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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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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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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시집가는 딸에게 자상한 친정어머니가 살림일체를 장만해 주듯 정말 모두가 하나같이 당장 필요한 것들로만 차곡차곡 챙긴 것이 너무 너무 기쁘고 감사하고 놀라울 뿐이었다. 


 한 개씩도 아니고 몇 개씩 뭉텅뭉텅 집어넣어 준 것을 보니 그저 목이 메도록 감격스럽기만 하였다. “차츰 보면 알겠지만 미국은 모든 면에서 스케일이 큽니다.” 닥터 ‘라 안’의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과연 그들은 스케일이 큰 민족이었다. 주는데도 큼직큼직한 그들의 마음이 이처럼 풍요로운 축복을 받은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 같이 생각되었다. 


 우선 침대의 박스스프링에다 매트리스 카버를 씌우고 이불보를 깐 위에 담요를 펴고 이불잇 단을 접은 후에 다른 담요 한 장을 침대카버처럼 베게 끝까지 푹 덮어 놓으니 그런대로 근사해 보였다. 


 ‘영’을 찬마루 위에 세워 놓고 그릇들을 하나씩 받아서 높은 찬장에 올려놓게 하고 냄비들은 찬마루 밑장 속에 집어넣었다.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고 이마에는 구슬땀이 방울방울 떨어지는데도 환한 생기가 온 몸에서 솟는 듯 했다.


 ‘지~잉~’


 어데서 나는 소리인지 몰라 잠시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다시 문에서 노크소리가 났다. 아, 초인종 소리. 부리나케 달려가 문을 열었다. 


 “하이! ‘낸 시’, ‘게일’” 


 “하이 ‘제프리’” 오래간만에 형제를 만난 듯 소리치며 반가워했다.


 “우리 앞집, 수영 풀 있는 집 알지요? 그이가 이걸 주기에 가져 온 길이에요.”


 ‘게일’은 식탁과 빛이 약간 바랜 네 개의 의자들을 낑낑거리며 들여놓더니 다음엔 응접실 의자 하나 들여다 놓고 덮개를 씌웠다. 


 “닥터 ‘쏭’은 어디 갔습니까?” ‘게일’이 이마의 땀을 팔뚝으로 쓱쓱 문지르며 물었다. 


 “미스 ‘다스튼’하고 학교에 갔어요.”


 “하, 그 할머니가 벌써 여기에 왔었다고요?”


 아마도 학교에서는 무척 까다롭고 완고한 비서인 모양이었다. 


 “우리가 지금 학교에 들러서 ‘쏭’하고 같이 올 테니까 장보러 갈 준비하고 계세요.” 


 ‘게일’이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마미. 나 ‘태요옹’하고 여기서 놀고 있음 안 돼?” ‘제프리’가 ‘영’을 붙들고 서서 갈 생각을 안 하였다. 


 “그렇게 하세요. 곧 올 텐데.” ‘숙’이 ‘제프리’의 편을 들자 “그래도 괜찮을까요. 피곤하고 힘드실 텐데.” 할 수없이 그들 내외는 ‘제프리’를 남겨두고 미안해하며 떠났다. 


 ‘훈’과 ‘게일’네가 돌아온 것은 네 시가 훨씬 지나서였다.


 쇼핑센터에 내려준 ‘게일’은 오늘 쯤 어머니가 집에 들를지 모르니까 장보기가 끝날 때쯤 다시 오겠다고 하였다. 쇼핑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그 먼 거리를 다시 오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 오늘은 한번 걸어가 볼 테니까 오지 말라고 만류하였다. ‘낸시’는 ‘수지’ 때문에 안 된다고 펄쩍뛰며 우겼지만 ‘훈’도 지지 않고 기어이 돌려보냈다. 


 “식료품 봉투를 들고 여기서 집까지 어떻게 걸어가요?” 걱정이 앞섰다.


 “아 한국에선 요만한 거리만 걸었나. 아현동에서 광화문까지도 걸어서 학교를 다녔는데 뭘 그래. 너무 ‘게일’네에 미안하니까 오늘은 운동삼아 좀 걸어 봐. 짐은 내가 들고 갈 테니까.”


 ‘숙’이 종일 집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만치 학교에서의 ‘훈’의 일과도 무척 바빴었나 보았다. 차가 없으니까 종일 ‘게일’이 이곳저곳을 안내하였다고 한다. 큰소리치며 앞에서 성큼성큼 걷는 ‘훈’을 따라가려니 난감하였다.

 

‘낸시’가 그렇게 우길 때 못이기는 체 받을 것이지 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것 같아 야속한 생각마저 들었다. 


 8월말의 뜨거운 햇살이 눈이 부시고 파킹장을 가로질러 가는데도 벌써 땀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뿌루퉁하니 걸어가는 옆에서 ‘영’만 깡총거리며 좋아 하였다.


 “아이 구, 닥터‘송’ 아니에요? 미시스‘송’은 언제 오셨어요?” 갑자기 옆에 주차해놓은 자동차들 틈에서 맑은 한국어의 반가운 말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휙 돌려 보았다. 너 댓살 되어 보이는 여자애 하나를 데리고 30대 초반에 들었음직한 한국 여성이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차 뒤 트렁크에 식료품봉투를 싣고 있던 남자가 허리를 펴고 돌아보더니 “어. 닥터 ‘송’” 얼굴가득 미소를 띠고 걸어왔다. 


 “아. 닥터 ‘황’이시군요. 우리와이프 한 이주 전에 도착했는데, 어제 밤에서야 이 근방에 아파트를 구해서 이사하고 지금 식료품 좀 사려고 나왔어요.


 “그럼 갈 때는 어떻게 가기로 했어요?” 자상한 형님같이 물었다. 


 “걸어가야지요. 뭐, 별 수 있어요.” ‘훈’이 코를 찡긋하며 대답하자 “우리 차타고 가세요. 우리가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장 봐가지고 이리로 오세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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