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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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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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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시간 띠에 줄이라도 좍 긋듯 펑 터트린 오색 종이꽃을 타고 황금돼지해가 들이닥쳤다. 온통 흥분으로 들떠 있던 밤이 가고 아침이 밝기를 여러 날이건만 지난해나 오늘이나 별 다름 없는 일상이 나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새 해’라는 새로운 기대의 눈을 번쩍 뜨게 해 준 건 블라디보스톡에서 날아온 한 통의 이메일이었다. 


러시아 동방교회는 그레고리력에 따라 1월 7일이 성탄절이라고 한다. 12월 25일은 정례적인 성탄절로, 1월7일은 현지국가와 국민에게 드리는 예의로 28년간 두 번의 성탄절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러시아에는 아직 새해가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정수리에 찬 물을 확 뒤집어 씌우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12월.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되면 앞만 보고 분주하게 달려오던 삶의 경주에서 잠깐 멈춤과 숨 고르기를 하게 된다. 일 년 내내 이 핑계 저 구실로 구석박이가 된 주위를 돌아본다.


아귀를 꼭 묶지 않은 곡식자루처럼 미완으로 던져진 일거리들, 깔끔하게 매듭짓지 못한 인사교류관계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마음만 초조하고 바빠진다.

이것들을 언제 다 정리정돈 할 것인가. 종종걸음 치지만 계절은 오히려 더 많은 행사, 대외활동으로 몰아붙여서 나를 잊을 지경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리저리 흐르다 나동그라진 조약돌처럼 망연한 상실감에 젖어 있었는데 순전히 시간계수법의 차이가 온 몸에 활기를 넘치게 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누카’나 아랍의 ‘라마단’ 축제처럼 시간의 잣대보다 민족적인 전통의식이 더 앞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 한이 없었다. 


문득 연이어 따라 나온 사실 하나가 환희로 펄쩍 뛰게 하였다. 설날! 아직도 한 달, 한 해를 통째로 다시 얻은 듯 기쁨이 전율을 일으키며 온 몸에 흘렀다. 나 스스로 시간의 주인이 되어 차분히 새해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설날을 언제부터 지켜왔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중국사서에 ‘신라 때 정월 초하루가 되면 왕이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에서 상당히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 1895년에 양력이 채택되면서 구정으로 밀려 빛이 바랬다가 1985년 ‘민속의 날’로 제정되어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 


‘설’의 어원에 대해서도 한 살-설, 장이 선 다의 선-설이란 여러 학설이 있으나 대체로 새해 새날이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왔다고 유추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달력을 펴 놓고 들여다본다.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부족에는 ‘없어져서 좋은 날’(Good Riddance Day)이라는 축제가 있다 한다. 지난해의 불쾌하고 당혹스러웠던 기억이나 사건들을 일일이 종이에 기록해서 강력한 분쇄기에 던져 종이가루로 만들거나, ‘없어져서 좋은 것’들을 망치로 부셔버린다는 것이다. 


우선 지난 고통을 비우는 작업에서부터 시작 하여야겠다. 좋은 일들은 추리고 가다듬어서 일 년 365일 8760시간을 새롭게 채울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다. 


오랜 시간 민초들의 삶 속에서 용해되고 숙성되어 지켜온 신토불이의 새해 첫날 ‘설날’의 미풍양속을 고스란히 이민 자녀들에게 전해주는 조상세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세찬, 세배, 덕담의 설 풍경을 그리다가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였다. ‘묵은세배’와 세뱃돈에 관한 한국 예지원의 추천이었다. 자녀들이 섣달 그믐날 부모님께 한 해 동안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하다는 세배를 드린다고 한다. 이때 빳빳한 신권으로 세뱃돈을 드리면 다음날 세뱃돈으로 자연스럽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세뱃돈은 받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얼마나 사려 깊고 애정이 넘치는 풍습인지 고개가 숙여진다.


아침 걷기를 하는데 매일 도서관에서 만나는 외국인 친구 하나가 아는 체를 한다. 차이니스 뉴이어(Chinese New Year)? 아니 우리 설날이야. (No. Korean Sulnal)! 


 인생은 짧게도 길게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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