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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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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변경선 동과 서(43)-아빠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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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날아 온 소식


이곳 겨울 중 제일 추운 때라는 1월인데도 그날은 유난히 화사한 햇볕이 내려 쪼였다. 소금을 뿌린 차도는 녹아서 질퍽거리고 눈이 녹은 보도 위에 참새 떼들이 톡 톡 튕기듯 몰려다니며 재잘거리는 게 설마 이대로 봄이 오려나… 별스럽게 따뜻하고 화창하였다. 


 날씨가 좋으니 엄마와 애들을 전부 태워서 드라이브나 시켜주어야겠다 마음먹고 조금 일찍 귀가하였다. 온 동네 꼬마들이 다 밖에서 노는데 ‘영’이 보이지 않았다. 또 집안에서 엄마 속을 꽤나 썩이고 있겠구나. 빙긋 웃으며 문을 열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채 '현‘을 안고 있는 옆에 눈만 휘둥그런 ‘영’이 쭈그리고 앉아 엄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새 슬픔이 솟는 듯 금새 두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흐르더니 흑흑 흐느껴 울었다. 눈물이 ‘현’의 얼굴에 이마에 사정없이 떨어지는데 엄마 품에 안긴 것만 좋은지 아빠를 보자 ‘현’은 발버둥까지 치며 까룩 거렸다.


 “왜 그래”


 온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듯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아빠가 나빠. 어떻게 해서 엄마가 울고 또 울고 자꾸 울었어. 아 앙.” 


 ‘영’이 아빠의 가슴을 두 주먹으로 두드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 이제 세 돌이 막 지난 어린 것이 제 딴에 얼마나 걱정이 되고 답답했으면… 울컥 뭉클한 것이 속에서 치받혀서 그대로 덥석 가슴에 안았다.


“무슨 일이야?” 주위를 둘러보다가 전화기 옆에 지저분하게 얼룩진 국제편지를 보았다. 


 이모 ‘옥’에게서 온 편지였다. 


“언니 어머니는 지난 8일에 수술을 하셨어. 그런데 정작 해야 할 수술은 너무 때가 지나서 못하고 말았어. 암이 사방으로 퍼져서 어쩔 수 없다고 그대로 봉해버린 거야. 아버님은 걱정이 된다고 언니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셨어. ”


“하지만 언니. 혹시 의학이 고도로 발달된 미국이니 어머니를 고칠 수 있는 약은 없을까. 한없이 어질고 선하신 어머님인데 정말 그렇게 되실 수가 없어. 오늘은 마음이 바빠서 이만 줄여야겠어.”


의사가 아니더라도 한눈에 훤히 알 수 있었다. 무거운 쇠망치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망연하였다. 약으로 못하는 것을 수술로 떼어내는데 수술해서 안 되는 것을 약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약이 전 인류의 숙원인 걸 모를리 없는 ‘옥’이 의사형부께 애처롭게 호소한다 싶어 그만 코끝이 시큰해 졌다. 


그렇게 늦도록 그걸 몰랐을까. 속수무책으로 답답하다 못해 그토록 자신을 돌보지 않으신 장모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내가 떠나오기 전에만 알았어도 나았을 걸. 


아무리 억울해 해봐도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인륜대사인데 달리 위로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얼떨결에 당하고 마는 것일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인생무상의 고난이 아무 준비도 없는 시점에 너무 빨리 몰아 닥치고 있었다. 남의 일 같이만 보아오던 숱한 환자들의 고통이 새삼스레 생생하게 재생하듯 온몸을 옥죄었다. 


 까르륵, 까르륵 ‘현’이 철없이 웃어댄다. 언젠가는 나도 이 애들에게 이런 슬픔을 주어야 하겠지… 가슴이 쓰려왔다. ‘영’을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며 깊은 한숨을 푸우 내어 쉬었다.


“고만 울어. 운다고 될 일도 아닌데. 뭐 할 일이 없을까.”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우선 돈이 필요할 텐데 200달러를 송금하도록 하지.”


후딱 제 정신이 든 듯 고개를 들었다. 벌겋게 부은 눈에 놀란 빛이 하나 가득하다. 큰 눈. 놀랄 때는 닫혔던 창문이 활짝 열리듯, 보는 사람을 더 깜짝 놀라게 하는 그 눈은 지금 젖어서 빨갛게 충혈까지 된 게 꼭 놀란 토끼의 눈이었다. 


양순하기만 한, 남을 해칠 줄 모르고 여리기만 한 그 작은 동물, 실험실에 떠다니는 한 톨 먼지에도 바르르 떠는 듯 순백색의 털과 긴 귀를 볼 때마다 가련하리만치 연약하던 느낌이 순간 연민의 정이 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흐 흑”


눈물이 없는데도 느끼는 ‘숙’을 보자 ‘어이. 이. ’ 다음 말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200불밖에 없는데. 돈이야 얼마든지 필요하겠지만 백불이고 이백불이고 그게 지금 어머니께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몸의 건강에 비하면 1불만도 못한 걸.” 컥 컥 슬픔을 삼키며 또 느껴 울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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