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shon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www.budongsancanada.com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96 전체: 223,285 )
별이 빛나던 밤에
jsshon

 

고흐 드라이브스루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60만 평방피트의 토론토스타 인쇄창고에서 소리, 빛, 디지털. 영상 등을 접목한 전시회에는 최대 14대의 차량이 동시에 입장하여 시동을 건 채 35분간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빈센트 뵌 고흐(1853-1890)는 후기 인상파 화가로 생애 말년에 ‘생 레 미’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12개월간 발작하는 틈틈이 10여 점의 명작을 그렸다. 고독과 경제적 어려움, 그림이 인정받지 못하는 좌절감, 그리고 병과 싸워야 했던 그의 정신적 고뇌와 갈등의 승화가 아주 특수한 화법으로 표현되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전시회 광고사진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40여 년 전 한 걸작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 앞에 하얀 승용차 한 대가 서 있다. 승용차의 출현은 전시장 전체를 생생한 설치 미술 (設置美術)로 탈바꿈시키면서 별이 빛나던 그 밤으로 나를 끌고 갔다.

 

유학 후 귀국하여 전문분야에서 활약하려던 꿈과 열망은 남편의 진로수정과 출산으로 모두 접어야만 했다. 두문불출 집안에 칩거하면서 육아와 가사에만 전념하리라 몇 겹으로 활동제약을 가했지만 운전은 배워야만 했다. 차가 없으면 발이 없는 것과 같고 운전을 못하면 발이 묶인 것과 같다고 한다. 소소한 집안일들을 스스로 처리 할 수 있다면 연구실에 매어 있어야 하는 남편에겐 크나큰 시간 절약이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평소 기계 공포증인 성격은 필요불가결의 절박한 상황 앞에 겨우 다잡았지만 실제로 운전 교습을 어떻게 받을 것인지가 큰 문제였다. 어린아이를 기르면서 매일 낮 일정한 시간에 연습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최종적으로 가족들의 일과가 전부 끝나는 저녁 6시 이후, 옆집 학생에게 아기보기를 부탁하고, 대학교 주차장에서 남편과 운전 연습을 하기로 하였다.

 

웃으며 나갔다 화나서 돌아오는 것이 부부 운전연습이라고 한다. 이해해주지는 못하고 잘못한다고 소리만 지르는 남편이 야속하기도 하고 서럽고 화가 나서 눈물이 절로 솟았다.

 

차들이 다 빠져나간 휑한 주차장엔 가로등만 졸고 있었다. 축구장과 체육관건물이 있는 넓은 주차장은 여러 개의 녹지대로 구획되어 있어서 그 사이를 돌며 운전 연습을 하기가 좋았다. 운전을 잘하려면 우선 차가 내 몸 놀리듯 거리, 속도, 차폭 등을 자유자재로 조정해야 될 텐데 운전석으로 옮겨 앉는 순간부터 몸은 굳어지고 정신은 핸들에만 집중되어 차를 다루는 게 겁이 났다. 속력 좀 올려! 제일 많이 듣는 주문이었다.

 

그 밤. 벌써 두어 번 소리를 지른 뒤라 서러움이 뭉글거리는 중이었다. 스톱! 큰소리에 화들짝 놀란 중추신경이 반사적으로 운동신경을 건드리는 순간 차는 휙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스톱! 스톱! 자동차는 꽝, 꽝, 땅바닥을 내려치더니 다시 공중으로 솟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꽝! 떨어진 차는 여력으로 미끄러지다가 서버렸다. 와락 잡아 끄는 남편의 손에 끌려 나왔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기능이 전면 중지 상태였다. 모터가 폭발할지도 모른다며 내 손 잡고 뛰는 남편을 따라오면서도 실감이 되지 않았다.

 

불과 몇 초 사이였다. 자동차는 분계선 시멘트구역 2개를 뛰어넘어 잡목과 수풀로 덮인 낭떠러지에 4분의 1쯤 내민 상태로 정지되어 있었다. 낭떠러지 아래는 템스강이다.

 

차 바퀴 네 개가 전부 펑크가 나 있는 것을 보고서야 상황을 대강 정리 할 수 있었다. 브레이크 대신 가속기를 밟았다는 것, 차가 선 것은 펑크 때문에 더 구르지 못하고 나무들에 걸려서 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제야 온몸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남편이 팔짱을 꽉 끼었는데도 사시나무 흔들 듯 마구 흔들렸다. 올려다본 밤하늘에 별들도 요동치고 있었다.

 

아 아이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로 15분 거리를 한 시간이나 숨이 차게 뛰었다.

 

다음날 현장에 나온 자동차 정비사는 차를 끌어 올려놓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어떻게 네 바퀴가 동시에 펑크가 날 수 있느냐. 걸작 중의 걸작(Master Piece)이라며 탄성을 연발했다.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을 다시 들여다본다. 짙은 남색 하늘과 노란색 달과 별이 보색으로 대비된 그림이다. 작열하는 달과 발광(發光)하는 별들, 뭉쳐진 성운이 흘러가듯 꿈틀거리고 있다. 어두운 밤인데도 하늘에서는 잠재된 강렬한 힘이 흐르고 있다.

 

턱은 뾰족하고, 커다란 눈은 상대의 가슴 속까지 찔러보는 듯 섬뜩한 용모이지만 그의 그림에서는 언제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로움이 감지된다.

 

네 바퀴가 몽땅 펑크가 난 내 걸작을 슬며시 대입해보다 문득 뵌 고흐에게 묻고 싶어진다. 하늘로 치솟은 사이프러스나무는 왜 저렇게 새까마냐고, 중앙에 뭉쳐진 성운은 무엇이냐고.

 

정신병원, 정신병자라는 특수상황은 상식과의 단절을 강요한다는 깨달음이 그림을 새 빛으로 조명해 준다.

 

천재 화가는 자신의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억압에서의 탈출을 화폭에 창작했지만 평범한 인생은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공간에 배치하여 자기생각을 전달하는 설치예술 밖엔 표출해 내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살짝 스친다. 그래도 탈출수단이 완전히 사라진 캄캄한 순간에도 달과 별은 더욱 빛나는 걸작이 아니겠는가.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