만물들로 채워져 있고, 그 개체마다 우주 전체를 대표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개체와 전체가 서로 소통하며 한 몸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음을 받았고, 창조주 하나님의 숨, 성령의 지혜로 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낙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체의 요구와 환경조건이 일치될 때를 의미한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요구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진 이후의 요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들의 마음이 비어있었을 때와 그들의 마음이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채워졌을 때의 에덴이란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인간의 몸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인간은 하나님의 숨으로 숨을 쉰다. 인간의 몸이 곧 성전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이란 본래 비어있는 것이어서 그 안에 창조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또한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로 그 세계 안에서 산다고 하면 어떤가? 


 과학자들은 인간은 우주의 일부로 우주의 법칙에 의하여 시공간적으로 통제를 받게 되어있다고 본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과학자들의 견해와 ‘인간의 몸이 곧 성전’이란 예수님의 말씀이나 자신을 포도나무, 사람을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 그리고 하나님을 포도원을 돌보시는 농부로 비유하신 말씀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인간이 자타나 내외나 선악이나 귀천이라는 관념 등 실제로는 우주 또는 전체에 속한 자신이면서도 전체로부터 분리된 것과 같은 망상을 일으키는 순간 그가 본래 빈 마음 그대로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만족스러웠을 것을 모두 잃게 될 것이란 것은 분명한 일이다. 


 기독교에서 보통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 때문에 기독교가 타력종교(他力宗敎)로 오해 받는다. 그러나 예수님이 “너희 몸이 곧 성전”이라고 지적하신 것이나 “나는 포도나무, 너희는 가지”라는 말씀에 의지한다면 기독교는 타력종교가 아니라, 자력종교(自力宗敎)가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변하지 않고서 자신이 성전이 되거나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곧 예수를 영접함에 있다. 자신의 몸이 예수의 피와 살로 채워지는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태운 배가 갈릴리 바다에서 큰 폭풍우를 만났을 때 제자들은 깊이 잠들어 계신 예수님을 깨워 그들을 구해 주시기를 애원한다. 예수님은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신 후에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하셨다. 


 예수님이 뜻하신 믿음이란 예수 자신에 의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 자신 역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산더러 “저리로 가라!”고 하면 가게될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자신이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는 빈 마음으로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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