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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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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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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4. 첫눈 


 미국시민 ‘현영’


“좀 어떻습니까?” 흰 가운을 걸치고 한 손에 차트를 든 닥터 ‘패터슨’이 함빡 웃으며 들어섰다. 


 도끼대가리라고 하던가? 문어대가리라고 하던가? 이마가 넓고 턱이 뾰족하니 좁은데다 웃을 땐 입 가장자리가 조글조글 주름을 안으로 접으며 오물아 드는데 굵게 주름살이 가로지른 이마가 이고 있는 머리는 또 훌떡 대머리여서 닥터 ‘패터슨’을 볼 때마다 쿡 쿡 웃음을 삼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네. 아주 좋아요.”


“굳.”


 닥터 ‘패터슨’은 차트를 몇 장 펄럭 펄럭 넘겨보면서 변을 잘 보느냐, 소변은 어떠냐. 몇 마디 묻더니 많이 먹고 많이 쉬라고 이르고는 병실을 나갔다. 성큼성큼 걷는 대로 펄럭이는 가운자락에서 찬바람이라도 이는 듯 어깨를 움츠리고 다시 이불깃을 끌어 올렸다. 


 어제 점심에 샌드위치 한 조각 먹고 내내 굶었으니 배가 출출해 그러지 안아도 휘청거리는데 일어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닥터 ‘나이스원더’를 찾은 것이 지난 월요일이었는데 일요일인 어제 갑자기 해산을 하였다.


 갓난애를 가지면 아무래도 세탁기는 꼭 필요하다며 신문광고를 잘라 가지고 온 닥터 ‘황’댁과 함께 토요일은 종일 세탁기를 보러 다니느라 피곤하고 지쳐있었다.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어 닥터 ‘나이스원더’에게 전화를 했더니 마침 비행장에 가서 부재중이라며 닥터 ‘패터슨’이 대신 보자고 하였다.


 차가 없으니까 ‘웨슬리’를 불러서 함께 병원에 도착한 것이 아침 10시경이었다.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으니 오늘 밤이나 내일 새벽쯤 다시 오는 게 좋겠다고 돌려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가늠해보니 아무래도 그보다는 더 급할듯하여 ‘웨슬리’한테 집에서 좀 대기하고 있으라고 부탁하였다. 


 “오케이.” ‘웨슬리’는 순순히 응낙하고 돌아갔다. 통증은 점점 더 심해져서 걷기는 고사하고 허리를 펼수 없게 아팠다. 이를 악문 채 쭈그리고 앉아있는 ‘숙’에게 샌드위치 한 쪽을 강제로 먹이다시피 하고는 이내 ‘웨슬리’를 불렀다. 


 “헬로. ‘웨슬리’ 아무래도 도로 가야겠어. 차라리 병원에서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아.” 병원까지 가려면 40여분을 복잡한 시내를 돌아나가야 하는데 차도 없이 언제 일을 당할지 모르니 입원을 미리 시키겠다고 하였다.

환자용 의자에 앉는 것을 본 ‘영’이 놀라서 와-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할 수 없이 웨슬리’가 의자를 밀고 올라가 입원수속을 해 주었다. 


 통증은 극에 달하는 듯 했다. 침대모서리를 붙잡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옆방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미국여인들의 신음소리가 병원이 떠나갈 듯 시끄러웠다.


 “오오. 찰스. 차알 스.” “빌 리”  


 한국에서 입원했을 때 옆방 여인들은 하나같이 엄마를 불러댔다. “엄마. 엄마 아~.” 참고 억누르다 잇새로 비어져 나오는 절규였는데 여기선 웬 애들 이름을 저렇게 부를까? 훨씬 후에야 그것이 남편이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배를 잡고 웃었다. 


 가정구성의 고통과 책임은 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핵 가정의 개인주의와 조상대대로 이어지는 가계계승 의무에 충실하려는 씨족중심민족의 인식차이를 이때 산실에서 뚜렷이 보았다. 


 여자의 존재가치가 씨앗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싹을 내고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문화사회의 한 기둥임을 선명하게 확인시켜주었다. 


 얼굴만 새빨개져서 아픈 것을 참느라 쩔쩔매는 것을 본 간호사가 겁이 더럭 났나보았다. 후딱 후딱 검사를 마치더니 곧바로 분만실로 끌고 갔다.


 “하이 미시스‘쏭’ 이렇게 빨리 왔습니까?” 웃음을 함빡 머금은 문어머리에 전등 빛이 반짝반짝 반사되고 있었다. 아픈 중에도 그만 저도 모르게 쿡,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마취제를 맞고 나니 세상에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고통으로 온 몸이 뒤틀렸는데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통증이 스르르 사라져 버리면서 온갖 소음마저 쓸어갔다. 


 “오! 디 어. 보이!” 닥터 ‘패터슨의 소리가 어렴풋했는데 “미시스 ‘쏭’ 4시15분에 보이를 낳았습니다.” 분만실 확성기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빠후보들이 안절부절 서성거리는 대기실에서 환호소리가 터지고 ‘훈’과 ‘웨슬리’는 깜짝 놀랐다. 벌써? 그렇게 쉽게? 진통을 보지 못한 ‘웨슬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회복실에 잠깐 들른 ‘훈’이 ‘영’을 데리고 돌아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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