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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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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과 서(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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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나 잠깐 학교에 다녀올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벌떡 일어나더니 지하실 차고로 내려갔다. 애들 둘을 다 씻겨서 재운 뒤까지도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이븐데 이 밤중에 학교는...” 


슬금슬금 걱정이 밀려와서 안절부절 서성이는데 차고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아빠 손엔 커다란 선물 봉투가 들려 있었다. 까만 구슬 눈이 예쁜 봉제 판다 곰과 애기 몸통만큼 큰 주황색 봉제 사자가 들어 있었다. 


한 팔에 안을 수 있는 판다 곰은 뱃속에 작은 노래상자가 들어 있어서 등에 있는 태엽을 감아주면 계속해서 즐거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자의 불룩한 배를 꾹꾹 누르면 빽 빽 소리가 나고 파르르 바람개비 돌아가는 소리를 내면서 두 눈이 뱅글뱅글 돌았다.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지.”


며칠 전에 주임교수에게 성탄카드를 보내려고 연구원들이 추념을 하였다. 아빠도 5달러를 내기로 했는데 대표학생이 선불하고 휴가를 가버려서 책상 속에 보관하고 있었다. 일식 집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그 5달러를 꺼내가지고 문 닫기 전에 장난감 가게를 찾느라 허둥지둥 돌아다녔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게 얼마에요?” 


“두 개가 5달러라고 해서 들고 있던 돈 다 주었지.”


 그제야 장난감에 가격표가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잔뜩 쌓인 장난감들을 보니 어지러워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카운터에 5달러를 놓고 장난감 두 개를 골라달라고 하였단다. 


“몇 살이지요?”


“2달, 2살. 남자아이들에요.”


상냥한 할머니점원이 포장해 주면서 ‘메리 크리스마스’ 하였다.


‘메리크리스마스’ 복 많이 받으세요... 


송구영신. 그믐날이 되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밤잠을 쫓던 고향에서의 그믐날. 그 밤엔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둘러앉아 재잘거리던 동생들이 있었다.


시종 곁에서 수다를 들어주시던 부모님의 인자한 미소가 떠오른다. 따뜻하고 즐겁고 아늑하던 그믐날. 그런 날은 이제 내 생애에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세월은 내 얼굴에 그 발자취를 남겨놓고 마음 한 복판에 색다른 이정표를 세워줄 것이다. 새로운 세계로 화려한 꿈을 간직하고 떠나온 이래 예기치 않았던 많은 난관들이 닥쳐왔지만 그 때마다 큰 탈 없이 비켜갈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였다. 


일 년 중에 가장 번화하고 흥청거리고 활기가 넘친다는 여기 미국에서 딱딱한 식탁에 단돈 2달러를 놓고 보내는 송구영신의 밤은 돈 만큼이나 초라하고 가슴 저미는 외로움이었다.


부모님의 요람을 떠나 이제 오직 ‘훈’과 자신만을 의지해서 이끌어가야 할 새로운 삶에의 다짐이 자꾸만 서러워지는 것은, 아이는 어른의 축소가 아니라 거꾸로 아이의 축소가 어른인양 무작정 어머니께로만 달음질치는 마음의 소용돌이를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글세… 엄마. 미국이라고 가보았더니… 어쩌고 저쩌고…’ 그렇게 재잘거릴 날은 언제일까. 그 때까지 모두들 건강만 하였으면. 두 손 마주 움켜잡고 빌고 또 빌었다. 1967년은 그렇게 떠나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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