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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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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없습니다(He is not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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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기 없습니다.” 건물 이름이 생소하게 튀어 올랐다. 일상의 무료함이나 존재의식의 무기력을 막으려는 막연한 시도에 번갯불이 번쩍하였다. 나이아가라 파크웨이를 달리다 포트 ‘이리’ 근처에서 만난 평범한 선술집 이름이었다.

약간 떨어져 높은 지대엔 역사적 건물임을 표시하는 철제 안내판을 세우고 빨간 벽돌의 ‘세인 폴’ 교회가 고풍스럽게 서 있었다. 언뜻 부활하신 예수를 찾은 마리아에게 천사가 전한 말 ‘그는 여기 없습니다.’가 떠올랐다. 당신이 찾는 예수는 여기 없으니 교회에 가보시오. 라는 안내문인가? 하지만 까만 목조의 단층 선술집은 종교적인 암시만 주는 것 같지 않은 여러 상념 들을 불러왔다.

그는 누구며 누가 누구를 찾으러 다니는 것일까? 찾는 대상이 궁금해졌다. 주인은 찾으러 온 사람도 찾으려는 사람도 잘 알뿐더러 왜 찾아 다니는 처지가 되었는지도 밝히 알 듯하였다. 설마 마누라 몰래 어디 간 건 아니겠지. 잠깐 미소가 떠올랐다.

이상을 찾아 꿈을 따라 한국을 떠난 지 어언 반세기가 되었다. 고국을 떠난 지 18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방문을 하게 되었다. 아현동 마루턱 축대 위에 세운 노란 벽돌 이층집은 주인만 바뀐 채 그대로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축대 밑까지 늘어진 라일락 향기가 더욱 반갑게 온몸을 끌어안았다. 드르륵 현관문을 열면 어머니가 반갑게 뛰어나오실 것만 같은 집.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남의 집을 둘러친 블록 담을 손바닥으로 쓸며 돌고 또 돌았다.

한국에 오래 머물게 된 어느 날, 특별히 시간을 내어 어릴 적 옛집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남편의 집이 있었던 공덕동까지 옛날 초등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가 그때의 동선(動線)을 따라보기로 하였다.

집에서 언덕길을 한참 내려와 학교까지 걸어가고, 학교 옆 개천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교문에 들어서면 바로 넓은 운동장, 높은 축대 계단 위에 세워진 빨간 벽돌 이층 학교 건물, 왼쪽 언덕길을 달려 교실에 들어가던 아이들 무리에 단발머리 내 모습이 환히 떠올랐다.

주일에 교회에 가려면, 골목길 어느 집, 내 키 보다 훨씬 높은 축대 위, 베란다에 내놓은 화분의 꽃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저절로 ‘참 아름다워라’ 노래를 부르고 싶어졌었다. 이름 모를 그 꽃들은 지금도 내 망막에서 화려하게 웃는 듯하다.

그런데 이날 우리는 높이와 거리는 나이에 역 비례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토끼뜀을 깡충거리던 언덕길은 한 블록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이고 화분이 놓였던 축대는 내 허리 높이였다. 아플 때면 일꾼이 업고 다녔다는 남편의 등굣길은 채 5분도 안 걸리는 포장도로가 되어 있었다. 세월 따라 자라는 것은 사람의 외면뿐일까.

몇 년 전, 한국방문 때였다. 옛 동네에서 내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재개발, 신축 빌딩의 숲은 고층 건물이 하늘을 가릴 지경이어서 동서남북을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학교와 파출소를 중심으로 운동장 한복판에 서서 사면을 바라보았으나 복개공사를 한 개천은 자취를 감추고 주변엔 주상복합콘도가 줄지어 서 있었다. 넓어진 골목길은 포장이 되어서 바둑판처럼 그어진 도면엔 생소한 길 이름들이 붙어 있었다. 미로를 뱅글뱅글 돌다가 지쳐버렸다.

“그는 여기 없습니다.” 강변 의자에 앉아 다시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저 간판은 나에게 주는 쪽 편지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생애 내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찾으려 한 것은 무엇이었으며 아현동 옛집에서 다시 찾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고향 상실자, 유년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나는 아직도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그를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디 가서 그를 만날까. 땅 위에는 없는 곳,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닌지. “그는 여기 있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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