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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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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변경선 동과 서(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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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새삼스럽게 믿음과 신뢰가 다져지면서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수 있을 용기가 솟아올랐다. 


‘현’을 살짝 들어내서 흠뻑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안전핀을 꽂고 비닐팬티를 입히고, 바지를 올린 후 아빠 쪽으로 살짝 밀어 눕히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힘을 내요. 우리’ 속으로 다짐하며 살며시 문을 닫고 돌아섰다. 

 

체질의 분해, 합성 개선


 “세탁기를 하나 새로 사야겠어.”


‘현’이 출생 할 때 허둥지둥 사온 중고 세탁기는 한 달이 못 가서 고장이 났다. 어느 날, 세탁기를 가동한 후 물이 차는 것을 보고 올라왔다. 한 시간쯤 후에 내려가 빨래를 꺼내보니 비누거품이 묻어 있는 채 물만 빠져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가동하고 곁에서 지켜보았다. 물이 다 찬 세탁기는 덜컹~ 하더니 부웅~ 소리만 내고 움직이지 않았다. 10여분 정도 지나자 위잉~ 하면서 물이 빠지는 것이었다. 빨랫감을 비누와 함께 물에 담갔다가 그냥 꺼낸 형국이었다.


그 후로는 지켜 서 있다가 물이 차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몇 번 휘~ 휘 저어서 물을 빼고 다시 물 채우기부터 시동을 걸어 물 빼기 과정까지를 두어 번 반복한 뒤 줄에 널어 말렸다. 일일이 손으로 빨래를 짜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다며 견디는 중이었다. 


“세탁기도 사고 야전용 콧트(Cot 간이침대)라도 하나 사요. 맨바닥에서 어떻게…”


“콧 트는 해서 뭐해. 카펫위에 슬리핑백만 깔아도 푹신해서 괜찮아. 세탁기는 내가 시간을 좀 벌려고 하는 거지. 급한 것부터 사기로 하자구.”


큰돈을 주고 산 두 번째 가구가 지하실 한 귀퉁이 세탁실에 놓이게 되었다. 첫 번째는 지난 5월에 산 14인치 포터불 텔레비전이다. 만화시간만 되면 그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영’의 눈을 보호해 주기 위한 조치였다.


 “우리도 이젠 부자야. 안 그래? 전화, 냉장고, TV, 세탁기 다 있잖아.”


세탁기를 들여오던 날 아빠는 이렇게 농담을 하며 웃었다. 겉으로는 명랑을 가장하지만 실상은 날이 갈수록 우울해지는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몸이 무거워 짐에 따라 점점 더 상해가는 ‘숙’의 얼굴. 아무렇게나 하나로 잡아 맨 머리.


결혼한 몸으로 대학원을 마치던 원대한 꿈에의 불길은 볼 수가 없었다. 상대를 감동시키던 목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여대생들이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던 우아하고 교양미 풍기던 엄숙한 표정은 찾을 길 없었다. 있다면, 철두철미한 의지만이 토끼같이 큰 눈에 비칠 뿐이었다. 


 나 때문이다. 꿈이 있고, 이상이 있고, 다정다감하던 ‘숙’을 그 길에서 끌어내려 더 할 수 없는 비참한 나락으로 밀어 던진 것은 나 때문이라는 죄의식이 가슴 아프게 짓눌렀다. 


스스로도 뼈저리게 슬퍼하는 것일까. 쉴새 없이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다.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알 수 없는 노래들이 한 곡에서 다른 노래로 이어지면서 계속되었다. 노랫소리는 떠도는 잡음을 지워버리려는 듯 일부러 더 크게 목청을 높여서 불렀다.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구슬픈 노래를 부른다는 어느 새의 단장의 소리를 지울 수가 없었다. 


 미국. 가기만 하면 삶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돌변해 버리기라도 할 듯 그리던 이곳 미국에 온지 일 년 남짓의 시간, 가냘픈 몸엔 너무도 무겁고 큰일들이 수없이 겹쳐서 휘둘러댔다. 


오자마자 ‘현’의 출생, 뒤따른 어머니의 시한선고, 지금은 ‘숙’을 한 번 더 보려는 희망으로 방사선치료를 받으며 버티시지만 남은 시간이 급속도로 줄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한 달 사이에 여동생 둘을 부랴부랴 서둘러 결혼시킨 것을 보면 가족들도 이제 마지막을 대비하는 듯하였다. 


 불편스러운 몸놀림으로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닥터 ‘황’이나 ‘정’댁에서 놀러 오라고 아무리 초청을 해도 ‘영’을 데리고 혼자 다녀오라고 하였다. 공부를 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그들 앞에 서면 더욱 초라해지는 자신의 자격지심 때문일 것이라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럴수록 아빠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그 위에 또 큰 불행이 온다면 ‘숙’보다 자신이 더 먼저 큰 죄책감으로 무너져버리고 말 것 같았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제발 어머님의 마지막 소식은 순산한 다음 이기를 빌어 마지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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