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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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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의 산행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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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의 산행 길

 
 

 바람 불고 눈발이 휘날리는 속에 길을 나섰다. 눈이 오면 나그네처럼 갑자기 어디로 나가고 싶은 유혹에 눌린다. 유난히 올해에는 눈이 많이 온다. 


 토론토 시내에서 조금 북쪽지대라 어제도 그제도 함박눈이 내리니 온 세상이 새하얗게 옷을 갈아입었다. 온 천지가 눈꽃 세상이다. 서쪽 휴론 호수에서 다량의 수증기를 빨아올린 눈구름이 몰려와서 이곳 산줄기에 부딪혀서 시시때때로 많은 눈을 뿌려대는 탓이다. 그때마다 주민들에게는 적잖은 피해와 불편을 주지만,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설경을 보여준다. 눈 내리지 않은 날에도 기온이 내려가는 추운 우리 동네의 아침 풍경은 황홀하다. 밤새도록 뒤덮은 안개나 구름 속의 습기가 나뭇가지마다 얼어붙어 눈꽃 못지않게 수정같이 맑고 화려한 상고대(서리꽃)로 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서 자동차로 북쪽으로 가면 20분 거리에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Eldred King Woodlands 산이 있다. 이 산의 방문 최적기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7-9월로 알려져 있으나 겨울철에도 스키와 설경, 하이킹 등 다양한 겨울철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겨울철 이 산의 등산로는 적설량이 많아서 한 폭의 산수화처럼 근사한 설경을 보여준다. 사시사철 언제 찾아가도 좋지만, 특히 눈 내린 날의 설경이 환상적이다.
 

이 숲길을 걷노라면 전나무 특유의 진한 피톤치드향이 머릿속까지 맑게 해준다. 하늘을 찌를 듯 우뚝우뚝 솟은 나무들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지를 늘어뜨리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 때마다 안개 같은 눈보라가 숲의 정적을 깨우곤 한다. 고요하고 태고 같은 이 풍경 속에서 전나무, 적송나무들이 대장부의 기세로 활개를 쭉쭉 뻗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것이 눈에 뜨일 뿐이다. 


 흰옷 갈아입고 미끈하게 도열해 있는 적송나무들은 고개를 한껏 젖힌 채 올려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깊은 산골이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없어 언제 가도 청량하고 고즈넉한 정취는 변함이 없다. 수북한 눈 속에 온 몸을 묻은 계곡의 풍광도 환상처럼 아름답지만 가슴 깊숙한 곳의 속진과 번뇌까지 슬그머니 사라지는 듯하다. 펄펄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꽃송이를 맞으며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펼쳐진 울창한 삼림지대를 자랑하는 능선 지대를 따라 놓인 절경 등산길, 계곡에는 얼음으로 변한 작은 호수가 눈으로 덮여있다. 호수가에는 하나의 긴 통나무가 잘려 있는데 이곳은 산행의 중간지점이라 잘려진 나무등걸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어느 집 귀부인이 만든 간식솜씨를 평하기도 하는 자리다. 


 고요와 정적만 감도는 눈 덮인 산중, 산과 들, 낙엽과 쓰러진 나무도 하얀 눈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새하얀 무명 수건을 머리에 쓰고 흰옷을 입은 새색시를 바라보듯 새하얀 눈으로 옷을 갈아입은 깨끗한 세상을 본다. 하얀 눈은 우리 인간에게 깨끗함과 정직함을 상징하기에 모두가 눈을 좋아한다.


 눈이 오면 마음이 설레고 첫사랑을 기억나게 하여 누군가를 만나 따뜻한 차를 마시고 싶어진다. 그리고 마음이 순수하고 맑아지며 좋은 일이 있는 사람처럼 기분이 들뜨고 감성에 젖어 누구나 시인이 된다. 하얗다는 것은 빛이 있어 환하고 투명하다는 뜻이며 정직하여 거짓이 없음을 의미한다. 흰색은 색깔 중 가장 고고하기에 우리들의 삶에 있어 깨끗한 희망과 소망, 긍정과 기쁨을 상징하기도 한다.


 Eldred King Woodlands 산은 산세는 크지 않지만 평탄하고 자연절경이 산재해 있어서 산행의 묘미를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산행 코스는 비교적 짧고 수월한 편이다. 아이젠, 스틱 등의 안전장비만 제대로 갖추면 아무리 많은 눈 쌓인 겨울철에도 안전하고 손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오늘같이 눈 내리는 날에 적막 같은 산속길을 걷는 일은 더없이 상쾌하다. 사람들의 왕래도 없어서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순백의 설경을 바라보는 눈 맛도 좋고, 머리에 눈을 허옇게 쓴 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리는 뽀드득 뽀드득 하는 발자욱 소리에 귀가 즐겁다. 비록 내가 버리고 가는 발자욱들이 흰 눈으로 덮여 없어질 것을 생각하며 나는 가만히 눈길을 걷는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흰 눈송이가 살포시 내려와 앉는다.


 사실 이 산은 사계절 언제 찾아가도 만족스러움을 안겨준다. 무엇보다 주변 숲과 계곡의 풍광이 빼어난 덕택이다. 특히 신록과 녹음, 단풍과 눈꽃으로 치장하며 계절의 변화를 또렷하게 담아내는 숲의 정취가 일품이다. 이것은 우리가 충심으로 찬미하고 감사할만한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의 하나가 아닌가. 하산 길에는 참새가 먹을 것을 찾아 방앗간을 들르듯 겨울 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멕도날드 커피집에 들러 한 잔의 따끈한 커피에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로 산행의 고단함을 잊게 해준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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