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hokim
김종호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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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웃 빌(B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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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가 “제 잘난 멋”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것은 자기가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하는 데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남에게 혐오감을 줄 뿐 아니라,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많은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 그것은 참다운 자애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다운 자애심이란 자기만을 생각하고 자기밖에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중히 생각하는 그만큼 이웃에 대해서도 존중하고, 그 사람이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는 그만큼,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인격을 존중하는 것을 뜻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의 일만을 생각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운명에 놓여있다. 아무도 자기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무인도에 가서 혼자서 살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 이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인식해야 한다. 그 소중함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자애심이다.


 내가 소중한 인간인 것처럼 이웃도 역시 소중한 사람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듯이, 이웃도 이웃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모여 사는 캐나다의 복합문화 사회에서는 각 종족간에 상호 타문화를 존중하고 공통분모를 찾아 조화를 이루어 가는 사회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소수이긴 하지만 이렇게도 살기가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우리집 건너 편에는 50년 대에 그리스의 북부 지방 마케도니아(Macedonia)에서 이주해 온 빌(Bill)이 살고 있다. 만나면 그는 연세도 들고 아는 것이 많아 우리 동네 터주대감답게 입담이 좋아 옛이야기 끝간 데를 모르거니와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 동네 아무개네 집 내력까지 뚜르르 꿰고 있다. 


인종이 다르고 성이 다르고 사는 형편이 달라도 어느 집에는 몇 사람이 살고 있으며, 아들 딸이 몇이며, 무엇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건강상태는 물론이려니와 언제 이곳으로 이사해 온 것까지 그 집의 내력을 줄줄 외운다. 이런 소리에는 어떤 감정의 억양도 들어 있지 않다. 무정해서 인가? 아니다. 정에 정을 더한 세월을 오래 산 체념이 만든 평상심인 것이다.


 그는 특별한 취미나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러니 집을 가꾸는 일밖에 다른 소일거리가 없고 동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제일 먼저 알게 된다. 나같은 보통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번 깎는 잔디를 그는 이틀에 한번씩 깎으니 일주일에 세 번 깎는 셈이다. 정원수와 꽃밭은 매일 관리하여 잘 정돈되어 있고, 낙엽이 잔디 위에 떨어지면 곧바로 치워버려 깨끗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그런 Bill에게도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다름아닌 그의 집 이웃에 중국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이웃과 오고 가는 말이 없으며 길거리에서 서로 마주쳐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잔디밭을 가꾸지도 않으며 깎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가로수의 낙엽이 쌓여도 치우지 않으며 바람이 불면 낙엽이 모두 자기집으로 몰려온다는 것이다. 이웃에 대한 예의나 존경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로 들린다. 만날 때마다 그는 이웃에 대한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는 경험을 통해 중국인의 성격을 조금은 알고 있기에 이해한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이 60만이 넘는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몇몇 사람 때문에 무더기로 중국인들이 욕을 듣는 것일 게다. 중국식당에는 어디가나 비좁은 공간에서 인산인해 가운데 각축하는 중국인의 모습이다. 그만큼 중국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게다. 


14억이 넘는 인구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다 보니 “나만 살고 보자”는 본능적인 이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고질병처럼 굳어진 그들의 무질서 속에서 꽤 오래 생활한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사람 수가 많다보니 시끄럽고, 무례하고, 추태를 보이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을 볼 확률에 비해 높은 편이다.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중국인들에게 까닭 모를 측은지심이 솟아난다. 어느 누가 말했던가 사람들은 무질서를 즐겨야 중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요즘 세상은 너무나도 인정이 메마르고 있다. 서로 돕고 사는 삶, 서로 봉사해 주는 삶, 그러나 그것은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절감할 때 가능한 일이다. 사람이 서로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중대한 일인가. 70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서 지금 여기에서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인연이겠는가.


 공자는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시키기 위해 “내가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고 했다. Bill의 이웃은 항상 자신의 행복과 안일만을 생각하고, 이웃도 같은 인간으로서 안일과 행복을 원한다는 간단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얕은 마음으로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내가 존경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이웃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존경하면 언젠가는 그들도 깨달을 것이다.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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