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nwoolee
부산 출생, 동아대 정법대, ROTC 21기 임관,
삼성그룹 근무, 2002년 캐나다 이민,
현재 킹스턴 거주,
[email protected]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4 전체: 5,817 )
내 생애, 가장 용기있는 결정, Oh! 캐나다-“바다를 건널 수 있는 자는, 용감한 사람이다”
jinwoolee

  

 


       

(지난 호에 이어)


제4장 캐나다에 살며 웃고 울먹였던 소회      

 
제1절. 그리움과 역경 속에서 핀 들꽃

 

1. 그들 만의 선택, 눈물로 얼룩진 ‘발 마사지기’


 이민 첫 해에 맞은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던 것 같다. 이민 후, 일 없이 줄곧 ESL 수업만 받다가, 운 좋게도 아내가 지인의 소개로 일하게 된 곳이 쇼핑몰의 일식당이다. 매장에서 종일 선 채로 스시를 만들고, 판매까지 해야 하는 탓에,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아내는 완전 녹초가 되었다.


당시 힘든 일들이 몸에 배이지 않아, 밤에 잘 적에는 다리에 쥐가 나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 땐, 아이들도 놀라 깨어나 다리를 주무르며 엄마의 고통을 풀어 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이들도 엄마가 무척이나 안쓰러웠던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아이 둘이서 어떤 의견을 나눴는지 모르지만 평소 용돈으로 모아 두었던 저금통을 깨, 엄마의 저리는 발을 풀어 달라고 마사지기를 사왔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하면서…


그것은 결국 엄마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말아, 함께 붙들고 소리 내 울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한참을 울고 나니 서럽고 힘든 마음도 좀 가벼워진 듯 했고, 아이들의 기특한 마음에 응답하는 따뜻한 분위기가 필요할 듯 했다.


특히 그날은 쉬는 날이라,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기분도 풀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평소 봐 두었던 바다가재 요리로 정했더니 모두에게 정말 맛있고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특히 우리 가족은 바다가 고향인 부산이다 보니 캐나다의 특산품, 바다가재 요리가 일품 이었다. 특별하게 즐거웠던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마사지기를 작동해 보니 발의 피로를 풀어 주는데 효과가 좋아 참으로 흡족한 선물이라 생각되었다.


여하튼 엄마의 발 치료 효용성까지 갖추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었고, 엄마가 힘들게 일하고 와 밤잠을 설치며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고, 저금통 털어 산 아들, 딸을 거듭 사랑스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아이들이 있어 고달픈 이민자의 삶도 견딜만한 것 같다.


아이들의 기특한 마음과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확인시켜준 발 마사지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뒤 반납하고 말았는데 이유인 즉, 엄마는 이제 단련이 되어 더 이상 다리에 쥐가 나지 않으니 그 정성은 받고, 대신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전자 사전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에 반납 조치한 것이다.


나중에 아이들은 엄마가 자기들이 필요한 선물로 되돌려 주니 더 좋아하는 듯 했다. 이민 첫해에 있었던 슬프고 감동적인 사연이 곁들여 있는, 아이들 엄마에 대한 ‘추억의 발 마사지기 선물’ 이야기다.

 

2. “아빠, 왜 우린 방학 때 한국 안가요?”


이민 온지 약 5년쯤 된 여름 방학이었던 것 같다. 아들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질문했다. 왜 자기네들은 한국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실상은 왜 보내주지 않느냐는 항의였다. 


이민 와서 정신 없이 지내다 보니 훌쩍 5년의 시간이 흘렀고, 실제 아이들은 한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었기에 그럴만하다고 여겨진다. 당시 아들이 다니는 학교엔, 유학 온 친구와 이민 온 친구들이 몇 있었는데 다들 최소 한번은 한국을 다녀 온 터라, 아들의 심기는 불편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때 솔직한 심정으로 “지금 형편이 어려우니 좀 참았다가 다음에 가자”라고 위로했다면 더 의기소침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난 그렇게 답변하지 않았다. 즉 지금은 캐나다 생활에 집중하는 게 더 낫겠다. 왜냐하면 한국 방문은 언제든 기회가 있으니, 중요한 커뎃 여름 캠프와 또 누나가 다녀온 ‘익스 플로어’ 프로그램인 불어 배우기에 전념하자고 했다. 


그렇게 방향을 잡아 주었더니 다행히 아들도 큰 불만 없이 커뎃 여름 캠프와 ‘익스 플로어’에 참여했다. 전술한 바 있지만 커뎃 여름 캠프는 비용을 내는 게 아니라 참가자에게 수당을 지급하니 ‘꿩 먹고 알 먹는 격’ 이었고, 불어 학습 역시 바이링궐이 되는데 도움이 되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이렇듯 미묘한 상황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긍정적으로 바뀜을 알 수 있다. 즉 “너흰 한국 가서 재밌게 놀다 와라, 난 그 동안 캐나다에서 더 배우고 불어 공부도 좀 해야겠다”라고 아들이 생각진 않았지만, 실상은 그런 식이 되어 버렸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모두 성인이 되어 각자 길을 걸어가고 있다. 딸애는 불어를 많이 쓰는 연방 공무원으로, 아들은 육군 장교로 근무하고 있다. 반면 다른 친구들은 영어만 쓰는 직업이 주종인걸 보면, 현재 각자의 직업들은 불어 학습을 위해 학창시절부터 신경을 얼마만큼 썼느냐에 꽤 관련이 있다 생각된다.


한국에 계신 부모, 친척을 만나러 고국을 방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인지상정이지만 다만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학업 성취도 등을 감안하면, 잠시 시기를 늦추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힘들게 배운 1-2년 동안의 외국어 실력은 한국 방문과 동시 많은 것을 잃기 때문이다.


반면, 5년여 동안 한국에 가지 않고, 캐나다에 머물며 오직 아이들의 계발을 독려한 것이, 오늘날 그들의 사회적 입지 및 성장과 무관치 않은 셈이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5년 정도 혹은 3년이라도 한국 방문을 미루고 불어 학습과 여름 방학을 알차게 보내면, 장래 사회진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절제된 노력이 지속될 때 캐나다에서의 적극적 사회 참여도 가능할 것이다. 다시 한번 일정기간은 오직 캐나다 생활에 집중하면서 선택과 용기 있는 실천을 기대해 본다.

 

3. 애들은 기억한다, 그 고단한 몸짓을!


남들처럼 잘 입히거나 먹이지도 못한 것 같은데, 두 아이는 밝고 구김살 없이 착하게 잘 자라준 것 같아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도 이민초기, 어릴 적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 쓰린 부분이 남아있다.


딸은 동생보다 한 살 위인데 누나라는 책임감 때문인지 우리 부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공부하며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들은 누나의 보호 아래 있다고 생각 했음인지, 아님 지쳐 허기와 피곤 때문이었던지 도서관 책상 위에 엎드려 곤하게 잠든 채, 기다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이들 등교시간은 꽤 이른 편이다. 약 오전 7시쯤 스쿨버스로 학교에 가면 오후 3시 반경 마치는 것이 일반적 중-고교생들의 학교 생활인데 반해, 우리 아이들은 학교를 파하고도 공공 도서관에서 거의 4시간을 더 머물러야 했으니, 하루 12시간을 학교와 도서관에서 보내야 했던 것이다.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을까, 란 질문에 그저 피할 수 없었던 초기 이민 생활의 슬픈 사연 이려니 했는데, 마치 “몸에 좋은 쓴 약”처럼 덕분에 기본적인 학교 공부와 과제 등에 스스로 대비하는 습관으로 이어진 듯하다. 


당시 힘들고 고달팠던 하루 하루가 모여, 결국 오늘의 안정된 생활로 연결된 초석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그래서 “세상은 둥글다”란 말을 하는가 싶다. 즉 캐나다의 법에 의거, 15세 미만 미성년자들 만의 귀가를 허용하지 않음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런 생활이 3년 이상 지속된 상황이었는데, 대학을 마칠 때까지 그렇게 굳어진 것이다.


이민 초기, 그렇게 부러웠던 대학교수, 공무원, IT산업 박사 연구원들의 자녀들은 안녕하신지 묻고 싶다. 당시 모든 것을 다 갖춘 듯 보였던 그 분들도 자식 교육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새삼 “세상은 공평한 것인가”하며 나를 되돌아 본다.


이민 사회에서 느끼는 사실 하나는,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해 “우리 집이 여유가 있구나” 혹은 ”과외를 하니 공부도 별게 아니네 하며 게으름을 피우는 순간, 그들 인생은 다른 길을 향하는 것 같고, 대신 “우리 부모님이 저렇게 고생하며 힘들게 일하시는구나”하며 공감하고 가슴 아파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란다면, 부모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큰 보람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즉, 부모의 힘든 삶을 직접 눈으로 목격 함으로써, 자녀들은 강한 정신력도 갖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은 어떤 이론 교육보다 효과가 있다 생각되는데, 이유는 이민 생활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모의 모습 자체가 산 교육인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절실하고 가슴에 와 닿는 교훈이 되어 마음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따라서 이민 초기시절, 자녀들 눈에 비쳐진 부모의 치열하게 살아가는 숙명적 모습, 그게 바로 아이들 마음 속 깊이 새겨지는 참교육이라 생각된다.

 

4. 전 가족 힘의 원천은, 아내의 헌신


실상 아내 앞에서 “당신은 우리 가족 모두의 힘의 원천이었소”라고 표현을 하기엔 겸연쩍고 쑥스러운 일이기에, 한번도 그런 표현을 한 적은 없다. 당연할 것이다. 어느 대한민국 남자가, 특히 경상도 사나이가 자기 아내를 두고 그런 팔불출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불편하고 부자연스런 것이지만 더 미루다간 평생 못할 것 같아, 이 글을 통해 아내에게 과감히 전하고저 한다. “당신으로 인하여 우리가족 모두는 건강하고 행복 하였으며, 당신과 더불어 빛나는 우리 가족만의 평화로운 캐나다 아침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 집 막둥이 해피를 포함하여 무한 행복을 선언한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