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nyyoon48
아호 해송(海松)
<계간 수필> 동인,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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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東坡)의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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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宋)의 대문호 동파 소식(蘇軾 1036~1101)은 사천성 미산(眉山) 출신으로 부친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당송 8대 문장가’에 꼽힌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 소신이 뚜렷했으며 바른 소리 잘하는 곧은 천성 때문에 자주 귀양지를 전전해야 했다. 철학성 높은 명문 적벽부(赤壁賦)도 당시의 세도 재상 왕안석이 추진하던 개혁 신법을 반대하다가 쫓겨나서, 양자강 중류 황주 유배처에 머물 때 지은 글이다.

그의 기질은 천성적인 자유인이었으며 항주, 밀주, 형주, 서주에 태수로 일하던 때도 낮은 자세로 백성들에 다가가 어려운 사정을 보살폈다고 전한다. 그는 왕안석의 “신법과 그 추진 방식이 너무나 과격하여, 결국 백성들의 삶이 피폐하게 되고 말 것”이라는 소신을 극력 주장하였다. 곧은 성품을 굽히지 않고 신념에 충실하던 동파는 말년에도 예부상서 직에서 쫓겨나 남단의 해남도에서 7년의 유배를 살았다.

그가 백성들의 어려움을 한결같이 보살핀 것은 선한 목민관의 마음에서요, 파란만장한 삶을 녹여낸 빛나는 시문을 가는 곳마다 뽑아낸 것은 그의 천재적 문재(文才)였으니, 문학에서만은 현실의 억압을 벗고 훨훨 나르듯 재주를 펼쳤다. 그의 문장은 구질구질하지 않고, 읽는 이로 하여금 시원한 바람 소리를 듣게 한다.

“강과 산, 달과 구름은 본래 임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요, 그것을 벗하여 즐길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의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내가 지금 귀양살이하는 처지라서 많은 것을 박탈당하고 있지만, 황제도 내가 벗해 즐기는 “강과 산, 달과 구름과 바람 소리’만은 뺏어갈 수 없다”라는 마음을 담은 말인 듯하다.

그의 모친이 <후한서 범방전(范滂傳)>을 읽어주던 열 살 무렵이었다. 범방이라는 충신이 공평무사하게 공무를 수행했지만, 권력자의 미움을 사서 사형을 당하게 되는 구절이었다. 범방이 모친께 하직을 고했다. “어머님, 소자가 효를 다하지 못하고 황천의 아버님께로 먼저 갑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범방의)모친 왈, “한 인간이 천고에 이름을 남기고, 또한 오래 부귀를 누리는 것이 어찌 둘 다 가능하리오. 너는 네 이상(理想)에 목숨을 바치는 것이니, 어미는 너를 지지하느니라.”

이에 어린 동파가 그의 모친께, “어머님, 저도 크면 범방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동파의)모친 왈, “네가 범방이 될 수 있다면, 나 어찌 범방의 어미가 될 수 없겠는가!?”

어린 소식과 어머니가 나눈 가슴 뭉클한 이 대화는 그의 일생을 꿰는 신조요 철학이 태동(胎動)하던 장면을 보여준다. 소식이 단순히 글을 매끄럽게 짓는 재주 하나만으로 천 년 세월 동안 기림을 받았을 리가 없다. 정의를 추구하는 그의 곧은 신념과 용기, 힘없는 백성을 감싸는 긍휼이 그가 즐겨 노래하던 대자연의 티 없는 아름다움과 어우러져서 세인의 심금을 울리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동파는 과주에 유배를 살던 때 불교에 심취하였다. 인근 금산사의 주지 불인(佛印) 대사와는 글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벗이 되었다. 그는 불인에게 불도를 배워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세상에 대한 욕망이나 불만도 삭일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영감이 떠오른 동파는 팔풍취부동(八風吹不動)이란 찬불게(讚佛偈)를 지었다.

“자비의 백호(白毫) 광명으로 만물을 비추시는 부처님께 절하며 뵙게 되네/

팔풍이 불어와도 추호의 흔들림 없이/ 황금색 좌대 위에 단정히 앉아 계신 이여.”

(*백호 :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 이 광명이 무량세계를 비춘다고 함. *팔풍 : 인간 내면에 있는 여덟 가지의 욕망과 감정이 일으키는 소용돌이)

소식은 불인에 칭찬 들을 기대로, 사동으로 하여 그 시를 전했다. 불인이 읽은 후 “헛소리”라는 짧은 평을 적어 보냈다. 이를 받은 동파는 섭섭하고 화가 나서 강을 건너가 불쾌한 기분을 잔뜩 쏟아놓았다. 듣고 있던 불인이 껄껄 웃은 후, “팔풍의 모진 바람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다더니, ‘헛소리’라는 한 마디를 못 참아 이리도 급히 오셨소? 쯧쯧쯧… 그럼, ‘팔풍취부동’이라고 쓴 이는 누구이며, ‘헛소리’라는 한 마디에 방방 뛰는 이는 또 누구인고?”하고 점잖게 꾸짖었다.

빼어난 시문을 휘날리던 천하 문장 소동파도 가볍게 놀림감이 되고 얼굴을 붉히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초보 불자 동파가 대자대비한 부처님께 잘 보이려고 발돋움하는 모습을 본다. 울고 웃는 인간미의 주인공 동파의 ‘헛소리’를 듣는 기분이 그다지 싫지 않은 건 어쩐 일일까.

동파의 묘비명에는 그가 자식들에게 주었다는 유언이 새겨져 있다. “나는 일생 추호도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래서 죽은 다음 지옥에 떨어질 리도 없을 터이니, 울며불며 통곡하지는 말아라!” 일생 행적으로 보건대 그의 유언은 헛소리를 섞지 않은 말일 듯싶다.

3년째 지속되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세상이 온통 죽음의 그림자로 덮인 듯 우울하지만, 홀로 영원의 길을 떠나는 순간에 이만한 양심 고백을 할 수 있는 나그네가 몇이나 될는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어야 하나?”라는 의문들이 근심처럼 일어나서 자신을 새삼 돌아보게 되는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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