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hokim
김종호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www.budongsancanada.com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38 전체: 223,985 )
박꽃의 추억
jonghokim

 
  

 계절의 바뀜은 자연의 섭리, 그러나 한결같이 신묘하기만 한 것은 그 자연의 순리가 신비하고 엄청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변모해 가는 것인지 짐작조차 어려운 불가사의한 자연, 다만 눈앞에 펼쳐지는 조화에 감탄하다가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옆집 울타리에 하얀 박꽃이 피었다. 같은 박과에 속하지만 노란 꽃을 피우는 박이면 호박이요, 흰 꽃을 피우면 그냥 박인데, 옛날에는 익어서 먹기도 하고 유용하게 쓰이는 바가지가 된다. 

 

 

 

 


우리 집 텃밭에는 마보훈 장로님으로부터 얻어온 호박 모종 한 포기를 심었는데 별로 손이 가지 않아도 잘 자라서 열매도 많이 달렸다. 호박 덩굴은 하루가 다르게 크게 자라나 그 옆에 자라고 있는 마늘 밭 자리마저도 위협할 정도가 되어 신기했다. 


호박꽃은 순수한 노란색으로 손바닥만하게 크고 꿀이 엄청 많아 벌과 나비들이 드나들어 꽃도 활짝 피고 열매도 잘 열렸다. 사람들 중에는 못난 사람들을 비하할 때 호박꽃 같다고 말을 한다. 이 순수한 꽃을 가지고 “호박꽃도 꽃인가”라고 박대하기도 한다. 어째서 이런 말이 생겼는지 짐작이 안 간다. 호박꽃이 아침햇살을 받으며 이슬을 흠뻑 머금고 함초롬히 피어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봄부터 피는 호박꽃이 여름의 끝자락을 지나서 바람이 살랑거리는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호박꽃은 어느 때보다 절정을 이룬다. 지금까지 호박꽃이 못생긴 여자를 비유하는데 사용되곤 하는데 이것은 호박꽃에 대한 커다란 실례다. 특히 남성들이 주의해야 할 일이다.


호박덩굴 아래 핀 호박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풍성하고 참 곱다는 생각이 들고 못생겼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호박꽃은 노란색이다. 새벽에 활짝 피웠다가 해가 지면 수줍게 오므라든다. 지난 주말 보니 그 동안 피고 졌던 호박꽃 덩굴에서 동그란 호박 열매들이 자라고 있었다. 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다하기 전에 우리는 6개의 둥근 청 호박을 수확할 수 있었다. 


여름 밤은 박꽃을 떠오르게 한다. 박이란 식물은 옛날에는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식물이었다. 박꽃을 보노라면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집집마다 박이 열리고 박은 속을 파서 된장에다 무쳐먹기도 하고 딱딱한 껍데기는 말려서 우물 바가지로 썼다. 


어릴 적 초가 지붕 위에 주렁주렁 달려 있던 그 박이 옆집 중국할머니 집 뒤뜰의 울타리 사철나무 위에 덩실 열려있는 박이다. 커다란 박을 본지는 정말 오래 전의 일이다. 무성하게 올라간 줄기와 박 잎이라든지 박이 주렁주렁 열려서 늦여름의 풍경을 돕는다.


오늘은 절기상 백로, 이렇게 길고 큼지막한 박이 달려 있는 것을 보면 많은 것을 느낀다. 마음의 고향 같은 푸근함이 보인다. 하얀 박꽃은 해질 무렵에 수줍게 피어나는데 달빛 아래 낮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다. 돌담과 초가지붕 위에 하얀 박꽃이 핀 모습이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스름 녘에 보는 박꽃은 새색시 같이 예쁜 여자 같다고 했다. 


철부지 시절에 내가 살던 시골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토담 위에 그 어느 한해도 박꽃이 피지 않은 해가 없었다. 어릴 적에 시골의 초가집 아래채 지붕에 박이 열리는 것을 수없이 보았는데, 초가지붕 위에서 넝쿨을 뻗어가며 흰 꽃을 피우다가 희디 흰 둥근 박이 매달려야 하는데 옆집 중국할머니 집 울타리에 길다란 박이 수없이 달려 여물어 간다. 


어릴 적에 본 박은 우리 한국인의 고운 마음씨를 닮아서 둥글고 흰데, 중국할머니의 박은 종류가 달라서 그런지, 아니면 대륙의 거친 기질을 닮아 길다랗게 뻗어 바가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식용으로만 쓰는 모양이다.


우리 조상들은 공해가 없는 박을 따서 말려 천연 그릇으로 사용했는데 세월이 흘러 그 자리마저도 빼앗겨 버린 애잔한 추억이 있다. 아직도 동화 속의 그림 같은 풍경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여름 달밤에 초가지붕에 활짝 피어 달빛을 흠뻑 받고 있던 박꽃의 모습이 생각날 때마다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세월이 몇 십 년이 흘렀다. 생생한 추억도, 초가지붕 위의 박꽃도 자취를 감추었는데 어찌하여 이곳 북미에서 박꽃을 보는가. 영어 한마디 못 알아 듣는 옆집 중국할머니의 미소는 세상 모든 것을 다 말해준다. 


달빛 속에 피워내던 시리도록 맑은 박꽃의 소박함은 깨끗하다 못해 처절하지 않았던가. 지금도 그 자태는 살아 지난날의 정취에 흠뻑 젖게 만든다. (2018.09)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