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hokim
김종호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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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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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무엇일까? 세상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말이 사랑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럼 사랑이란 말의 뜻이 무엇일까? 물론 사랑이란 말이 형이상학적인 말이어서 정의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현대 국어사전에는 사랑은 “아끼고 위하는 따뜻한 인정을 베푸는 일, 또는 그 마음”이라고 쓰여 있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이다. 행복과 즐거움의 근원은 사랑이며 동시에 사랑은 만물을 생성 변화시키는 힘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하여 따뜻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사랑은 인생의 흐뭇한 향기이자 우리의 인생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인생의 따뜻한 햇볕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이웃간에 흐뭇하고 아름다운 정을 나누고 산다. 그 고운 정 속에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 이러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희망과 용기와 기대를 가지고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모든 사랑의 기초는 자기애로부터 출발한다고 한다. 이는 의욕과 의지, 긍지와 자부심, 책임과 희생 등이 모두 자기애로부터 나오며 또 자기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만이 타인도 사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일생을 통해 많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


수 많은 관계 중에서 사랑으로 맺어지는 관계는 그들의 생활 속에 생명을 불러 일으키는 힘을 갖는다. 따라서 사랑은 진실한 생명적인 인간관계를 획득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생명적인 관계를 획득하려는 목적은 무엇일까. 


오늘날 수많은 소설이나 드라마와 영화의 보편적인 주제로 청춘남녀의 사랑의 내용을 다루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아 흥미롭다. 어찌 보면 세상은 온통 사랑의 문제로 들끓고 있는 것만 같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한 일이 있는 사람이면, 그것이 얼마나 뜨거운 삶이고 충만한 기쁨인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 역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을 때 이 세상은 온통 찬란한 무지개 빛깔로 변해버리고 만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무한히 축복해 주고 싶은 강렬한 기쁨으로 충만해 버리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소유물이 아닌 오직 추상 개념이기 때문에 소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사랑은 그 대상의 행복과 성장과 자유를 간절히 바라는 적극적인 노력이며 내재적인 연관이라고 그는 말한다. 에리히 프롬이 정의하는 총체적 사랑에는 신적인 사랑인 아가페(Agape), 친구와 동료간의 사랑인 필리아(Pilia), 남녀간의 사랑인 에로스(Eros)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사랑이라 하면 남녀간의 에로스적인 사랑을 쉽게 떠올린다. 


아무리 부모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강렬하고 겨레나 사회에 대한 사랑이 깊다 하더라도 이성 간의 사랑처럼 높고 강렬한 연소도를 가지는 것은 없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정은 피어 오르는 감정이기보다는 차원이 다른 깊은 신념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이성 간의 사랑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감정의 피어 오르는 불꽃에 그들 자신을 사르게 된다. 목이 타 오르는 갈증과 사모, 끓어오르는 감정의 연소와 기대, 끝없는 도취와 황홀, 회의와 불안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을 사르는 것이 이성 간의 사랑이다. 한 남성이 한 여성을, 또는 한 여성이 한 남성을 사랑한다는 이성에 대한 열원과 사모는 인류가 비롯되는 그날부터 누구나 겪어 온 세계이다.


옛 성현들은 사랑을 알아야 인생을 배운다고 했다. 사랑의 본질은 만나려는 힘이다. 먼저 만나려는 사랑의 힘에 의하여 만나고, 이 만남에 의하여 다시 사랑은 창조적 힘을 발휘하는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과 즐거움의 근원은 사랑이다. 


모든 만물의 근본원리와 만물을 지탱하는 힘이 사랑이듯이 인간과 인류역사를 지탱하는 힘도 사랑이다. 인간은 사랑의 힘으로 산다. 살아가는데 빛과 향기를 주고, 기쁨과 보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 곧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행복과 불행의 척도가 된다.


 사랑이 가득한 가정은, 사랑이 있는 사회는 활기차고 생동한다. 반대로 사랑이 없는 가정과 사회는 불행과 슬픔을 느낀다. 그것은 사랑이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우주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며 인류역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사랑을 위하여 기나긴 밤을 밝히며 고된 시련을 겪게 되고, 허다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지고하고도 순수한 감정의 교류와 인간관계를 무엇 때문이라는 공리적인 목적으로써만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비롯되는 그날부터 남녀가 체험한 사랑이라는 감정적인 교섭은 그렇다 하여서 누구나 다 아는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적 구체적인 세계를 의미하는 것일 뿐, 말로서 표현할 수도 배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심오하고도 미묘한 감정 세계는 스스로 경험함으로써 깨달을 도리밖에 없는 영원한 처녀지로서 우리 앞에 가로 놓인 신비의 세계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공유하고 자신보다 상대를 더 많이 생각하고 보살피게 된다. 사랑은 두 인격이 서로를 향한 온전한 헌신을 통해 서로를 결합시키는 힘이다. 그래서 폭넓은 사랑을 해 본 사람이 풍부한 삶을 갖도록 되어 있으며, 사랑의 깊이와 높이를 알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랑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이란 말은 인간의 삶 가운데 잠시도 떼어놓을 수 없는 삶 그 자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간과 인간의 생명적 진실한 관계를 획득하기 위하여, 가슴이 설레는 긴 기다림과 밤을 새우는 무수한 날과 불꽃처럼 타오르는 감정의 불길, 소용돌이치는 불안의 심연을 겪게 된다. 그것들이 사람을 사모한다는 사랑이다. (2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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