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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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5)-“우리가 지금 에덴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면...”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무위라고 하는 것은 아인슈타인이 지적한 것과 같은, 인간 나름으로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자신을 전체로부터 분리된 것과 같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는 우주의 법칙에 따라 자기라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것을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 본성의 회복 또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거듭나는 것’ 이다. 


 불교나 기독교를 떠나서라도 우리가 지금 자신의 본심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본심이 아니라 개인의 이전 행동 경험으로 학습된 것이다. 개인마다 각각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다른 경험을 하게 되므로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개인의 마음이나 성격이라는 것은 그가 이전 경험으로 쌓은 사물사건에 대한 일반화된 ‘기대(期待)’에 지나지 않는다. 어릴 때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인이 된 이후라도 타인을 신뢰하기 어렵게 되는 것과 같다. 술이나 마약이나 놀음에 중독된다는 것도 이전 경험을 통하여 조건화된 기대 또는 갈애(渴愛)에 속한다. 


 불교에서 무아 또는 공이라 하는 것이나 기독교에서 ‘거듭 남’이라 하는 것은 그러한 이전 경험으로 학습된 기대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치료의 목적 역시 불교나 기독교 목적과 같은 ‘거듭 남’으로 자신의 본래모습으로 되돌아가게 하는데 있다. 


 예를 들어 마약에 중독되었던 사람이 마약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든가 외상적 스트레스를 경험한 결과로 얻게 되었던 격심한 공포증과 같은 증상으로부터 낫게 되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죄로부터 ‘거듭 남’이란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간 사회나 자연을 유기체로 비유하게 되면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은 모두 ‘비어 있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청정심(淸淨心)이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라 하고, 학습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백지(白紙)’에 비유한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지기 전의 마음과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생긴 마음 역시 그렇게 구분된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법에 일치된 삶을 살 수도 없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자기의 본래모습 역시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귀나 발이 실제로는 한 몸에 붙어 있으면서도 자신은 한 몸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고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망심은 본래 한 몸에 속한 지체로서 소유하고 있는 책임과 기능을 방해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사회다.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의 본질은 자기라는 관념이 없고 자기가 보시(布施)를 하면서도 보시한다는 관념조차 없다. 무아이며 공인 본질은 곧 무조건 사랑과 용서로 나타난다. 불교에서는 이를 자비심이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이를 사랑이라 한다. 예수님이 ‘참 이웃’이라고 칭찬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본질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으로, 중국의 조주 선사는, “차 한 잔 들게!”라 했다. 


 2.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 


 창세기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나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을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아래의 물과 궁창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셋째 날이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순서에 따라, 넷째 날에는 밤과 낮, 해와 달, 그리고 사계절을 있게 하시고, 다섯째 날에는 땅과 하늘에 각각 종류대로 동물들이 살게 하시고, 여섯째 날에는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마지막으로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에 묘사된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무질서하게 아무렇게나 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와 같은 인과의 법칙 또는 연합의 법칙에 따라 마치 벽돌이 하나하나 쌓여 집이 된 것과 같이 창조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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